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의원
정진석 의원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둘이 승용차를 타고 천안에서 대전으로 이동할 때였다. 윤 후보는 며칠 뒤 청와대 이전 공약을 발표할 계획이라며 내 의견을 물었다.

"청와대를 언제까지 이전한다고 못을 박지는 마십시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를 광화문 정부청사로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가 철회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도 여러 가지 검토해야 할 사안이 많을 겁니다"

윤 후보는 다짐하듯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당선된 후 절대 청와대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겁니다"

왜 그렇게 단호한지 이유를 물었다.

"제가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일 잘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약속입니다. 민간의 최고 전문가와 학자들, 공무원들이 수시로 한자리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현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지금 청와대 공간에서는 그런 일이 불가능합니다. 권위주의 대통령 문화를 청산했다, 청와대를 국민에게 내줬다, 그런 공치사를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대통령실을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정부종합청사, 외교부 청사가 부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자, 윤석열 당선자는 곧바로 국방부 청사를 선택했다. 뚝심으로 '용산시대'를 열어 제쳤다. 5년 내내 '북한 도발'이라는 말조차 못 했던 전 정권이 '한미연합 준비태세에 지장이 있다'며 반대했지만, 윤석열을 막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세계에서 기자 소통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대통령이다. 매일 아침 대통령실에 출근할 때마다 기자들을 만난다. 도어 스테핑(출근길 약식회견) 얘기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에 살기 때문에 '도어 스테핑'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 어쩌다 헬기장으로 가다가 기자들질문에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다.

일본의 기시다 총리, 의회나 자민당사에 들어설 때 기자들에게 손 한번 쓱 흔들고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근혜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시절 대통령은 청와대라는 철옹성 속에 살았다. 출입기자들이 5년 동안 대통령을 만난 횟수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국민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거창한 '국민 소통 쇼'를 기획했지만, 1년에 한번 할까말까였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우리의 대통령 문화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일대사건이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불안한 눈빛이고, 대통령을 미워하는 사람들은 사소한 말실수를 침소봉대하느라 정신이 없다.

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분이다. '정치적으로 부적절한(politically incorrect)' 말과 몸짓을 불쑥불쑥한다. 소탈하다, 솔직하다는 말로 옹호하기에는 대통령직이라는 게 너무 높고 무거운 자리다. 20여년간 정치에 몸을 담은 나는 사실 불안불안하다. 그렇지만 윤 대통령은 국민과 언론에 서스럼없이 다가가겠다는 진정성을 접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내가 접해본 윤 대통령은 소탈한 사람이다. 대선 기간 동안 그가 출연했던 예능 프로 가운데 무쇠 후라이팬으로 직접 계란말이를 하고, 김치찌개를 끓여 대접하는 모습이 가장 인기가 좋았다. 그 모습이 실재 윤석열을 가장 잘 담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내게 "하루 일과를 끝내고 가까운 선후배들과 소주 한잔 하는 게 제일 큰 즐거움"이라고 얘기했다. '석열이 형'은 대통령이 돼서도 소박한 일상의 즐거움을 내버리지 않았다. 구중궁궐 청와대에 몸을 숨기고, 원하는 메시지와 사진만 내보내는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다.

윤석열 시대가 시작한 지 이제 두 달이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을 일하는 공간으로 환골탈태시키겠다는 약속을 지킬 걸로 나는 기대한다. 국민에게 언제든 다가서는 소탈한 대통령이 되리라 믿는다.

윤석열이 불러일으키는 대통령 문화의 새 바람이 제 자리를 잡을 때까지 좀 지켜봤으면 한다. 불안한 눈빛을 조금은 수그러뜨리고.

정진석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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