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이승재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건축공학부 교수

오랜만에 제주를 다녀왔습니다. 아니 비행기도 참 오랜만에 타 보았습니다. 예전에 그렇게도 싫던 비행기 내부의 향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청주공항에서 줄을 서서 타는데 너무도 많은 승객들로 깜짝 놀랐습니다. 1시간 채 되지 않는 비행시간 동안 창을 통해 육지를 바라보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일과 다음 날의 모든 공식일정을 마치고 귀가 비행기 시간이 3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같이 갔던 일행에게 서귀포 쪽의 건축물 견학을 제안했습니다. 왕복 이동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한번 가보자 의견이 모여져 5명이 방주교회를 먼저 가자고 제안했기에 30분 이상을 달려 도착했습니다. 그 날의 날씨는 올해 들어 처음으로 느낀 눈이 부시는 봄날이었습니다.

방주교회는 2011년 작고한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伊丹潤, 한국명 유동룡)이 설계한 지하 1층·지상 2층, 200평 정도의 건축면적으로 2009년 완공됐습니다. 유동룡은 1937년 도쿄 태생으로 그는 평생을 대한민국 국적으로 살았고 그 당시 모든 재일동포들이 그랬듯이 일본 사회의 혹독한 차별들이 재일교포들을 짓눌렀고, 심한 멸시와 모진 학대 속에서 성장한 2세 자녀들과 마찬가지로 이타미 준이냐 유동룡이냐의 정체성에 대한 숙명과 같은 고민을 오롯이 등에 지고 살아온 건축가였습니다. 토쿄 태생의 유동룡은 한국인 건축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본 건축가로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항상 날카로운 경계의 선에서 모든 관성에서 벗어나 오로지 그만의 설계를 추구했고 `물, 바람, 돌, 땅` 이라는 건축용어를 자주 사용해 조형과 형태를 표현했습니다.

방주교회의 방주는 네모난 배를 말하는데, 구약의 성경에 에덴동산의 동쪽으로 추방된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은 종족이 번성하여 그에 따른 온갖 악행들을 행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은 순종했던 노아와 그 세 아들에게 방주를 만들라 명하였고, 그 명에 따라 방주 속에 하늘과 땅의 암수 한 쌍식을 방주에 실어 대홍수를 피하고, 홍수가 그치고 물이 빠지자 지금 터키지역의 아라랏트산 중턱에 방주가 멈추었고 다시 인간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됐다고 합니다. 류동룡은 방주의 교회를 제주의 중산간에 위치시킴으로서 한라산과 아라랏트를 그리고 노아의 방주로 연결시켰을 것 같습니다. 방주의 교회는 그가 지금까지 사용해 왔던 건축용어에 `하늘, 빛`을 추가시킵니다. 나무와 유리로 벽을 만들고 삼각형 금속조각을 이어 붙여 방주의 지붕을 만들었습니다. 지붕의 삼각형의 금속조각이 반사하는 빛은 홍수가 그친 그날의 빛이 상상이 되고, 교회 내부에선 정면의 벽과 천정이 만나는 곳으로부터 쏟아지는 빛은 우리 시각의 원근감을 방해할 정도의 강렬함이 있습니다. 신자석 50명 규모의 작은 교회지만 이 내부에선 누구라도 경건하지 않을 수 없고 엄숙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방주교회의 단순한 형태의 양쪽으로는 바람이 만드는 부드러운 물결과 작은 돌들이 물속에 있다. 아마도 방주교회의 빛은 세상을 밝게 비추라는 빛이고 물과 돌은 바닷물의 역할인 소금을 말하는 것일 게다. 나는 내가 속한 곳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빛과 소금이 아니더라도 구름을 몰고 가는 바람일 수 있을까 자문해 본다.

유동룡은 2003년 유럽 최대 규모의 동양 미술관인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서 건축가 `일본의 한국 건축가`로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고, 그 덕분에 2005년 프랑스에서 예술문화훈장인 `슈발리에`와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2006년 `김수근 문화상`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2008년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인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했다. 보수적인 일본 건축계가 외국인에게 이 상을 수여한 건 당시가 처음이었다.

우리 충남에도 그의 작품이 있다. 1982년 작품인 온양미술관(구정아트센터)이 그것이다. 거북선을 상징하는 지붕과 충남의 `ㅁ`자형 가옥구조를 연상케 하는 대단히 한국적인 작품이다. 또한 방주의 교회 근처의 `포도호텔(2001)`, `수·풍·석 미술관(2006)` 등의 대표작도 꼭 느껴야 할 건축공간이다.

다음에 방주교회를 방문할 때는 누울 수 있는 매트를 꼭 지참하려 한다. 방주교회 옆의 잔디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이 있는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방주에 타고 있다는 느낌이 반드시 들 것 같다. 누워서 홍수가 그친 후 펼쳐진 맑고 환한 하늘을, 그리고 구름을 몰고 다니는 바람을 다시 한 번 느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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