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도시 시즌 2' 일단 멈춤
행안부와 국토부 모두 소극적
대기업보다 공공기관이 먼저

은현탁 논설실장
은현탁 논설실장

윤석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이 갈수록 모호해지고 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혁신도시 시즌 2'로 불리는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공공기관 이전은 국정과제에 포함된 이후 일단 멈춤 상태다. 새 정부 출범 5개월째를 맞았지만 로드맵이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역균형발전 정책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국토교통부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수도권 대기업과 대학 이전에 방점을 찍고 있고,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압축과 연결'(Compact&Network)을 통한 균형발전을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담당 직원들이 장관의 의지에 반해 공공기관 이전을 적극 추진할 리 만무하다. 심지어 공공기관 2차 이전을 포기하기 위한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공공기관 이전에 대한 두 장관의 상황 인식은 위험한 수준이다. 이 장관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지방으로 가려면 결국 대기업이 내려가야 한다.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20대 대기업의 본사나 공장,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주요 대학, 특목고를 함께 보내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보다는 대기업 본사나 SKY 대학의 이전이 균형발전 효과가 크다는 장관의 주장은 나름 일리가 있다. 파급 효과 측면만 놓고 보면 굳이 지방에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대기업 본사와 수도권 대학까지 이전하면 금상첨화다.

그럼에도 '공공기관 이전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 부분이 걸린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공공기관 이전을 전제로 조성한 전국 12개 혁신도시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도 이전하지 못하고 있는 마당에 이 보다 훨씬 어려운 수도권 대학과 민간 기업의 이전을 거론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원희룡 장관도 공공기관 이전에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미 공공기관 1차 지방 이전을 실패한 정책으로 규정했고, '압축과 연결'을 통한 균형발전을 강조한 적이 있다. 그는 지난 6월에는 "과거에는 수도권 발전을 억제하고 지방으로 강제 이전해 수도권과 지방의 성장 격차를 줄이는데 몰두했다"면서 "이러한 획일적인 분산 정책은 결국 실패했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는 더욱 심화됐다"고 밝혔다.

이쯤 되면 정부의 균형발전 정책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헷갈린다. 국정과제에는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을 명시해 놓았는데 행안부 장관은 대학과 대기업 이전을, 국토부 장관은 도시 간 압축과 연결을 강조하고 있다. 두 장관이 3개월 간격으로 공공기관 2차 지방 이전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한 것도 공교롭다. 우연인지 계산된 발언인지 알 수 없지만 공공기관 이전 로드맵을 발표해야 할 시기에 오히려 대학과 기업의 이전, 지역 간 압축 개발 등을 거론한 것이다.

수도권과 비 수도권은 지난 20년 간의 균형발전 정책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2021년 기준 전체 국토의 12%인 수도권이 인구 50.3%, 취업자 수 50.5%, 1000대 기업 수 86.9%, 신용카드 개인 사용액의 75.6%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수도권 집중은 세종시와 전국의 혁신도시 건설로 다소나마 늦출 수 있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국토균형발전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혼선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은 수도권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이다. 대기업과 수도권 대학의 이전은 그 이후의 일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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