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활용연구본부 선임연구원
김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활용연구본부 선임연구원

작년 여름 모 가수가 유명한 게임을 하며 느낀 애환을 담은 노래를 발표했는데 재밌는 가사 한 구절이 있다. '실버를 넘어 골드를 지나…플래를 갈 거야'는 부분인데 지금은 낮은 레벨이지만 언젠가는 레벨업을 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는 구절이었다. 광물과 금속을 연구하는 필자에게는 참으로 흥미로운 가사가 아닐 수 없었다. 실버(은), 골드(금), 플래(플래티넘, 백금족 금속)의 순서로 금속의 귀한 정도를 게임의 레벨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노랫말을 듣고 있자니 '금보다 더 귀한 금속이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앞서 언급한 금, 은, 백금족은 모두 귀금속으로 분류되는 금속들이다. 쉽게 변하지 않고 아름다운 광택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른 금속들과 비교했을 때 지각에 존재하고 있는 양이 매우 적은 희소성 때문에 인해 '귀금속'이라는 지위를 얻게 됐다. 특히 백금족은 금과 부존량이 비슷하거나 적어 금보다 귀한 금속으로 대우받고 있다. 또한 금보다 백금족의 녹는점이 높아 가공이 쉽지 않기 때문에 원료 자원으로부터 회수가 어렵다는 이유도 있다.

6대 핵심광물 '리그니코플레' 중 '플'에 해당하는 백금족(플래티넘)은 백금을 비롯해 루테늄, 로듐, 팔라듐, 오스뮴, 이리듐 등 6개 금속을 아우른다. 백금족은 다른 귀금속인 금이나 은처럼 장신구의 재료로도 쓰이지만 산업 금속으로써의 활용이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 부식이 잘 되지 않고, 열에 잘 견디는 성질 때문에 치과재료나 도가니, 전자제품 부품 등에 두루 사용된다. 현재 백금족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야는 자동차용 촉매다. 촉매는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으면서 다른 반응의 속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물질인데, 백금족은 내연기관 자동차의 연료 연소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해 가스의 정화 반응에 촉매로 사용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일까? 탄소중립 시대를 맞이해 백금족은 수소에너지 사용을 위한 연료전지 촉매로도 활용되고 있다. 연료전지에는 연료로써 수소 가스가 투입되는데, 공기로부터 투입된 산소 가스와 만나 물을 생성하는 산화·환원 반응이 발생한다. 수소와 산소가 만나 물을 생성하는 반응은 굉장히 속도가 느린데 이 과정에 백금족이 수소와 산소의 활성도를 높여주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 많은 국가들이 백금족 금속을 핵심광물로 지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수소에너지 활용 또는 자동차용 촉매에 백금족 사용이 필수적이기에 당연한 조치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여느 핵심광물과 마찬가지로 백금족을 함유한 광물이 일부 국가에 편재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광산에서 생산되는 백금족 금속의 양은 연간 500t 미만으로 적은 수준인데다가 매장량도 점차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다행히 백금족 중 백금, 팔라듐 등은 70% 이상이 재활용을 통해 재자원화되고 있다. 탄소중립의 목표 연도인 205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가 어느 정도 생산되고 수소에너지 활용이 활성화 된다고 가정하면, 백금족의 확보에 있어 지속적인 재활용 공정의 개발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일부 기업에서도 재활용 기술을 통해 백금, 팔라듐 등의 백금족 금속을 생산하고 있으나 재자원화율이 각각 31%, 9%로 매우 낮다. 선배 연구자들의 통찰력 덕분일까?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는 일찍이 저품위 순환자원으로부터 백금족 금속을 회수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이를 플랫폼화하는 연구 개발을 수행 중에 있다. 나아가 초난용성 금속인 로듐과 이리듐의 회수를 위한 기초 연구 개발에 도전·진행 중이다. 꾸준한 재활용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손쉽게 백금족을 확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날이 조속히 오기를 기대해 본다.

김리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활용연구본부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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