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부동산에 울고 웃었다. 사회, 정치, 경제의 모든 이슈가 블랙홀마냥 부동산에 수렴됐고, 세대와 계층 간의 불화가 커지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건축은 본래 인간이 자연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쉘터(shelter)를 짓고 그 안에 거주하며 일상을 보내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그렇기에, 주거는 건축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거대한 파급력을 지니며 온 국민의 관심사를 점령하고 있는 부동산이라는 단어는 우리로부터 건축의 본질에 대한 논의와 사색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을 앗아가고 있다.

우리가 집을 부동산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때,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명확하다. 건축이라는 개념보다는 집이 가지고 있는 자산으로서의 가치에 관심의 추가 기울어졌을 때이다. 특히 한국적 상황은 특수한 면모가 있다. 아파트는 원하는 때에 입지와 규모에 따라 손쉽게 가치를 계량할 수 있는 상품으로서 거래가 용이하다. 우리 사회가 다른 문화권과 달리 주거의 상품적 측면이 거주 공간의 질에 대한 논의를 압도하게 되는 원인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아파트 가격이 치솟으면, 자산 증식의 대열에 올라타지 못한 사람들과 이를 이용해 거대한 부를 축적해나가는 사람들 사이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다. 이쯤 되면, 집은 자산을 증식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구호 아래서 주거 공간의 질에 대해 생각하자는 건축가들의 입장은 그저 배부른 고민으로 치부되는 것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다. 모든 자산의 가치는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기 마련인데, 최근 매크로 경제 상황의 변화에 따른 아파트 가격 하락 추세는 자산시장 사이클의 후반부에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또 다른 국면이다. 이제 집의 가치 하락에 따른 가계의 위기가 부각되면서 모든 관심의 초점은 또다시 자산으로서 기능하는 집에 집중된다.

시계추처럼 오가는 부동산의 이슈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아파트가 도시 공간에 미치는 영향, 아파트라는 획일적 평면에 적응된 라이프스타일, 단지의 공동체 문화가 함의하고 있는 사회적 문제 등은 공적 담론의 장에서 자리를 잡기 힘에 부친다.

그럼에도, 아파트가 중심이 되는 우리 시대 거주상의 재고를 다시 한번 요청하고 싶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파트라는 주거 상품은 본래 부모와 자녀라는 핵가족이 단란한 가정의 삶을 누리는 것이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최근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하는 삶의 가치관 변화는 보다 다양한 관점을 요구하고 있다. 자녀 없이 가정을 꾸리는 딩크족이나, 1인 가구의 증가는 이미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생산해온 아파트의 공간 구조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수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의 부동산 가격의 급등과 급락 속에 주거 공간의 논의가 아파트에 함몰되는 현상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는 소외감을 느끼고 세대 간의 단절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비중은 크지 않지만, 최근 민간에서는 대안 주거 모델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사례들이 나타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세대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취향이 비슷한 타인과 함께 살며 거주 공간을 공유하고, 그들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기반으로 느슨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따로 또 같이 사는 공유주택 혹은 사회주택이라고 불리는 주거 상품들이 시장에서 조금씩 관심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대안 주거들은 공통적으로 현대 사회의 아파트가 강요하는 가정생활의 프로토타입에서 벗어나서, 이 시대의 주거 공동체가 드러나는 형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어찌 보면 대안 주거는 단지 아파트 중심의 주택 공급에서 파생된 도시의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사건 속에서 그동안 당연시 여겼던 사회의 모습에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여러 분야에서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고 있다. 아파트가 장악했던 우리의 거주 공간에 대한 담론도 원점으로 돌아가서 대안 주거를 다시 고민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 앞에 펼쳐지는 중이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다음 세대를 위한 집에 대해 모두가 깊이 들여다봐야 할 때이다.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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