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호인 대표변호사
김경호 호인 대표변호사

어제 해가 지고, 잠을 자고 일어나니 오늘도 해가 뜬다. 아침이 온 것이다. 이런 하루의 변화가 『쉼 없이』 365일 이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고 살고 있다.

또 꽃이 피는 봄이 오고, 장마와 폭염으로 고생하는 여름이 지나고, 태풍의 위협 속에서 추수의 가을이 지나가면, 눈 내리는 겨울이 되는 4계절의 『쉼 없는』 변화도 우리는 경험하고 살고 있다.

아침에 해가 떠야, 봄이 와야 만물(萬物)은 생명력을 얻어 이 천지자연이 조화롭게 또 이어지는 것도 우리는 경험하고 살고 있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질 우리의 경험 속에서, 그럼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하여 동양의 선지자(先知者)들은 이미 지혜를 제시하였으니, 바로 그 천지자연이 때(時)에 맞게 변화하면서도, 『쉼 없는』 성실함(誠)을 배우라는 가르침이다 (誠者는 天之道也, 誠之者는 人之道也. 중용 제20장 중에서). 즉, 성실 그 자체는 하늘의 도(道)이고, 그 성실함을 위한 노력은 인간의 도(道)라는 것이다.

그럼 인간은 무엇을 성실(誠)하게 이어가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도 동양의 선지자(先知者)들은 이미 지혜를 제시하였으니, 바로 선(善)을 택하여 이를 고집(固執)스럽게 이어가야 하는 성실함을 보이라는 가르침이다(誠之者는 擇善而固執之者也 중용 제20장 중에서).

중용에서는 천지자연이 하루의 변화를, 4계절의 변화를 『쉼없이』 성실하게 이어가듯이, 인간은 선(善)을 택하여 『고집스럽게』 이어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이 성실하게 이어갈 그 선(善)이 무엇인가?

천지자연은 그 성실함으로 인하여, 즉 아침이 또 밝아오고, 봄이 또 찾아오는 이 성실함으로 인하여 만물(萬物)은 생명력을 얻는다. 즉 천지자연의 성실함은 만물의 생명(生命)을 도와준다.

그렇다면 천지자연의 성(誠)을 배워야 하는 인간은, 만물(萬物)의 생명에 도움을 주는 천지자연의 성실함과 마찬가지로 《만인(萬人)의 생명에 도움을 주는 성실함》을 배워야 할 것이다.

즉, 인간이 선택하여 고집스럽게, 성실하게 이어가야할 선(善)은 바로 《공동선(共同善)》인 것이다.

2009년에 출간되어 대한민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그 책,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그 저자가 주장한 공동선(共同善)의 가르침이 자사의 『중용(中庸)』에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동양 고전에서 인간의 삶에 관한 가르침이 이와 같은데, 하물며 『인간의 리더』의 삶은 어떠하여야 하겠는가?

중(中)이란 무언인가? 온전함이다. 때에 따라 변화하더라도 온전함이지 최고 완벽함이 아니다.

인간의 리더는 때에 변화에도 만인이 온전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최고 완벽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 만인 중에 일부에게 '혜택'을 주고, 이로 인해 일부에게는 '인내'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동양 고전의 지혜다.

천지자연에는 '혜택'도, '인내'도 없다. 스스로 그러할 뿐이다. 미래 공공선이라는 이름의 폭력으로 현재 인내를 강요하는 것은 천지자연의 모습이 아니다.

리더는 더 성실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가 없고, 그 성실함의 대상은 공동선(共同善)이어야 하는 것이지, 대기업 편중, 부자들 편중의 정책을 추구하면서 낙수효과 주장하는 것은 위선이고 거짓말에 불과하다. 그리고 공동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좌우(左右)가 없다. 오로지 협력(協力)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삶이란 B와 D 사이 『C』"라고 하여, 인간의 삶을 Birth(출생)와 Death(죽음)사이 『Choice(선택)』라고 철학자 장폴 샤르트르는 일갈(一喝) 했다.

바로 그 『Choice(선택)』에 따라 인생의 길이 갈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기들만'의 「정의」를 추구할 것인가, '우리들'의 「정의」, 즉 공동선(共同善)를 추구할 것인가의 『Choice(선택)』에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려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Choice(선택)』의 사다리를 타고 있는가.

김경호 호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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