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나이로비의 아침 햇살이 오렌지색 커튼 사이로 비칠 때, 어쩐지 내 몸은 한밤중인 듯 무겁고 콧물이 줄줄 흘렀다. 어젯밤 나이로비 국제공항으로 접근을 시작할 때 오한이 느껴졌는데, 밤새 컨디션이 더 나빠진 것 같았다.

내 마음속에서 두 친구가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친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흔치 않지만, 비행할 때 비염은 위험한 상황으로 발전하기도 하지. 몇 년 전 신 기장이 비행 중에 비강이 막혀서 고생하다가 결국 연료를 방출하고 회항했던 거 기억나지? 조종사가 아프면 안전에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지금 회사에 전화하면 어떨까?"

다른 친구는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호들갑스럽기는… 조금 쉬면 되는데, 번거롭게 회사에 전화할 필요 없어. 그리고 감기 좀 걸려도 비행하는 데 아무 문제 없어. 나이로비 공항에는 널 대신할 기장이 없다는 것 알지? 네가 비행 취소하면 회사는 손해가 막심하다고. 승객을 호텔로 보내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지 몰라서 그래? 또 승객들도 연결 편 놓치면 차질이 크다고. 웬만하면 비행해."

이 말을 듣고 있던 첫 번째 친구가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조종사가 아프면 안전하게 비행할 수 없다는 건 상식이야. 몸이 아프다는 사실을 숨기고 비행하는 것은 직업 조종사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잘 알고 있었지만, 회사에 소속된 조종사로서 두 가지 결정 사이에서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건강한 상태에서 비행을 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아무리 건강관리에 신경 써도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생기곤 한다. 완벽한 컨디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비행을 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도 않은 경우, 애매한 상황이 또 다른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돌아가는 비행까지는 14시간이 남아 있으니 일단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비행 전에는 약을 먹을 수도 없으니 아침 먹고 가볍게 산책하면서 컨디션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나이로비 호텔 밖은 출근하는 시민들과 경적을 울리며 바쁜 길을 재촉하는 차량들로 넘쳐났다. 활기찬 거리를 걸으니 컨디션도 좋아지는 것 같았다. 회사에 전화하지 않은 건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면서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호텔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조금 더 쉬기로 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게 잠에 빠져들었고 오후 햇살이 눈 부셔 잠에서 깼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이제는 콧물이 그치지 않고 흘러내렸고 목소리도 이상하고 목도 아픈 지경이었다. 조심스럽게 발살바를 했는데 왼쪽 귀는 완전히 막혔고 오른쪽 귀도 정상은 아니었다.

이 상태로 비행을 할 수 있을까? 비행까지는 5시간도 남지 않았다. 나는 공항 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점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기장입니다. 오늘 밤에 암스테르담으로 비행하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만, 제가 몸이 안 좋아서요.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비행이 가능한지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화기 건너편에서 당황하는 지점장의 모습이 목소리로 전해져 온다.

"몸이 안 좋으시다고요? 제가 의사 선생님을 호텔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 백발이 성성한 인도 의사 선생님이 방으로 찾아왔다. 내 증상을 다 들은 의사선생님은 가방에서 플래시를 꺼내 들고서 내 귀속을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막도 붉은색이고 막혀 있을 뿐만 아니라, 코도 막혀 있습니다. 급성 중이염과 비염입니다. 오늘은 비행할 수 없습니다. 처방해 주는 약을 먹고 쉬면 내일 저녁 승객으로 비행기를 타고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일부러 아픈 건 아니었지만, 회사에 큰 피해를 끼쳤다는 죄책감으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지점장님, 제가 오늘 비행을 할 수 없다고 하네요."

"기장님, 약 드시고 쉬시면 곧 나아진다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우리 모두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비행은 지연되었고 회사는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를 감수했고, 동료들은 나를 비난하기보다 나의 건강과 안전을 기원해주었다.

조종사들은 건강관리를 업무의 연장으로 생각하며 주의해야 한다. 운동선수와 비슷하다고 보면 좋을 듯하다. 평소에 체력관리와 혈압 및 혈당 조절에 힘쓰고 비행 전 금주와 충분한 수면을 지켜야 한다. 약물도 조심해야 하고 현지의 물이나 식사, 비행 전 감정 컨트롤도 중요하다. 나이가 들수록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기분 내키는 대로 편하게 지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만,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 조종사 개인도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 아무도 위험에 빠지지 않는다.

김경태 한국항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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