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대통령 사저 앞 집회로 주민들 피해
윤 대통령 집 앞 맞불집회로 갈등 골 깊어
망국적 진영논리 종식 없이는 미래도 없어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박계교 충남취재본부장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니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는 산자여 따르라~~~'

우리가 잘 아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5·18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중가요다. 올해 5·18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무위원, 여야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참석, 함께 이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노래 하나로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하나 된 대한민국을 연출했다.

며칠 전 한 선배가 유튜브에 떠돌고 있는 짤 영상 하나를 보내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오는데, 웃픈(웃기면서 슬프다) 현실에 씁쓸함이 남았다. 내용은 이렇다. 이 동영상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는 경남 양산 사저 앞에서 보수단체의 집회 장면이 담겼다. 이 단체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었고, 김정숙 여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가 들어가는 모습이 찍혔다. 그러면서 한 집회 참석자는 "김정숙이다. 김정숙. 와! 김정숙이 나왔다. 와! 자기 편인 줄 알고 나왔다"고 말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니 김 여사가 자기 편인 줄 알고 나왔다는 얘기인 것 같다. 실소가 나왔다.

문 전 대통령 사저 앞은 보수단체 등의 집회로 몸살이다. 조용하던 시골 마을은 문 전 대통령의 이사 후 한 달 넘게 바람 잘 날이 없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는 집회에 문 전 대통령을 비롯, 마을 주민들은 연일 고역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주민도 여럿이라고 한다. 주민들이 내건 현수막이 짠하다. '농성 소음으로 인하여 농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더 이상 성장되지 않습니다'라는 것. 주민들은 무슨 죄고, 농작물은 또 무슨 죄란 말인가. 주민들이 농작물에 빗대 다소 점잖은 표현을 했지만 의인화하면 농작물은 바로 자신들의 모습일 것이다. 보다 못한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말 보수 성향 단체 회원 등 4명을 모욕, 협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급기야, 맞불집회가 등장했다. 진보성향 유튜브 채널인 '서울의 소리'가 14일부터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사는 서초구 아파트 앞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시위에 반대하며 항의 집회를 연 것. '서울의 소리'가 맞불집회를 예고한 터라 실행에 옮길까 싶었으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서울의 소리'는 문 전 대통령 양산 사저 앞 집회가 중단될 때까지 이 집회를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꼴이다. 윤 대통령이 사는 아파트 주민들도 집회 자제를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조용한 시위를 부탁드립니다!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습니다', '집회소음으로 아기가 잠을 못 자고 울고 있습니다' 등. 비슷한 시각 '서울의 소리' 집회를 반대하는 한 보수성향 단체의 맞맞불 집회까지 이어지는 등 윤 대통령 자택 앞은 아수라장이 됐다. 기막힌 현실에 말이 안 나온다.

윤 대통령은 자택 앞 이 집회를 '법에 따른 국민의 권리'라고 했다. 근데, 아무리 집회의 자유가 있다고는 하나 전·현직 대통령 집 앞에서 벌어지는 집회를 보고 있자니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진보와 보수로 나뉜 남남갈등에 국력만 축나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등 국민들의 목을 조여 오는 경제 위기가 엄습하는 상황이고, 우리의 주적인 북한의 핵 실험 징후까지 안보 위기가 가중되고 있는 시기에 자중지란에 대한민국이 거덜 날 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해묵은 진영논리에 매몰 돼 남 탓만 할 것인가. 갈등과 분열, 증오를 종식하고 우리는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망국의 진영논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다시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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