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읍성' 복원 KT 이전 논란
법원, 검찰청, 경찰서 등 홍주읍성 내 공공기관 대부분 이전
홍성군청도 옥암지구로 이전 확정, KT만 눈에 가시로 남아

홍주읍성 내 조양문 앞 옛 홍주 전영동헌터에 KT 홍성지사가 자리잡고 있는 가운데 홍성군이 홍주읍성 복원을 위해 KT홍성지사의 이전을 요구 하고 있지만 이전 비용 등의 문제로 진척이 없다. 사진=대전일보 DB

홍주(현재 홍성군)는 고려의 명장 최영부터 사육신 중 한명인 성삼문,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만해 한용운, 독립운동에 앞장선 백야 김좌진, 전통춤의 대가 한성준, 한국 근대화단의 거목 고암 이응노 등 걸출한 인물을 배출했다. 특히 홍주읍성은 일제시대 격렬한 항일 의병 전투가 벌어진 역사적인 곳이다. 일제는 이러한 홍주의 맥을 끊기 위해 홍주와 결성을 합쳐 지명을 홍성으로 바꿨다. 또, 홍주동헌을 가로막아 건물을 지었는데, 현재의 홍성군청이다. 군은 일제 잔재 청산을 통한 역사성 회복을 위해 홍주읍성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KT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홍주읍성 복원의 명분을 내세우는 홍성군과 막대한 이전 비용의 현실에 막혀 있는 KT는 간극이 커 공회전만 거듭하고 있다. 홍주읍성 복원을 위한 KT 이전 논란을 짚어본다.

◇홍주읍성=세종실록지리지에 홍주읍성은 둘레와 우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홍주읍성의 규모와 시설에 큰 변화는 없으나 순조 때에 한계수가 수성을 했다는 기록과 순조 23년(1822)에 성을 2350척으로 확장·보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홍주읍성은 1900년 이후 1917년, 1959년, 1969년 3차례에 걸쳐 보수가 이뤄졌다 . 1972년에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돼 홍주성지, 홍주아문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됐다. 홍주읍성은 200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복원이 이뤄지고 있다. 당초 1772m에 이르던 성벽이 절반 넘게 훼손됨에 따라 보수 등을 통해 810m 정도를 살려냈다. 나머지 성벽 복원도 계획하고 있다. 동헌인 안회당과 여하정, 조양문, 남문, 북문 옹성 등 홍주읍성에 있던 시설물 상당수에 대해 복원 및 보수를 마쳤다. 홍주성의 역사를 알리기 위한 홍주성역사관이 들어섰고, 옥사와 우물, 정자 등 홍주성 역사공원도 조성했다. 객사지와 동헌지, 전영동헌 등 아직 많은 시설물 복원은 숙제로 남겨진 상태다.

◇굴곡진 홍주읍성=홍주의병은 1896년과 1906년 2차례 일어났다. 주 무대가 홍주읍성이다. 1986년 홍주의병은 홍주의 김복한과 이설을 중심으로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에 반대해 일어났으나 홍주부관찰사 이승우의 배신으로 3일 만에 끝났다. 10년 뒤 1906년 홍주의병은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전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봉기했다. 의병들은 1906년 5월 홍주성을 점령했지만 일본군의 반격에 의해 의병 수백 명이 사망하고, 홍주성 주변 10리가 초토화됐다. 그 중 9명의 홍주의병 지휘부는 대마도로 유배를 당했다. 홍주의병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좌절됐으나 항일의병을 선도한 대규모 무장투쟁이자 당파, 학파, 신분차이를 뛰어넘어 유생과 민중이 연합한 민족통합의 움직임으로서 이후의 항일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이곳은 천주교 박해현장이기도하다. 1791년(정조) 신해박해 때 원시장 베드로가 체포이후 정사박해(1797정조), 신유박해(1801순조), 기해박해(1839헌종), 병오박해(1846 현종), 병인박해(1866 고종)에 이르기까지 홍주에서는 끊임없이 천주교 박해가 이뤄졌다. 기록상으로는 212명이 순교한 것으로 전해지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측된다. 홍주순교성지는 내포지역에서 붙잡혀온 신자들이 홍주읍성으로 끌려와 처형됐다. 북두칠성 모양으로 여러 형태의 처형장이 존재하고 있다. 홍주읍성 내 4개소(신앙 증거터3, 순교터1)와 홍주읍성 외 2개소(참수 순교터, 생매장 순교터)가 있다.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가 나온 홍주가 순교의 핵심성지인 이유다.

◇전영동헌 터 KT=전영은 조선시대 서울과 지방의 여러 군영을 통솔하던 관아다. 홍주읍성 내 조양문 앞 옛 홍주 전영동헌이 위치했는데, 현재 KT 홍성지사가 그 자리다. KT 홍성지사는 대지면적 5279㎡에 지하 1층, 지상5층(건축연면적 8202㎡) 규모다. 지난 1981년 신축, 서산과 태안, 보령, 당진 등 서해안권 통신 집중국 역할을 하고 있다. 홍성군으로 보면 홍주읍성 복원의 퍼즐 중 하나가 전영동헌인데, KT에 막혀있는 형국이다. 그도 그럴 것이 홍주읍성 안에 있던 공공기관들이 대부분 이전을 마쳤거나 이전을 앞둔 상황이라 홀로 남을 KT 홍성지사가 눈에 가시다. 1994년 홍성경찰서 이전을 시작으로 홍성우체국, 홍성세무서, 대전지검 홍성지청, 대전지법 홍성지원, 홍성군선거관리위원회, 홍성읍사무소, 홍성문화원 등이 홍주읍성 밖으로 나갔다. 여기에 홍성군청사도 옥암지구로 이전을 확정, 올해 안에 착공을 눈앞에 뒀다. 의도치 않게 알박기가 된 KT다.

◇진척이 없는 KT 이전 논의
홍성군과 KT는 지난 2017년 KT 홍성지사 이전에 대해 실무 논의를 했다. 군은 KT 홍성지사 위치가 홍주목의 전영이 있던 자리였던 만큼 문화재 복원 사업과 연관, 이전을 요구했으나 KT는 많은 통신장비와 연결망 등을 이유로 이전이 쉽지 않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서로의 입장 차이만 드러낸 셈. 군은 2020년 김석환 군수 명의로 '홍주읍성 복원에 따른 KT 홍성지사 이전 건의'란 제목의 서한문을 보냈다. 군은 서한문에서 "홍주읍성의 관문인 조양문 바로 안쪽 옛 홍주전영동헌터에 위치한 KT 홍성지사만 이전을 하면 군민들의 여망인 홍주읍성 복원이 실현 될 것"이라며 "KT 홍성지사는 40년이 넘으면서 노후 건물로 직원들의 근무와 고객서비스 제공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만큼 4차 산업혁명시대에 부합하는 첨단 건물로 이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진척 없이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현실에 막힌 KT 이전=홍성군은 홍주읍성의 옛 모습 재현을 통한 역사성 회복과 관광활성화를 위해 복원에 바짝 신경을 쓰고 있다. 군은 군청사가 이전을 하게 되면 원도심 공동화 등의 영향으로 주변 상권이 위축이 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그 해답을 홍주읍성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KT도 홍주읍성 복원사업이 홍성군민들의 숙원사업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면 서도 막대한 이전 비용 등이 부담, 장기적인 계획 수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KT 관계자는 "이전 비용을 자사가 모두 부담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서해안권의 통신 집중국사로써 공사 기간 고객들의 통신 안정성 확보가 어렵다"며 "이에 따르는 리스크 및 잠재 비용도 상당하기 때문에 이전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홍주읍성 복원에 대한 군과 10만 군민들의 의지는 분명하다"며 "다만, 막대한 예산이 수반되는 KT 홍성지사 이전에 대해 중앙정부, 정치권, KT 등과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온전한 홍주읍성 복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양문 앞 KT 홍성지사 사진=홍성군 제공
KT 홍성지사 사진=홍성군 제공
홍성군 홍주읍성 사진=홍성군 제공
홍주읍성 고지도 사진=홍성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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