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양수 화가·시인
임양수 화가·시인

명절이 되면 전국에 퍼져 사는 자식들은 부모님 곁으로 그리운 고향을 찾는다.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자녀들 앞세워 부모님을 뵐 때가 행복했고 인생 황금기였다. 아버지께선 87세 노환으로 별세하셨고, 어머니께서는 노인병원에서 95세로 별세하셨다. 가끔은 두 분의 나이를 평균잡아 '나도 구순은 살겠지' 하는 야무진 상상도 했었다. 부모님이 안계시니 형제 모두가 고아 신세다. 세월이 흘러 팔순 전후의 시인 형제는 단톡방을 통해 부모님께 못 다한 심경을 글로 나누곤 하였다.

필자의 아버지는 식사 중 숟가락 떨어뜨리고 스르륵 눈 감으셨다, 병원 신세 안 지고 자식들에게 부담 없이 먼 세상 떠나셨다, 엄니는 저승길 무섭다시며 산소 호스에 긴 목숨을 의지하셨다, 어머니께서 보고 계시다, 어미 젖 먹고 큰 녀석이 허연 머리털로 고갤 떨군다, 눈알 벌겋게 뜨고 퍼먹고 자란 무채색 낭만의 주인공들을 어머니께서 보고 계시다, 구십이 넘어 백호 모습으로 "어여 와, 어여 와!" 울엄니 아흔다섯 고무대롱을 꽂고 침묵에 잠기여 호스를 통해 묵은 나이를 세신다. 이제는 눈꺼풀을 쳐들힘조차 태어남의 연못으로 되 흘려보내고 침상 위에 새 털구름이시다,

이젠 작아진 뼈와 주름진 가죽과 머리카락 몇 올 허전해진 영혼을 가만히 데리고 있을 뿐이시다, 어젯밤엔 꼬부랑 지팡이 콩콩치시며 고택 골 큰며느리한테 다녀가시고도, 시치미 뚝 뗀 채 천장만 우러르고 계시다, 복사골 노은골 잉어바위 탑거리를 돌아서, 금남면 호탄리 친정 빨간 양철집까지 금강다리를 건너서 다녀오셨을게다, 하늘 올라가는 기차표 꼭 쥐고 계셔요, 울엄니 세상 것 훌훌 다 털고 다 됐다 하고 나팔 부는 날 얼른 떠나시게요.

두 형제 꿈속에서 아버지의 우렁찬 호각소리 들린다, 지팡이 콩콩 왜장 소리 빗발치다, "어찌, 네 어미 오지 않고 뭐 하능겨! 그놈의 약물 주사가 네 어미 저승 길 막는구나, 주고 온 노잣돈도 바닥났을 텐데, 어이 참, 그냥들 못 둬!" 구십 오세 울 엄니, 어제의 효도는, 깊은 망각 속에 빠져들고 내 어린 시절의 안타까움만 기억하신다. 꿈속에 아버지 호통소리 다음 날, 울엄니께서도 저승길로 떠나셨다. 형제 가슴에 큰 멍울만 안겨 주셨다.

"두 형제는, 태몽도 함께 꿨는데 해방 전후 세 살 터울로 아들 둘을 두었어. 성장하면서 형제는 문학과 미술을 좋아 하였어 서울 유학으로 교육자로 시인과 화가가 되었어" 엄니께선, 자랑삼아 말씀하셨다. 지난 시절, 부모님의 속사랑과 엄한 훈육 지도는, 형제에게 감사의 버팀목으로 늘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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