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대학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교수님, 디자인 씽킹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무엇이 있나요?"

디자인 씽킹을 강의하다 보면, 가장 자주 접하는 질문 중 하나이다. 사람들은 보통 새로운 개념을 맞닥뜨리면 이 개념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사례에 의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내 나름 재미있고, 인상적인 예시를 들고 나면,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에이, 기존의 방법과 뭐가 다르다는 거지? 개념은 거창한데, 예전 방식과 별반 다를 바 없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디자인 씽킹을 대표하는 사례는 없는 것인가? 혹은, 진정 디자인 씽킹은 기존 다른 문제 해결 방법론과 큰 차이가 없는, 이름만 거창한 개념인가?

다음의 사례를 통해 디자인 씽킹이 기존의 방법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자.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들과 함께 병원에 가는 것이 얼마나 고역인지 알 것이다. 청진기를 들이대기도 전에 울음을 터뜨리기 십상이며, 주사라도 맞으려면 몇 분을 어르고 달래야 한다. 주사 놓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MRI를 찍는 것은 어떨까? 실제 80% 이상의 어린 환자들은 진정제 투여 없이는 MRI 촬영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기업이 어린이용 MRI를 개발하기 위해 달려들었다. 먼저 세계적인 헬스케어 기업, GE는 `공포와 모험`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점에 착안해 MRI 장비가 주는 공포감을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놀이기구를 타는듯한 어드벤쳐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MRI를 알록달록한 우주선, 보물선으로 디자인해서 금속성을 최대한 제거했고, 의사, 간호사 선생님 역시 보물선의 선원, 우주선을 타는 우주인으로 분장해 아이들을 맞이했다.

GE의 경쟁사인 필립스는 유아용 MRI를 보조하는 `놀이터 MRI`를 만들었다. 이는 아이들이 MRI를 왜 공포스러워하는지 아이들의 입장에서 문제를 바라본 결과이다. 사실, 아이들이 MRI를 무서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전 처음 본 물건이고, 터널처럼 어두운 공간에 엄마 아빠 없이 혼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필립스는 어린이들이 느끼는 `낯섦`에 주목했다. 필립스는 실제 MRI실 옆에 자그마한, 파스텔톤의 놀이터를 만들었는데 이곳에는 어린이 키에 맞는 작은 플라스틱 장난감 MRI가 있고 그 옆에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인형이 가득하다. 어린이가 동물들을 하나둘 씩 장난감 MRI에 넣어보고 몇 분 뒤 꺼내 보는 놀이를 하고 나서 MRI에 익숙해지고 난 후 본인이 직접 MRI 장비에 들어가는 거부감이 한층 사라졌다.

다시 앞서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디자인씽킹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례는 무엇인가?"

사실, 저 질문은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우선, `반대로 로지컬 씽킹을 가장 잘 대변하는 사례는 이야기할 수 있나요?"라는 일차원적인 `욱하는` 반론을 가져올 수 있다. 두 번째로는 보다 근본적으로, 무언가를 가장 잘 대변하는 한 가지 최고 사례를 선정한다는 것이 디자인 씽킹의 철학과 맞닿아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 가지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는 접근법은 퍼즐을 풀어나가는,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접근 영역에서는 언제나 환영받는 편안한 접근법이 분명 맞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즐기고 `고약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디자인 씽킹의 방법론에서는 한 가지 사례가 아니라 다양한 사례가 상호보완적으로 존재하는 미덕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닫히지 않고 창의성이 꿈틀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시 어린이 MRI 사례로 돌아가서, 과연 둘 중에 뭐가 더 좋은가?

"글쎄요, 고르기 어려운데요"라는 대답을 생각했다면 아직 멀었다. 아직도 위와 같은 수렴적 사고방식에 기인한 질문에 갇혀 있는가?

아인슈타인은 대학에서 강연하던 시절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중간고사와 동일하게 출제했던 적이 있다. 이에 학생 중 하나가 `교수님, 죄송하지만 문제가 지난번과 동일한데요.`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맞네, 지난번과 동일한 문제라네. 하지만 문제가 같다고 답이 같지 않을 수도 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