김소연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의료윤리사무국 간호사
김소연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의료윤리사무국 간호사

책상에 앉자마자 전화벨이 울리고 수화기를 든다.

"안녕하십니까? 의료윤리사무국 김소연입니다."

"여보세요? 거기가 연명치료 거부하는 거 하는 데죠? 그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나요?"

2018년 2월 4일 시행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본원은 의료기관윤리위원회가 설치돼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이행을 하고 있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의 업무도 함께하고 있다. 필자는 간호사로 2020년부터 연명의료결정제도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현대 의학기술의 발전은 인류의 소망인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해 주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무의미한 치료로 생의 존엄한 마무리는 어렵게 하고 있다. 1997년 보라매 병원사건, 2009년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국민적 합의를 거쳐 연명의료결정제도가 시행됐다. 생애 말기 무의미한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미리 밝혀두고 이를 법적으로 보장해 삶의 존엄한 마무리를 돕는 것이다.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치료 등)를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는 제도지만 어떠한 경우라도 물 공급, 산소의 단순공급, 영양분 공급, 통증완화를 위한 의료행위 등 기본 돌봄은 중단하지 않는다. 이는 인간에 대한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목적인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취지에 부합한다. 올 7월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130만 명을 넘어섰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위해 방문하는 분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누구누구가 이런 걸 해놨다더라', '이걸 해놔야 나중에 죽을 때 고생 안 한다더라', '가족 중에 연명치료를 받다가 임종할 때 고생하는 걸 봤다', '자식들한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등의 이유를 말씀한다. 등록 후에는 후련하다며 발걸음 가볍게 돌아가는데, 필자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런 사전의향서 작성 업무는 일부분이고, 필자의 주업무는 말기나 임종 과정의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 및 이행에 관한 업무다. 무연고자, 임종기가 아닌 환자의 연명의료 중단요구 등 여러 가지 윤리적 갈등상황에서 고민하는 의료진에게 필요시 심의를 통한 여러 분야의 윤리위원들의 권고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의료진으로부터 혼자 결정할 때의 부담감이 덜어졌고 판단에 도움이 됐다는 피드백을 받고, 환자가 편안한 임종과정을 맞았을 때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고 이 일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

그런데 최근 안규백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사조력존엄사' 법안을 접하고 연명의료결정법과 윤리를 다루는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우려의 목소리를 더하고 싶다. 우리 병원은 종교병원이기도 하지만 의사의 고귀한 본분인 '생명의 봉사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의사조력자살은 의료와 의료인의 모습을 왜곡시키는 것이다. 말기환자에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행위이며, 조력하는 의사는 살인행위에 가담하는 것이다. 질병과 고통의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고 인간생명이 지닌 가치를 물질적 풍요로움과 건강, 쾌락으로만 판단하는 현대 사회의 그릇된 사고방식을 후대에 물려주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또 생명에 대한 존엄은 어떠한 경제적, 정치적 논리로도 경시해서는 안 되며 생의 말기를 보내는 환우들의 그 모습 그대로 이웃의 돌봄과 관심을 받으며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김소연 가톨릭대 대전성모병원 의료윤리사무국 간호사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