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 무심코 뱉은 말, 설화 자초
'대통령 비속어' 공방, 치킨게임 비화
유머·품격 있는 '촌철살인'비판 실종

송연순 논설위원
송연순 논설위원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활시위를 떠난 화살', '흘러간 과거', 그리고 '내뱉어버린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 펀드 제7차 재정공약 회의에 참석한 뒤 걸어나오면서 했다는 비속어 발언의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OOO은 쪽 팔려서 어떡하느냐'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놓고 벌이는 정치권 공방은 이제 '진실게임'을 넘어 벼랑 끝 '치킨게임'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덩달아 설화(舌禍)가 우리 사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화근은 '혀(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는 자질 부족으로 사퇴 압박에 떠밀려 지난 7월 퇴진하면서 보수당 동료들을 향해 '우르르 몰려다니는 짐승 떼'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평소 막말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유세 중 "소송 비용은 내가 책임질 테니 반대 세력을 때려라"라는 말까지 했다. 심지어 경쟁자인 민주당의 힐러리에 대해선 '남편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여자가 어떻게 미국을 만족하게 할 수 있겠냐'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사회관계망)에 올리기도 했다. 남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원만하지 못한 부부관계를 빗댄 이 표현은 거센 여성비하 논란이 일면서 삭제됐다.

국내 정치에서 대표적 설화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 과정에서 터져나온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의 '노인폄하' 발언이었다. "60-70대 노인들은 투표하러 가지 말고 집에서 편히 쉬십시오" 라는 정 의장의 막말은 총선정국을 뒤집어 놓았고, 결국 선거 패배를 불렀다.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당 대표시절 장애인위원회 행사에서 장애인 비하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야당 정치인을 겨냥 "신체장애인보다 더 한심한…. 정치권에 정신장애인들이 많다"라는 막말을 퍼부은 것이다. 지난달 수해 현장에서는 한 여당 국회의원은 "비 좀 더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해 수재민들의 아픔을 후벼 팠다. 당나라 재상이었던 풍도는 '설시(舌詩)'에서 '입은 화(禍)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입은 재앙의 근원이기 때문에 매사에 입 조심하라는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을 수도 있고, 공든 탑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정치는 말의 게임이다. 비판을 할 때도 위트와 유머를 가미할 때 격이 올라간다. A. 링컨이 1858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 스티븐 더글러스 민주당 후보와 노예제도를 놓고 공개토론을 벌인 적이 있었다. 당시 링컨은 더글러스로부터 '두 얼굴을 가진 자'라는 비난을 듣자 유권자들에게 "제가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다면 지금 이 얼굴을 하고 다니겠습니까"라며 재치 있는 유머로 웃어 넘겼다. 링컨이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으로 꼽히는 데에는 그만의 여유와 위트가 한몫을 했다고 본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에게서는 유머와 품격이 있는 '촌철살인'의 비판을 찾아보기 힘들다. 유머를 섞어 상대방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와 자신감이 있다는 의미다. 막말은 자신의 내면에 감춰져 있는 낮은 자존감을 왜곡된 방식으로 '커밍 아웃' 하는 것이며,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는 행위일 뿐이다.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자 살아온 그림자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의 말은 무게를 더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 못해 먹겠다"라는 발언으로 정국을 한바탕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 윤 대통령의 경우도 수사검사로 살아온 탓에 거친 '검찰 언어'에 더 익숙한 것 같다. '비속어 논란'을 계기로 품격 있고 정제된 '대통령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그의 언어는 국격(國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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