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윤평호 천안아산취재본부 차장

꿈은 이루어진다. 마약왕 검거에 일조한 민간인 이야기를 다룬 OTT 드라마가 큰 인기다. 절치부심해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이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 더욱 화제다. 그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꿈이 이루어진 것을 목도한 이는 또 있다. 1960~70년대 '설인 알파칸', '철인 강타우' 등의 SF만화를 선보였던 이정문 화백이다.

이 화백은 '예언그림'으로도 유명하다. 한 잡지사 요청으로 그는 1965년에 '서기 2000년대 생활의 이모저모'라는 한 컷 만화를 완성했다. 만화 속에는 전기자동차, 소형TV 전화기, TV를 통한 원격수업, 전자신문, 태양열을 이용한 집 등 2000년대 가능하리라 상상한 일상이 담겼다. 우주선을 타고 달나라로 떠나는 수학여행만 보편화되지 않았을 57년 전 만화에 등장한 신기술 대부분은 이미 현실이 됐다.

만화에는 빠졌지만 생활의 편리를 더할 새로운 기술로 한때 각광 받은 것 중에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이 있다.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은 지상 투입구에 쓰레기를 넣으면 진공청소기 원리와 같이 공기압을 이용해 지하에 매설된 관로로 쓰레기가 이송, 집하, 배출되는 시스템이다. '크린넷'이라고도 부른다. 1998년 국내 최대 규모의 신도시 계획으로 발표된 아산신도시에도 쓰레기 자동집하시설이 도입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는 아산신도시에 속한 탕정면 매곡리 일원에 지하 3층, 지상 2층 건축면적 293.96㎡ 규모로 2008년 8월 착공, 2013년 6월 크린넷을 준공했다. 투입구와 관로 매설 등을 포함해 크린넷 신축에는 185억 원이 쓰였다. 아산신도시 크린넷의 운명은 그러나 이름과 달리 클린하지 못했다.

크린넷 투입구가 설치된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은 가동 시 소음 피해 등을 우려하며 잇따라 민원을 제기했다. 크린넷 시설이관을 둘러싸고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LH와 아산시가 법정 공방을 벌였다. 2020년 대법원의 2심 판결 파기환송 선고 뒤 재개된 재판에서 지난 5월 대전지법은 아산시 손을 들어줬다. LH가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지난 7일 "이유가 없다"며 기각을 선고했다.

결국 크린넷은 한번도 정상가동을 못한 채 185억 원짜리 무용지물로 남게 됐다. 신기술을 활용한 청정도시의 꿈은 왜 무산됐을까? 그리고 LH의 헛발질은 비단 이것 뿐일까? 때로는 꿈의 끝은 언해피, 잔혹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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