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100일 간 성적표 초라
한미동맹, 부동산 정책 성과
민심 받들어 반전 기회 잡길

은현탁 논설실장
은현탁 논설실장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100일 성적표를 보면 초라하다. 임기 초반 국정 지지율이 30% 아래로 곤두박질쳤다는 사실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지지율이 국정 운영의 잘잘못을 결정하는 잣대는 아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에는 분명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정 동력이 약해지기 마련이다. 정부와 여당이 뭘 하더라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던 걸까. 요즘 집권 여당의 상황은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딱히 이것 때문이라고 말할 만한 결정적인 한방은 없었지만 바람 잘 날 없는 날을 보내고 있다. 인사문제에서 정책 혼선,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과 이준석 전 대표의 다툼, 김건희 여사의 대외 활동까지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검찰 출신들을 정부 요직에 앉혀 편중 인사 논란을 불러온 것은 뼈아프다. 취학 연령 만 5세 하향 조정, 경찰국 신설도 공론화 과정을 거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집권 여당은 극심한 내홍으로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윤핵관의 권력다툼으로 비치면서 많은 지지자들이 등을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윤 대통령의 '내부 총질 당 대표' 문자 메시지가 공개된 이후부터는 막다른 길로 치닫고 있다. 이 전 대표는 연일 윤 대통령과 윤핵관에게 총구를 겨누고 있다. 급기야 지난 15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윤 대통령의 취임 100일 성적을 '25점'으로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전 대표는 장외 여론전을 계속 펼치고 있고, 비대위 지도부도 속수무책이다. 이 과정에서 대선 기간 포용하고 끌어안았던 윤 대통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윤 대통령의 100일을 반추하면 나름대로 공도 많았다.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고, 약속대로 청와대를 국민들에게 돌려줬다. 아침 출근길 기자들과 약식으로 만나는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은 신선하게 와닿았다. 부작용도 많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서겠다는 취지이다.

지방선거 직전 세종에서 첫 국무회의를 개최한 사실도 주목할 만 했다. 국토균형발전과 '세종시 행정수도 완성'을 위한 첫걸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동맹을 다시 한번 확인한 점도 평가할만하다.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정인 부동산 정책을 대폭 손질했고, 반도체 산업 육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이런 공적은 대통령 지지율이 나오지 않으면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그럼에도 지지율 반전을 도모할 마땅한 카드가 안보인다는 게 문제다. 상황이 이런데도 누구 한 사람 총대를 메고 리스크 관리에 나서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더 이상 누가 누구를 나무랄 계제가 아닌 것 같다. 윤 대통령이 스스로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나가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윤 대통령은 휴가 이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는 "지지율 그 자체보다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민심을 겸허하게 받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정 지지율이 바닥을 헤맨다는 사실은 대통령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일이고,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대통령실부터 여당까지 모두 출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지율 반전 카드는 먼데 있는 게 아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민심을 받드는 게 정답이다. 대통령이 먼저 야당에 손을 내밀고 여론조사에 나타난 민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정 쇄신을 도모하되 통합과 포용을 먼저 생각하기 바란다. 민심을 거스르지 않으면 반전의 기회는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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