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충남도건축사협동조합 이사장
김양희 충남도건축사협동조합 이사장

한국 최고의 야생화 천국이라 불리는 점봉산 곰배령, 16만 5290㎡의 평원이 형성돼 있으며 계절별로 각종 야생화가 군락을 이뤄 만발하는, 이름하여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봄에는 얼러리꽃, 여름에는 동자꽃, 노루오줌꽃, 가을에는 쑥부랑이, 용암꽃, 투구꽃, 단풍 등이 자태를 뽐낸다고 하는 곰배령은 그 경사가 완만해 할머니들도 콩자루를 이고 장 보러 넘어 다니던 길로 소개되고 있다.

가족단위 탐방코스로 훌륭할 뿐만 아니라 죽기전에 가봐야 할 아름다운 산이라기에 지난 주말 오랜 지인들과 함께 다녀왔다. 왕복 10.2㎞의 곰배령은 사전에 탐방예약을 해야만 방문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정보를 인지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곰배령을 오르며 만날 5월 야생화의 모습은 어떨까.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면 건축 계획과 함께 조경설계가 필요하다 보니 계절마다 피는 꽃은 어떤 것인지, 지역마다 어떤 나무들이 잘 번성하고 아름다운지, 조경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높다. 물론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조경전문가에게 의뢰하는 것이 대부분이긴 하나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중요한 외부공간이기 때문에 조경계획에 무심하기가 어렵다.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정원이나 외부공간 조성을 위한 활동을 조경의 영역으로 본다면 조경계획 및 설계는 인류의 역사와 같이 발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현대적 조경의 기틀이 된 도시공원의 효시는 미국의 센트럴파크다. 이는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가 설계한 것으로 조경을 예술의 경지로 올려놓았다는 평과 함께 현대조경의 아버지로 불린다.

도시와 결합된 접근이 아닌 건축 계획 안에서의 조경은 키 큰 교목을 도로변에 식재함으로써 소음과 시야를 차단하는 역할을 할 수 있고, 햇빛이 많이 드는 창가에 낙엽수를 식재해 한여름의 햇빛은 차단하고, 한겨울의 햇살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조경 계획을 할 수 있다.

필자가 설계할 자그마한 주택에 계절마다 피는 꽃, 달마다 피는 꽃을 마당에 식재해 사계절을 향기에 취할 수 있는 조경계획을 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곰배령 5월은 어떠한지, 궁금증과 상상력까지 더해가며 산행을 시작했다. 할머니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장을 다니시던 길이란 안내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허약한 체력은 중간쯤 있을 휴게소에서 머물지 않을까 하는 자체적인 판단을 뒤로하고 올랐던 산행은 너무 힘들지 않을 때쯤 정상, 평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거진 숲은 내내 하늘이 보이지 않았는데 정상은 넓디 넓은 평원이었고 그 평원은 야생화가 피어난 천국이었으리라.

아쉽지만 곰배령의 진면목을 보는 데는 시간의 운이 맞았어야 하는 듯 하다. 올해는 지난주까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군데 군데 작은 군락을 이룬 작은 꽃들이 소박하지만 맑은 모습이다. 등산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것이 더 어려운 듯 하다. 내려가는 발걸음은 미끄러질 것 같은 발걸음과 내려본 시야로 온몸이 경직된다. 곰배령은 마지막 100m 구간이 다른 구간보다 경사도가 급하다 보니 막바지에 이제부터 시작인가, 하는 한숨이 나온다. 끝을 모르니 걱정과 함께 뱉어지는 소리다.

곰배령을 내려오며 그 마지막 구간에 서 계시는 분들께 '다왔습니다', '힘내십시오', '보이는 곳이 정상입니다'며 응원의 소리를 전달하는 것은 내가 그곳을 먼저 가봤기 때문이다.

얼마 전 충남여성건축사 간담회가 열려 참석하게 됐다. 1995년도, 여성건축사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시대에서 현재 50여 명에 가까운 여성건축사의 배출은 시대가 변화했음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의 필요성, 자기경쟁력, 비타민 같은 에너자이저, 두려움을 물리쳐라 등, 좋은 말들이 오고갔지만, 언제든지 필요할 때 연락하라는 선배 건축사의 덕담이 가장 마음에 와 닿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삶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직업군도 다르고, 연배도 다르며 성격도 천차만별인 사람들이다. 곰배령을 오를 때 들었던 '수고하십니다', '힘내십시오'라는 낯선 사람들의 반가운인사와 여성 건축사들에게 '언제든 환영합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모두가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의 사람들이자 함께하는 좋은 친구이기 때문 아니겠는가.

김양희 충남도건축사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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