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범 건양대병원 홍보실장
정인범 건양대병원 홍보실장

소아과의원에서 진료를 하는 고교 동창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숨이 차서 진료를 받고 싶다며 대학병원에 왔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진료실로 들어왔다. 다소 긴장한 모습이었다. 형식적인 인사를 간단히 주고받곤 곧바로 자신의 증상을 쏟아 냈다.

두 달 전부터 조금씩 숨이 찼고, 감기약 정도만 먹고 기다려 봤는데 오히려 점점 심해졌다고 했다. 평소에 자주 속이 쓰렸지만 그 부분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 외에 특이 사항은 없었다. 마침 금식 상태로 왔기에 CT 검사 등 몇 가지 검사를 진행했다. 검사를 다 하고 그 친구는 다시 진료실로 들어왔다. 몇 시간 전보다는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그래 결과가 어떻게 나왔…" CT 사진을 보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위에 암 덩이가 보였고, 그것이 폐로 전이돼 가슴막에 물이 찬 상황이었다. 불과 몇 시간 만에 말기 암 판정을 내려야 하는 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 친구는 입을 다문 채 눈만 껌벅이더니 이내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참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상황이 예방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그 친구는 본인 직업이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검진을 받기가 귀찮고 아플까 봐 무서워서 그랬다. 무엇보다 암 같은 질병은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 막연히 여겼다. 하지만 막상 진단을 받고 나니 검진을 위해 잠깐의 시간도 내지 않은 것과 내시경검사를 무서워했던 자신에게 너무도 화가 난다고 했다. 본인에게 이런 것이 생길 가능성은 없다고 단정한 것이 너무도 바보 같았다고 후회했다.

위암은 수개월 만에 크기가 커지거나 전이되지 않는다. 보통 천천히 진행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위암이 발생해 전이까지 됐을 정도라면 이 친구의 질병 시작은 적어도 수년 전이었을 것이다. 2년 전 그 흔한 위내시경 검사라도 받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으로 안타까웠다. 종합검진센터에 와서 반나절만 시간을 썼더라면 일찍 이 병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친구의 치료 목표는 `여생의 연장`이 아닌 `질병의 완치`가 됐을 텐데 말이다.

"바보 같은 녀석!"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초등학생 막내를 둔 이 젊은 가장에게 평범한 하루는 소중한 여생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앞으로 편치 않은 투병 생활을 감수해야만 한다.

건강검진을 대하는 태도는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보통은 나이가 젊을수록 귀찮아한다. 나이가 들어 큰 병 하나쯤 경험하고 나면 그제야 적극적으로 검진을 받는다. 미리미리 발견해서 치료해야 고생을 덜 한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정말 무서운 건 검사를 받는 것, 새로 질병을 발견하는 것이 아닌 치료 불가능한 시기에 뒤늦게 병이 발견되는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예측할 수 없는 사고나 질병을 염려하며 살 필요는 없지만 본인도 모르는 질병이 있다면 커지도록 두면 안 된다. 큰 병은 작은 병에서 시작한다. 건강검진을 피해서는 안 된다. 검사받기 무서워하고 행여 나쁜 병이라도 진단될까 겁이 나서 검사를 안 받는 사람들은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손쓸 수 없는 단계에서 진단을 받게 된다. 그제야 뒤늦은 적극성을 보인다. 정말 두려운 상황에 비한다면 건강검진의 귀찮음 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25명 중 한 명이 암 환자다. 그리고 매년 25만 명이 새로이 암 진단을 받는다. 이는 한 해 태어나는 아기들의 수보다 많다. 과연 암에서 자유로운 국민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검진으로 손해만 봤다는 경우가 있을까? 건강검진은 적극적으로 받아야 한다. 건강검진은 시간과 돈이 드는 불편하고 귀찮은 것이 아니다. 검진을 예약하는 사람은 미래의 건강에 투자하는 것이다.

미래의 그대에게, 새 삶을 선물하자.
 

정인범 건양대병원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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