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범 건양대병원 내과 교수
정인범 건양대병원 내과 교수

얼마 전 딸아이가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구피'라는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선물 받아 왔다. 물을 가득 채운 커다란 비닐봉지를 조심스레 들고 있는데, 너무 신이 났는지 손은 조심하면서도 발을 동동거렸다. 갑작스러운 새 식구의 등장에 딸바보는 금세 어항을 사 왔고, 아이 오빠는 구피 키우는 법을 인터넷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작은 어항 앞에 네 식구가 모여 새 가족들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날이 갈수록 점점 정이 들었다. 한 보름쯤 됐을 때 구피들은 잘 헤엄치지 않았고, 가만히 바닥에서 멈춰있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얼마 후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물관리 담당이던 나의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 작은 어항 속의 구피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연히 어항의 물인데, 염소가 다 제거되지 않은 수돗물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물고기에게 물 만큼, 사람에게는 공기가 중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너무나 당연해서 별로 신경 쓰는 사람이 없다. 한 가지 질문을 해본다. 우리가 매일 호흡하는 이 공기는 과연 우리 건강에 괜찮은 것일까?

불행히도 우리가 호흡하는 우리나라의 공기는 상당히 좋지 않다. 좋지 않은 것은 잘 알지만, 과연 세계에서 몇 번째로 나쁠까? 우리나라의 대기질은 세계적으로 가장 나쁜 편에 속한다. 예일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기오염도는 180개 국가 중 무려 173위다. 특히 미세 먼지 농도가 높고, 나쁜 공기에 노출되는 인구밀도가 높다. OECD는 '대기 오염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에 대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를 미세 먼지와 오염물질에 의해 발생하는 조기사망 예측치가 빠르게 증가하는 '대기 오염 피해 우려 지역'으로 분류했다. 전국적으로 30만 t 이상의 미세 먼지가 배출되고 있으며, 배출량을 줄여나가더라도 중국 등 외부에서 유입되는 영향으로, 대기 중 미세 먼지 농도는 향후 수십 년 동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바깥 공기야 나쁠 수 있지만, 집안 공기는 괜찮다고? 불행히도 그렇지 않다. 실내의 공기나 실외의 대기나 오염 수준은 비슷하다. 오히려 실내 공기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외부 공기로부터 오염물이 스며들고, 실내에서 발생하는 오염물질들(조리기구, 소독제, 세제 등)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내는 머무르는 시간이 길다. 세계보건기구는 공기오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세계적으로 700만 명에 이르며 이 중 430만 명은 실내 공기 오염에 의한다고 발표했다. 실내 환경은 수많은 사람이 반복적인 일상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장소이므로 실내 공기 오염의 위해성을 우리는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노출되는 사람이 많은데, 그 위험성을 잘 인식하지 않는 공기가 하나 더 있다. 이것은 대기 오염이나 실내공기오염과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건강에 나쁘다. 바로 담배 연기다. 담배 연기는 그 자체가 독이다. 담배는 피우는 것은 가장 독한 공기를 호흡하는 것이다. 아무리 심한 실내 공기오염이나 대기 오염보다 몇만 배 더 독하다. 흡연이 계속 반복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잠시 구피가 되는 상상을 해본다. 깨끗한 어항의 물을 마음껏 호흡한다. 좋다. 그런데 가끔 어항 속으로 시커먼 것이 한 방울씩 떨어진다. 언젠가 어항의 물이 검게 변할 것이고, 나는 힘을 잃을 것 같아 무섭다. 흡연자가 피우는 담배는 깨끗한 폐에 시커먼 타르를 침전시킨다.

정인범 건양대병원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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