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필자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내부 번호판 위에는 항바이러스 코팅 비닐이 덧씌워져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초 설치된 것이다. 교체 없이 쓰다 보니 일부 버튼 위 비닐은 닳아서 너덜너덜해졌다. 그중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역시 닫힘 버튼이다. 가장 많이 눌러졌기에 생긴 결과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가려는 층 번호를 누르면 닫힘 버튼을 굳이 누르지 않더라도 자동으로 스르르 문이 닫히기 시작한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한편으로는 지루한 시간이기도 하다. 소요되는 시간이 궁금해서 재 보니 층 버튼을 누르고 5초가 지나자 문이 닫히기 시작했다. 닫힘 버튼을 누르면 2초 후 문이 움직였다. 정확히 3초가 빨라지는 셈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3초라는 시간은 버튼을 누르는 번거로움을 치를 가치가 충분하다고 믿는 이들이 많기에 가장 많이 닳은 것이다.

엘리베이터 설치 세팅에 따라 3초가 아니라 더 긴 시간이 되기도 한다. 아파트의 경우 빠른 편에 속하고, 공공시설이나 병원의 경우 안전을 위해 보다 긴 경우가 많다. 아예 닫힘 버튼을 누르지 못하게 막아 놓은 곳도 있다.

어떤 시설의 경우 닫힘 버튼을 막아 놓지는 않더라도 전기 절약을 위해 자제해 달라는 게시물이 함께 붙어 있기도 하다. 닫힘 버튼과 전기 절약의 관계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분명한 것은 닫힘 버튼을 누른다 해서 자동으로 닫힐 때 비해 전력 소모가 더 커지지 않는다. 물론 버튼 LED 관련해서 미량의 전기가 더 쓰이겠지만 엘리베이터 작동에 쓰이는 전체 전기량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항상 사용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예를 들어 병원이나 마트 엘리베이터의 경우에는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일정 시간 내 운행 횟수가 줄어들게 되어 전체 전기 소모량이 감소한다. 간헐적으로 운행되는 엘리베이터의 경우에 문이 열려 있는 시간 동안 추가 탑승객이 생기면 그만큼 운행이 줄어들어 당연히 전기가 절약된다. 실제로 닫힘 버튼 안 누르기보다는 추가 탑승객을 위해 눌러지는 열림 버튼이 전기 절약에 더 큰 역할을 한다.

먼저 탑승한 상태에서 엘리베이터로 다가오는 사람을 보면 대개 열림 버튼을 누르게 된다. 그런 경우 다가오는 사람도 발걸음을 재촉해 가능한 한 빨리 오려 애쓰는 모습을 보여 주고 무사히 탑승 후 고마움을 표시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때로는 앞에서 뻔히 열림 버튼을 누르고 있는 상황을 알면서도 느릿느릿 한없는 여유를 부려가며 오는 사람도 간혹 보게 된다. 탑승 후에도 마치 당연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은 듯한 태도라면 더욱 문제다. 베푼 친절을 후회하게 되는 순간이다. 좋은 일 하고도 기분이 나빠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부류의 인간이 주위에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앞에서 다가오는 이를 보면서 오히려 닫힘 버튼을 누르는 사람도 있다. 지극히 이기적인 행동이고 본인의 현재 위치를 이용한 일종의 작은 폭력이다. 이런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거나 더 나아가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면 본인이 반사회적 성격이 아닌지 한 번쯤 돌아봐야 한다.

다가오는 사람이 보이지는 않지만, 근처에 인기척이 있을 때는 약간의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닫힘 버튼을 고려할 정도의 반사회적 성격은 아니고, 그냥 자동으로 놔두느냐 열림 버튼을 누르느냐 사이의 갈등이다. 그리 급한 상황이 아니면 대개는 열림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게 된다. 간혹 1층으로 가는 이웃이 열린 엘리베이터 앞을 지나며 서로 살짝 민망한 인사를 나눌 때도 있지만 드문 경우다. 대개는 다른 층의 이웃이거나 바쁘게 움직이는 택배 기사분들이 추가 탑승자가 된다.

닫힘 버튼 보다는 열림 버튼을 누르는데 익숙해질 것을 권해 드린다. 물론 약간의 수고와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들인 것보다 좀 더 큰 혜택을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고,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이미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다른 이의 작은 배려로 열림 버튼 혜택을 본인이 받을 날도 있을 것이다.

김대경 대전을지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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