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탄생… 인력난·인건비 부담 급증
정부 주→월 단위 방안 발표, 노사 대립 관계 격화
"땜질식 처방 아닌 전면 보완·유연성 필요" 목소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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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

정부가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노동개혁에 나섰다. 주 단위로 묶여 있는 52시간제를 유연하게 바꾸고, 장년 근로자가 더 오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그러나 노동계가 주52시간 유연화 제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설상가상 윤석열 대통령이 "아직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것이 아니다"고 밝히면서 양자간의 신경전이 더욱 팽팽한 상황이다. 고용 창출과 일 삶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으로 태동한 주52시간 근무제가 중소기업의 인력난으로 이어져 후폭풍을 낳은 만큼 땜질 보완이 아닌 자율을 통한 업종에 따른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주52시간제 명과 암=문재인 정부의 대표적 노동 정책인 주 52시간 근로제는 2018년 3월 법 개정을 거쳐 그 해 7월부터 사업장 규모별로 순차 시행됐다. 300인 이상 기업과 공공기관 노동자는 일주일 동안 일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이 평일과 휴일근로를 포함해 52시간 이내로 제한된 것이다. 18세 미만인 연소근로자의 노동시간도 1주 최대 40시간으로 제한됐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근로자들이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날 수 있어 '저녁과 휴일이 보장되는 삶'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것이라고 적극 홍보했다.

하지만 이런 낙관적 기대와는 달리 상당한 후폭풍을 낳았다. 특히 중소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현장 수용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인 주52시간제 적용으로 인력난이 가중된 것이다. 지난해 7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으로 주52시간제가 전면 확대됐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근로자마저 줄어들면서 중소기업계의 인력난은 더 악화됐다.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해 인건비 부담에 짓눌리는 상황마저 발생했다. 5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제조업 555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주52시간제 시행실태·제도개선 의견조사' 결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응답이 42.4%로 나왔다. 이들 중 탄력근로 등 유연근무제를 도입했다는 응답은 23.4%에 그쳤다. 중소기업 근로자 역시 타격을 받았다. 노동시간이 감소하면서 실질임금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직무별로 근로 형태가 다양한데 획일적으로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자, 이 같은 폐해가 나타났다는 분석이다.

◇尹 정부의 등장과 노동개혁=새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방향이 공개됐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을 발표하며 근로시간 제도와 임금 체계 개편을 우선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주 단위'(52시간)로 경직되게 운영돼온 연장 근로시간을 '월 단위'로 총량 관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연공성 임금 체계는 직무 성과 중심으로 개편한다는 게 골자다. 현행 연장 근로시간은 1주일 단위로 관리되고 있다. 즉, 1주일에 1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연장 근로시간을 한 달 단위로 관리할 수 있게 되면, 주 평균 12시간을 유지하면서 한 달 동안 48-50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 같은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두고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졌다. 사회적 합의 끝에 통과된 주52시간제를 역행하는 것은 기존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국노총은 "아무런 제한 없이 초장시간 노동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라며 "실 근로시간 단축을 위해서는 연장노동시간의 월 단위 확대가 아니라 1일 단위의 관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노총도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정책은 전혀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미 파산한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자본가의 이익을 절대시하고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윤석열 정부의 노동정책은 노동자의 저항으로 파산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며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통령의 관심사인 시대착오적 장시간 노동 방안과 사용자의 일방적 임금 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만을 내놓은 것에 대해 깊은 실망과 분노를 표한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반면 경영계는 정부 개혁안에 공감한다며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한국경영장총협회는 입장문을 통해 "경영계는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의 방향성에 대해 공감한다"며 "경제위기 극복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다만 "근로시간 제도 개선과 임금체계 개편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유연근무제 도입 요건 개선, 취업규칙 변경 절차 완화 등의 방안이 보완돼야 한다" 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계가 오랜 기간 요구해 온 노사 합의에 의한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등이 포함돼 있다. 일할 맛 나는 노동환경이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며 환영했다.

◇노사 간 합의안 도출해야=윤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전부터 주120시간 노동 등 주52시간제를 유연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 최저임금제도 수정과 산업계 전반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중대재해처벌법 또한 손질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문재인 정권의 친 노동정책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해 온 탓에 윤석열 정부의 기업 규제 철폐 여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주52시간제 유연화 방안에 발표되고 노동계의 반발이 잇따르자 "정부의 공식입장이 아니다"고 발언했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이 확정된 정부 방침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이에 노동계는 정부가 보이고 있는 내부 혼선을 비판하며,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대전지역본부 관계자는 "정부가 발표한 노동정책안이 혼선이 있는 것 같아 황당하다.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기조로 나아가는 것은 전체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던 내용을 무력화하는 것"이라며 "OECD 국가 평균 노동시간보다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은 더 높은 수준이다. 노동시간은 더 줄여나가야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결국 근본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다. 노사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 것이 아닌, 노사 양 측이 합의할 수 있는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정태희 대전상공회의소 회장은 "주52시간 근무제는 노사 간 소통이 필요한 문제다.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보다 업종이나 지역별 특성에 맞게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제조업의 인력난과 외국인 근로자의 공급마저 막혀 경기 부양책이 주문되는 상황에 주52시간 근무제 유연화 기조는 유지하되, 전면적인 보완이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 회장은 "외국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더 세분화·다층화된 형태로 법정 근로시간을 정하고 있다"며 "기업의 특성상 바쁠 때도 있고 한가로울 때도 있는 만큼 유연성의 문제로 노사 간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통해 선진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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