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치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아태첨단기술전략연구센터장
송치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아태첨단기술전략연구센터장

지난해 가장 뜨거운 관심을 모았던 TV 예능 프로그램을 꼽는다면 스트릿우먼파이터(스우파)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엠넷(Mnet)에서 런칭한 이 프로그램이 2021년 8월 첫 방송될 당시만 하더라도, 이른바 스우파가 2021년을 대표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댄싱9이나 힛 더 스테이지(Hit The Stage)의 경우에는 잘 알려진 K-Pop 아이돌들이 출연했고, 썸바디의 경우에는 댄스에 로맨스를 가미했음에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현직 댄싱 크루만으로 프로그램이 구성되는 스우파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으리라고 예상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회가 거듭될수록 많은 시청자들이 현직 댄싱 크루들의 매력에 빠져 들기 시작했다. 강렬했던 첫인상부터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직설적 화법 그리고 그보다 더 강렬하고 더 거칠게 다가온 현란한 춤은 단시간 내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모았다. 그리고 프로그램이 종영된 이후 스우파에 출연한 댄싱 크루들은 이른바 유명인사가 돼 있었고 각 크루의 리더들은 각종 광고(CF)와 예능 프로그램을 접수해 버렸다.

스우파의 댄싱 크루들이 이처럼 큰 반향을 불러올 수 있었던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한 마디로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동안 다양한 K-Pop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높이가 높아진 대중들에게 그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실력을 쌓기 위해서 댄서들은 수많은 시간과 땀을 투자했고, 때로는 댄스를 위해서 다른 무엇인가를 기꺼이 포기했기 때문일 것이다.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아이들에게 양보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실력을 쌓아 왔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JYP의 수장 박진영은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가수와 댄서는 다른 직업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댄서는 '춤'에 집중하지만 가수는 춤을 통해서 관객과 소통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댄서와 가수의 차이를 표현한 언급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댄서이자 아이돌 트레이너인 인지웅의 비교다. 인지웅은 아이돌은 과학 유튜버인 반면 댄서는 과학 연구자라는 것이다. 음악과 춤을 통해 대중들에게 감성을 전달해 주는 아이돌과 전문적인 과학 지식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는 과학 유튜버가 비슷하고, 전문적 분야에 집중하는 연구자와 댄서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가수와 댄서의 차이점을 과학분야 종사자에 비유한 인지웅의 센스 넘치는 위트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고민을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우리의 연구자들은 인지웅이 표현한 댄서의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아이돌의 길을 걷고 있는가? 작금의 연구 시스템이 연구자에게 몰입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가? 대중적인 관심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에 합당한 평가와 대우를 받고 있는가? 아니면 이슈 사냥꾼 또는 스토리텔러(Storyteller)들이 더 주목받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과학기술계의 댄서들에게 주목해야만 한다. 바로 필드 테크니션(Field Technician)들이다. 우리나라가 성공적으로 산업화를 이루어내고 오늘날의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우수한 필드 테크니션들을 양성하고 보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필드 테크니션들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주력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동시에 새로운 제조 분야의 기술력 확보를 위해 필요한 필드 테크니션들을 확보하고 있는가? 제조 공정의 대대적인 개선과 테크니션 크루와 같은 스튜디오 방식의 획기적인 시스템 개편 그리고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서 우수한 필드 테크니션을 확보해야만 기술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

송치웅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아태첨단기술전략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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