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모 한국연구재단 수석연구위원
양정모 한국연구재단 수석연구위원

직업병이 도졌다. 항상 그랬듯이 국내외 연구개발과 관련된 아주 좋은 소식과 아주 나쁜 소식이 나오면 국가연구개발 예산 중 8조 원이나 집행하는 공공기관의 직원 입장에서는 우리의 역할이 어떤 게 있었는지 찾아보게 된다. 2022년은 한국 수학의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는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학계에 큰 성과와 변화가 있는 해다. 이번에 2022년 세계수학자대회에서 발표된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과 함께 올해 2월 한국이 국제수학연맹(IMU) 회원국의 수학그룹 등급 중 최상위 그룹(5그룹)에 등극한 해다. 1그룹부터 5그룹까지 그룹의 수치가 투표의 수를 의미하는 비민주적인 의사결정구조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국제 수학계의 위상은 독일·러시아·미국·브라질·영국·이스라엘·이탈리아·일본·중국(대만 2표 포함)·캐나다·프랑스와 함께 다른 회원국의 부러움을 사게 된 것이다. 특히 1981년 1그룹에서 시작해서 가장 빠르게 5그룹으로 성장한 국가이고, 1981년은 교육부가 학술연구지원을 위해 한국학술진흥재단을 설립한 해이기도 하다. 대한수학회의 회원으로서 한국수학계의 노력과 발전의 변화를 보면서 항상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대한수학회가 한국의 국제수학연맹 그룹 상향을 위해 작성한 보고서에서 한국 정부가 투자하고 지지하는 노력에 대한 평가 역시 포함된 결과라 나름 한국 정부가 자랑할 만한 성과다. 실제로 허준이 교수 역시 서울대 석사과정 중 풀었던 문제를 기반으로 필즈상을 수상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한 것을 볼 때, 서울대 BK21사업단의 성과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석박사과정의 지원을 통해 우수한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대표적인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이 BK(Brain Korea)사업이니, 세계적인 브레인을 배출한 사업이 된 것이다. 확인한 바로는 허준이 교수가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유일한 사업인 것 같다.

한국은 지난해 기준으로 국가연구개발 총예산 약 100조 원을 투자하면서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R&D 투자 국가이고,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이스라엘과 함께 1,2위를 다투는 연구개발 인프라를 조성하는 국가로 해외에서도 부러움이 많은 국가이다. 반도체·조선·자동차·휴대폰 분야 등 한국의 기술기반 경제 성장에는 기초연구부터 안정적으로 투자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의 기여가 적지 않다고 본다. 최근 정착돼 가는 학문분야별 연구지원체계는 한국이 잘 할 수 있는 영역에 집중 투자할 수 있는 기반과 함께 분야별 특성을 고려한 선진적 연구지원 행정이다. 이 역시 변화의 시작은 수학분야가 선도한 정책이다. 근대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독일 수학자 가우스가 "수학은 과학의 여왕이고 수론은 수학의 여왕이다"라고 한 명언이 있다. 최근 인공지능 시대 과학과 과학을 연결하는 AI 알고리즘의 기본은 수학이론인 걸 보면 과학의 여왕 자격이 충분하다고 본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도운 조합론 역시 수론의 영역이니 모든 이야기가 맞아 떨어진다. 최근 세계적으로 관심이 많은 양자과학 영역에서도 양자암호(정확히 말하면 양자컴퓨팅을 극복할 수 있는 양자내성암호) 분야에서도 한국이 선도적인 위치에 있다.

허준이 교수의 필즈상 수상은 "한국 수학교육의 힘이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다. 입시위주의 교육과 수포자의 확대를 걱정하고 있지만, 한국 수학은 매년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고, 대한수학회의 IMU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수학올림피아드 성적의 최상위권 이력과 함께 수학올림피아드 수상자들의 수학과 진출 비율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보고는 한국 수학교육의 힘을 확인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제2의 필즈상 수상이 가능하다는 보도 역시 희망 고문만은 아닐 것이다. 매년 세계수학자대회의 한국인 초청강연자가 다수 발표하고 있고(허준이 교수, 2018년 세계수학자대회 초청연사) 이들은 모두 세계수학계의 인정받는 학자들이라고 볼 수 있다. 40세 미만의 수학자들만이 받을 수 있는 필즈상이라 또 다른 천재가 나오기를 기대해야겠지만, 한국수학의 힘은 여전히 강해지고 있다. 다만, 이러한 흐름이 계속 이어가기 위한 연구환경의 변화 역시 요구된다.

필자는 현재 연구윤리 정책 부서에서 학술건전성 확보를 위한 업무를 맡고 있는데, 연구부정행위가 발생하는 원인과 현상에 대해서 유명 학술지 네이처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 어리석은 시스템이 이를 부추긴다는 면이 크다는 점이 있다. 연구결과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연구부정행위를 근절하는 새로운 정책 적 필요성은 '연구업적 평가의 개선'이라는 연구자들의 인식조사에 따라 최근 국내외 대학의 연구업적 평가 현황을 조사하고 개선하는 정책결과를 소개하면서 글을 마치려고 한다. 잘 알려진 DORA선언(San Francisco Declaration on Research Assessment)에서 "임용, 승진, 연구과제 선정시 피인용지수(IF)와 같은 학술지 지표 사용을 제한하고, 연구업적 평가시 해당 연구가 출판된 학술지가 아니라 논문 자체의 가치로 평가"하도록 제안하고 있다. 영국과 스위스의 연구지원기관도 동참하고 있고 국제수학연맹(대한수학회 동참선언) 역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의 연구업적 평가도 수치 중심의 정량평가의 개선 노력이 전파돼 연구개발 성과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양정모 한국연구재단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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