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범 건양대병원 홍보실장
정인범 건양대병원 홍보실장

우리나라의 의료기관은 의원, 병원, 대학병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의원은 입원이 필요 없는 비교적 가벼운 질환의 치료를 담당하고, 병원은 입원환자를, 대학병원은 중증질환을 치료하도록 하는 것이 대한민국 의료법의 취지다. 하지만 의료이용 현실을 보면 아직 이러한 취지가 달성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동네 의원부터 대학병원에까지 같은 환자군을 진료하고 있는 비효율적인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료를 요구하는 환자를 거부할 수 없는 현 제도 하에서 대학병원에 경증환자들이 아직도 많이 유입되고 있다. 이러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은 오랫동안 우리나라 의료이용의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의료전달체계를 도입하고 법으로 의료기관을 구분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병원으로 환자의 쏠림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병원의 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대학병원은 중증질환 치료를 위해 인력과 시설 장비를 중증 의료에 맞게 운영해야 하는데, 경증 질환부터 중증질환까지 다양한 환자군이 몰리게 되면 중증치료에 선택과 집중을 방해해 운영효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또한 경증 질환자들에 집중하는 동네 의원에는 환자의 이용이 적어져 의원의 존립을 어렵게 하고 있다. 동네 의원이 문을 닫으면 경증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대형병원으로 가야 하므로 악순환을 일으킬 수 있다.

우리 대전은 어떠한가? 필수 의료 관련 자원은 많으나, 의료자원 간 효과적인 협력체계 및 질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다. 150만 명의 인구수를 가진 광역시인 대전은 그 인구수에 걸맞게 많은 개인 의원과 중소 병원이 있어서 경증환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의료 인프라가 대전 모든 지역에 잘 마련돼 있다. 아파트 입구의 상가에만 나가도 전문의들의 의원이 여러 개 있고, 주거지구 근처에는 대형 메디컬 빌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경증 질환을 충분히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인프라가 바로 집 앞에 마련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중증질환에 관해선 이야기가 다르다. 문제가 있는 정도가 아니라 문제가 심각하다. 두메산골도 아닌 광역시에서 입원환자를 위한 병상공급이 불균형적이라는 발표는 눈을 의심케 한다.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 의료전달체계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대전의 구별로 병상공급의 차이를 보이는데, 특히 대전 서구는 병상 불균형 지수가 -0.46으로 심한 공급 부족 양상을 보인다. 이는 30% 이상 공급 부족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공급 불균형을 보이는 지역이 여러 군데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만, 사통팔달 교통의 요지이며 훌륭한 의료 인프라를 갖춘 대전광역시에 의료전달체계의 공급 불균형이 있다는 대목은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이러한 광역시의 격에 맞지 않는 불균형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책적인 원인가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즉,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광역시 중에서 상급병원이 하나뿐인 곳은 대전밖에 없다. 대구에는 다섯 개, 인천에는 세 개, 광주에도 두 개가 있다. 대전은 청주와 강릉과 똑같이 한 개만 지정돼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대전과 충남을 한 덩어리고 보고 대전·충남에 세 개를 지정하였기 때문이다. 대전시민이 진료를 받으려 충남으로 이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대전에 상급병원을 한 군데만 지정한 것은 대전의 의료 불균형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다.

2019년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믿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의료 강화 대책'을 보면 응급·중증질환 등 필수 의료는 지역에서 믿고 치료받을 수 있도록 진료권별로 신뢰할 수 있는 지역의료기관을 지정하는 것을 기본방향으로 하고 있다. 이는 지역의 지역의료기관들이 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중증질환 치료를 안정적으로 제공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전의 현실은 이러한 기본방향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권역 진료권'인 대전은 '대전 서부'와 '대전 동부'의 두 개의 지역진료권으로 나뉜다. 지역의료 강화 대책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대전에 최소한 두 개의 상급종합병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공급 불균형 문제는 잘 사회적 이슈화 되지 않는다. 환자단체나 시민단체뿐만 아니라 의료계 전문가들도 관심을 두지 않으면 인지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의료공급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해는 분명히 있고, 그 피해를 150만 시민이 골고루 나눠 부담하고 있다. 대전에 상급종합병원 추가지정이 필요하다.

정인범 건양대병원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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