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혁명 이후 서민 위한 반값 우유 정책의 비극, 왜
고분양가 심사시 인근 단지 시세 비교 기준 등 심사제 개선
'무엇을' 보다 '어떻게'가 더 중요…가격 아닌, 과정·절차 중시

최태영 취재2부장
최태영 취재2부장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가 단두대로 사라지고, 그동안 모든 권력과 부를 누렸던 귀족들이 쫓겨났다. 왕과 귀족 때문에 국민이 못 살겠다고 외치던 시절이니, 이들을 쫓아내고 나면 국민의 삶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혁명 발발 이후에도 민초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다. 혁명을 했는데도 삶이 개선되지 않았던, 혁명의 패러독스인 셈이었다.

혁명 후 민초들은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불만을 쏟아내는 등 민심이 흉흉해지자 '공포정치'로 유명한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물가를 안정시키고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우유 가격 인하를 지시했다. 우윳값을 강제로 절반으로 낮춰 고시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도 아이들에게 값싼 우유를 먹이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장 우유 가격이 하락하면서 민초들은 반겼다. 하지만 결과는 정권의 의도와는 다르게 정반대로 흘러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유 가격은 급등세를 보였고, 시장에 공급되는 물량도 줄어들었다. 지정 가격이 건초값도 안 되자, 건초업자들은 건초 생산을 중단하면서 건초값이 폭등했다. 낙농업자들은 수지를 맞출 수 없는 젖소 사육을 포기했다. 대신 소를 도축해 고기와 가죽을 내다 팔았다. 젖소 개체가 줄면서 우유 생산량은 감소했고, 우윳값은 치솟았다. 우유는 귀족이나 부유층만 마시게 됐고, 민초들의 자녀와 어린아이들은 구경도 못하게 됐다.

결국 처음부터 우윳값에 손 대지 않고 시장원리에 맡긴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가져왔고, 왕을 단두대로 보냈던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혁명 이후 1년 반만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로베스피에르는 법률가였고 열정적이었지만 경제에는 문외한이었다. 포퓰리즘 정책을 중요한 경제목표로 삼고 우유 반값 정책을 폈지만 오히려 가격 폭등이라는 부작용만 양산했다.

한때 부동산 가격이 치솟던 당시 대부분 정부는 잇단 규제를 쏟아낸다. 이런 규제를 피할 수 있는 분양 물량은 여지없이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당첨만 되면 수억 원의 시세 차익을 단기간에 누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로또 청약', '배짱 분양(가)' 등으로 이어진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대상에서 벗어난 일부 단지는 주변 시세에 육박하는 분양가로 공급했거나 할 예정이다. 그동안 우리 부동산 시장의 현실이었다.

잇단 고분양가 논란에도 수요자들을 경악케 하며 역대급 청약 경쟁률을 기록했던 단지들 중 일부는 지금 미분양 물량이 소화되지 않는 분위기로 급변했다. 거래 절벽, 부동산 침체기 진입 등의 전망이 이어지는데도, 계속 논란이 되는 고분양가 문제는 이제 대전도 예외가 아니다.

현 정부 역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고분양가 심사 기준 가운데 인근 시세의 비교 산정 기준을 올 7월부터 준공 후 '20년 이내'에서 '10년 이내'로 완화했다. 분양가는 당연한 듯 치솟았다.

최근 이 고분양가 심사에서 대전 도안 2-3지구 분양가가 2050여만원에 책정되면서 지역에서도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며 비판적 시각들이 쏟아졌다. 마치 저항선처럼 여겨져 온 '2000만원'이 넘는 가격에 시민들은 다시'배짱 분양', '불매운동' 등 격한 단어들을 써가며 아연실색했다. 그러면서 HUG의 고분양가 심사 제도의 부작용, 역기능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우윳값 사례처럼 역사적으로 '가격'을 통제하는 사례는 무수히 많았다.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시장 왜곡이 발생했다. 가격을 규제 또는 완화하려는 통제는 늘 허망하게 실패한다. 이제는 '가격'이 아니라 과정 즉, 방법이다.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막연한 가격 통제는 혼란과 반발만 불러 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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