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분산과 수렴'

디자인 씽킹의 대표적 특징으로 언급되는 개념이다. 서로 정반대의 방향을 향해 있고, 절대 어울리지 못할 것처럼 대척되는 단어의 조합이지만 디자인 씽킹에서는 실과 바늘처럼 '2인 1각'을 펼치는 숙명의 동반자이다. 하지만, 현대 직장인이 익숙한 로지컬 씽킹에서는 사실 분산이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수렴만이 등장한다. 이는 아래와 같이 2가지 특징에서 기인한다.

첫째, 로지컬 씽킹에서는 문제가 고객으로부터 주어진다. "북미 시장 TV 점유율 확대 전략은?", "중국 MZ세대 공략을 위한 화장품 온라인 마케팅 방안은?"처럼 문제가 또렷하게 정의돼 제시된다. 둘째, 문제가 주어질 경우, 대개 다음 단계는 문제를 구조화한 후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부터 최적의 안을 도출하는 수렴적 사고를 한다.

하지만 디자인 씽킹에서는 이러한 100% 수렴적 사고를 경계한다. 수렴적 사고는 생각의 폭을 좁히고 상상력의 가능성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하에 디자인 씽킹에서는 수렴을 시작하기 전에 분산을 먼저 한다. 그러고 나서 '분산-수렴-분산-수렴'이라는 생각의 폭과 깊이를 넓혔다고 좁히는 행위를 2차례 이상 반복한다(디자인 씽킹에서는 2번의 분산과 수렴이 반복된다고 해 더블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나는 이러한 더블 다이아몬드에서 첫 번째 분산 다음에 오는 수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고객과의 무한 공감을 위해서 고객과 몇 달, 몇 년을 뒤엉켜 살아가며 인터뷰, 서베이, 이머젼(에스노그라피 방법론)을 하고 나면 그 수많은 가능성을 쳐내려가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고객이 현재 겪고 있는 수많은 '난제'를 목격했는데 그중 하나를, 그것도 가장 인상 깊고 영감 있는 것을 골라서 '뾰족하고 날카롭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고도의 통찰력을 요한다. 첫번째 수렴 단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디자인 씽킹에서는 POV: Point of View라고 한다)을 잘 던져야 한다.

"○○○고객은 ○○○하기 위해 더 나은 방법을 원한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하기 때문이다."

위 프레임에서 특히 마지막 '놀랍게도'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어렵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발견하지 못한 숨어있는, 그렇지만 수면위로 꺼내놓고 보면 놀라운 이유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추우니까 보일러를 튼다', '배고프니까 밥 먹는다'와 같은 직선적인 문장을 선호한다. 하지만 이러한 문장들에는 혁신과 창의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백만 톤의 '못생긴' 과일이 마트 매대에 오르지도 못하고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동물들의 사료로 사용된다. 사실 이러한 과일 중 상당수는 당도와 맛 측면에서는 '예쁜' 과일과 전혀 차이가 없는데도 시각적으로 '별로'라는 이유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권리조차 부여받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를 포착한 캘리포니아의 한 스타트업은 수많은 농장을 방문하고, 농부들과 몇 달을 뒤섞여 살아본 후 다음과 같은 POV를 작성하였다.

"캘리포니아 남부 지방의 중산층 40대 주부 고객은 좋고 나쁜 과일의 기준을 재정의하기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원한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과일의 미의 기준은 도소매 업체가 정한 것이고 먹을 수 있는 못생긴 과일 중 약 20%가 쓰레기로 버려지기 때문이다."

이 스타트업은 최종 소비자는 과일의 외관을 판단해볼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수많은 페르소나와 만나본 결과 소비자들은 과일의 외관보다는 영양소와 맛이 더 중요하고, 더 나아가 못생긴 과일을 폐기처분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부채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과일에 대한 전통적 미의 기준을 확립한 도소매 업체를 건너뛰고 농장과 고객을 직접 연결하는 '못생긴 과일 전문 쇼핑몰'을 설립했다.

'현답현문'

현명한 답, 혁신적인 답을 원한다면 우선 현명하게, 즉, '뾰족하게' 문제를 정의해야 한다. 고객이 왜 현재의 솔루션에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해하는지, 그 이면에 담겨있는 놀라운 이유를 발견해야만 기존 문제해결 방법론이 놓치고 있던 혁신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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