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연 (공간 소이헌 대표)
김소연 (공간 소이헌 대표)

어릴적, 사랑채에는 늘 손님들이 끊이지 않았다. 노래하는 사람, 그림 그리는 화가들 심지어는 관상이나 사주를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들을 극진히 대접을 했고, 그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달씩 그렇게 우리 집에 머물다 가고는 했다. 그네들이 가고 나면 할아버지는 나를 불러 그들이 남긴 그림과 글씨, 도자기들을 보여주며 그림 속 화가들의 이야기며, 도자기를 빚은 도공들의 마음들을 이야기하고 나의 느낌을 물어보시고는 하셨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노래도, 그림도 돈을 주고 듣고 사야 한다. 돈을 주고 얻어야 네 것이 된다. 공짜로 얻은 것은 네 것이 아니다'

할아버지의 그 말씀의 새김을 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얻은 것들은 그것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흥이 일지 않았다. 갖고 싶은 작품이 있으면 그 것을 얻기 위해서 며칠을 밤샘을 해가며 작품 값을 벌었는데, 작품을 품에 안았을 때의 그 행복감은 그동안의 피로를 잊기에 충분했다. 산고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다시는 무리하게 작품을 탐내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던 게 좋은 작품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작품을 사랑하게 되었다.

20대 중반에 한 지역 화가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작품 속 세상은 몽환적인 색채로 표현된 동화 속 세계와 간결하지만 날카로운 구상으로 지난한 현실의 세계가 엮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 속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나를 사로잡았다. 작가의 삶 역시 작품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성치 않은 몸이지만 그의 웃음은 소년의 웃음 그 것이었다. 가난과 육신의 고통으로 느꼈을 현실의 차가움조차도 수용하며 작품 속 세상은 오히려 따뜻한 세상으로 살아 있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있다. 작가의 삶과 나의 삶, 그 속에 그의 작품 역시 함께 성장하면서 삶의 여정을 함께 하고 있다. 작가와 작품 그리고 수집가와의 관계는 서로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리라. 좋은 작품을 그리는 것은 작가지만 그 작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수집가 역시 좋은 작품들을 만드는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타국에 나가 공부를 할 때도 나를 구원해 주었던 것은 골목골목 숨어 있었던 그림과 도자기 가구들이었다. 먼지 하나조차도 애틋하고 귀하여 조심조심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것들을 닦고 있을라치면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내 삶조차도 귀하고 아름답게 여겨지고는 했다. 감사할 따름이었다.

심리학에서 "대상행동"이란 것이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그것과 유사한 다른 목표물을 얻음으로써 처음에 가졌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마음의 긴장을 해소시키는 행위이다. 연예인과 같은 외모를 갖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 자신이 좋아하고 닮고 싶은 연예인의 팬클럽에 가입하여 활동을 한다든지 그가 광고하는 제품을 사서 쓰는 행위들이나, 가고 싶은 나라의 엽서를 사서 벽에 걸어 놓는 행위들이 그 것이다. 이런 행위들은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는 면역의 내성들을 만들어 준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들을 조절할 수 있게 한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사람은 이 '감정조절'을 유연하게 사용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림을 수집하고 그 것들을 경험하면서 내 삶의 감정조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에게 상담을 오시는 분들 대부분 스트레스를 없애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스트레스는 없앨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파도를 없앨 수는 없지만 파도를 타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렇듯 스트레스를 견딜 수 있도록 내공을 키워드릴 수는 있습니다. 좋아하는 그림엽서라도 사서 책상에 걸어놓으세요. 그러면 마음이 달라져 있을 거예요."

건강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바라보고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 이 힘은 내가 좋아하는 행위들을 하면서 나에세 보상을 준다면 상처받은 마음도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그림은 감상이 아니라 경험이다."

 

김소연 공간 소이헌 대표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