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서울은 오후 7시지만 여기 샌프란시스코는 아직 새벽이다. 아침이 되려면 아직 몇 시간이 남았지만, 배꼽시계는 밥 먹을 시간이라고 아우성이다.

새벽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인적이 뜸하다. 어두운 거리에는 노란 가로등 불빛이 바람에 흔들리고, 그 아래 몇몇 노숙자가 보일 뿐이다. 이 시간 허기를 채우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가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 물정 모르던 국제선 부기장 시절, 새벽녘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맨해튼 한국 거리를 나선 적이 있었다. 24시간 영업하는 한국식당에서 맛있는 설렁탕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고 뿌듯해하며 호텔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캄캄한 거리에는 오직 나와 그 사람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고가 나는 미국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지 불길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이라도 뒤돌아서 다른 길로 갈까? 아니면 길을 건너서 저쪽으로 걸어갈까? 내가 고민하는 사이 상대방이 먼저 길을 건너서 멀어져 갔다. 짧은 시간이지만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 사건 이후로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해 뜨기 전에 호텔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소심한 김 기장의 원칙이 됐다.

샌프란시스코의 먼 하늘이 파랗게 물들기 시작할 즈음, 나는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Union Square 근처 Loris로 방향을 잡았다. Loris는 나름 동네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나는 식당으로 가는 길에도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큰길을 따라 불이 켜진 상점 앞으로 걸었다.

새벽 일찍 손님이 오리라고는 예상을 못 했는지, 아니면 아침 영업 준비를 하느라 바빴는지 알 수 없지만, 식당엔 반겨 주는 이가 없었다. 기다리며 안을 둘러보니, 마릴린 먼로 사진과 2차 대전에 참전한 군인의 사랑을 소재로 하는 영화 포스터가 여러 장 걸려있었다. 식당 주인의 취향인 듯했다.

"Hello!"하고 크게 외치자, 머리에 흰 모자를 쓴 친구가 주방에서 급히 뛰어나와 나를 맞았다. 현지 식당에 가면 언제나 그 식당에서 제일 인기 있는 메뉴를 주문한다. 팬케이크를 먹을 운명이었나 보다. 젊은 주방장이 나에게 Loris에서 제일 맛있다는 팬케이크 곱배기를 추천했다. 망설이지 않고 주방장 추천메뉴를 시키고 Sunny Side Up Egg를 추가했다.

커피가 먼저 나왔다. 그 향긋한 냄새에 감동하고 있을 때쯤 팬케이크도 나왔다. 두툼한 팬케이크 세 장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계란 두 개가 얹어져 있었다. 물론 소시지 세 개, 베이컨 네 장, 그리고 삶은 콩과 감자튀김도 곁들여져 나왔다. 팬케이크가 해물파전만 했다. 주방장은 팬케이크에 시럽이랑 버터를 듬뿍 발라야 먹으라고 했지만, 신체검사가 걱정인 김 기장은 시럽을 조금 뿌리는 것으로 만족했다.

산더미 같은 식사를 하는 사이, 아침이 밝아왔다. 어둠이 걷힌 도시는 잠에서 깨어나 활기차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거리는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서울은 잠잘 시간이지만, 나는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무작정 걷기로 했다. 지금 잠이 들면, 밤낮이 바뀐 채로 지내다가 피곤한 채로 비행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선 조종사에게는 시차 적응이라는 숙제가 따라다닌다. 몸은 깨어 있는데 조종사는 억지로 잠을 청하고, 몸은 자려고 하지만 조종사는 커피를 마시고 허벅지를 꼬집으며 잠을 쫓는다. 경력이 쌓이면서 요령을 터득하는 조종사도 있지만, 대부분 조종사는 시차 적응이 쉽지 않다. 조종사라는 직업이 자유롭고 편안해 보이지만, 시차를 거슬러 허기와 싸우고 수면을 조절해야 하는 속사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지난 2년은 누구도 코로나를 피할 수 없었지만, 호텔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식사도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조종사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루속히 코로나에서 벗어나 바쁘게 비행하고 야외를 걷고 달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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