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어린 시절 소꿉놀이가 생각난다. 들판에서 놀다 보면 쐐기에 쏘이기도 한다. 그때 엄마는 그 쐐기를 잡아 짓이겨 쏘인 부위에 발라준다. 또한 동네 길거리에서 놀다가 개에 물리기나 하면, 반드시 그 개의 털을 뽑아 태워 바르기도 한다.

특히 시험 날은 매우 민감하다. 그날은 미역국이나 바나나도 까먹지 않는다. 대신 엿이나 찰떡을 먹기도 한다. 심지어 중요한 시험 날에 다소 극성스러운 엄마들은 자기 자식 시험장까지 찾아가 정문에 엿을 붙인 후 엿처럼 찰싹 붙여주기를 염원한다.

옛날처럼은 아니지만, 일선 고등학교도 여전히 수능시험 날이 다가오면 수험장에서 수험생들이 떨지 않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는 등 파이팅을 외치면서 응원을 한다.

이와 같은 행위들은 이제 지난 시절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아직도 우리 민간 신앙 문화 속에 스며있는 일종의 공감 주술이다. 공감 주술(empathic spell)이란 내가 어떤 일을 하면 그것과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 고정 관념이다. 주술은 가상의 원인이 현실의 결과를 낳는다는 인과성이기도 하다. 인간은 미래 불확실성을 극복하고자 현실의 모상(模像)을 만들어 가상을 통제하기도 한다.

사실 공감 주술은 인간의 삶이 시작되면서다. 기원전 트로이 전쟁에서 트로이에 먼저 상륙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공감 주술이 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아킬레우스 엄마 테티스는 아들이 먼저 트로이에 상륙하는 것을 극구 만류한다. 그 덕분에 아킬레우스는 초기 전투에서 살아남는다. 반면, 테살리아 용사 프로테실라오스는 트로이 전투에서 가장 먼저 상륙한 바람에 신들의 예언에 따라 트로이 원정 참가자 중 가장 먼저 전사한다.

또한 스페인 북부 구석기 시대 알타미라 동굴벽화도 구석기 시대의 동굴예술로 인류 최초 예술작품으로 알려진다. 이 역시 주술적으로 보면 더 많은 동물을 잡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최근 코로나 사태 상황 속에서도 학교에서는 대면의 교육이 진행되고 있고, 학생들은 중간고사 시험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공부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이 안쓰러워 시험 보기 전에 찰떡이라도 하나 먹고 예상보다 좋은 성적 내주기를 기대해본다. 마치 테티스가 트로이 전쟁터에 앞장서는 아들 아킬레우스를 만류했던 심정과 아들을 쏜 쐐기를 잡은 후, 짓이겨 쏘인 부위에 발라주는 엄마의 심정으로 말이다.

김병모 전 고려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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