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그리고 올해로 625돌이 되는 세종 나신 날이기도 하다. 세종을 우리 민족의 큰 스승으로 여겨 세종 나신 날을 스승의 날로 삼았는데, 무슨 까닭인지 이날이 세종 나신 날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교육부조차 스승의 날은 기념하지만, 세종 나신 날은 기념하지 않는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왜 우리는 세종을 민족의 큰 스승이라고 하는 걸까?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스승'의 말뜻을 찾아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스승은 우리를 가르쳐서 이끌어주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세종은 살아 있는 동안에 백성에게 몸소 '소통'의 중요성을 실천하여 가르쳤고, 모든 백성을 '사랑'으로 이끌었다. 그것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니 어찌 스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세종의 모든 업적은 '소통'과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왕이 스스로 물어서 신하의 말을 듣는 '윤대(輪對)'라는 말을 찾으면 모두 2686회 등장하는데 그중에 세종실록에만 1159회 등장한다. 그런가 하면 왕이 신하와 함께 학문과 정치를 논하던 '경연(經筵)'은 세종실록에만 2011회로 성종에 이어 2번째로 많고, 왕이 신하를 불러 만나는 '인견(引見)'은 세종실록에만 677회로 영조와 숙종에 이어 3번째로 많다. 사실 재위 기간 등을 고려하면 세종은 조선의 26명의 왕 중에 '윤대'와 '인견'을 가장 많이 한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야말로 '소통'의 중요성을 몸소 실천했던 왕인 것이다.

세종이 그토록 '윤대'를 즐겨 했던 까닭은 세종실록에 기록되어 있듯이 "임금의 잘못과 허물, 정책의 이로움과 해로움, 민간의 어려움과 괴로움, 군신의 옮고 그름을" 직접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종의 가장 큰 업적으로 손꼽히는 '훈민정음(한글)' 창제 역시 당대 지배계급이 독점한 지식과 정보를 백성에게 나누어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사랑과 소통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세종을 조선 시대 왕 중에 유일하게 '대왕'이라고 부르는 이유일 것이다.

오늘날 세종은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글을 몰라 억울한 일을 당하는 백성을 안타깝게 여겨 문자를 만든 왕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러하기에 호주 커틴대학교 교육학과의 리사 림 교수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2020년 10월 6일 자 기사에서 세종대왕을 가리켜 '언어 민주주의를 이끈 천재'라고 평가하였다. 언어 민주주의란 언어가 권력이 되는 시대의 종식을 뜻한다. 즉 어느 한 계층만의 문자가 아니라 모두의 문자를 만들어 누구도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되지 않도록 하였기에 그런 찬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글'에 대한 찬사도 끊이지 않는다. '세계의 문자체계'를 저술한 영국 서섹스대학 명예교수인 제프리 샘슨은 기본 글자인 'ㄱ'에 획을 더해 'ㅋ'을 만들어 거센소리를 적도록 한 것이나 글자 모양이 복잡해질수록 거센소리나 된소리를 적도록 한 것은 매우 과학적이고 혁신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독일 함부르크대학 교수를 지낸 베르너 사세는 한글을 가리켜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을 결합한 세계 최고의 글자"라고 평가했다. 특히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모음을 두고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세종'과 '한글'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세계인의 찬사를 받고 있다. 분열의 언어와 차별의 언어가 지배하는 시대를 지나 배려의 언어와 소통의 언어를 맞이하게 한 것이 바로 '세종'과 '한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 공무원의 언어는 권위와 차별을 극복하지 못했고, 정치인의 언어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며 막말에 조롱까지 일삼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럴 셈인가? 세종 나신 날을 앞두고 세종의 정신을 기리는 날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이제 우리의 언어가 희망을 주는 언어로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김형주 상명대 국어문화원 교수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