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정병익 솔브릿지국제경영 교수 겸 네모파트너즈 디자인사이트 대표

디자인 씽킹 워크숍, 강연을 진행하다 보면 대부분의 학생 및 참여자들이 아이디어 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법한 안정적인 아이디어를 하나 달랑 내놓고 나서 입을 닫기 일쑤다.

아이디어 도출하기를 주문하고 10분 정도 시간을 주고 나서 확인해보면, 10개 이상 아이디어를 발굴한 팀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그럴듯한, 모두가 수긍할만한 아이디어 3개 정도를 도출하고 나서 그 아이디어들을 더욱 정교하고 그럴싸하게 만드는 데 시간을 투여한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평가하기 이전에, 식탁에 올려질 아이디어는 적어도 30개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기존에 보지 못했던 참신한 아이디어도 떠오르고, 보다 공정한 평가도 가능하다.

사람들은 흔히 창의성이 뛰어난 혁신가들을 총을 난사하는 `람보라기`보다 `원 샷 원 킬 하는 스나이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뛰어난 사람은 항상 정답만 내놓는다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시대의 축구를 지배하는 두 명의 스타인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비교해보자. 축구 선수 개인의 최대 영광이라고 할 수 있는 발롱도르를 최근 10년간 번갈아 가면서 양분한 것만 보더라도 두 선수는 그야말로 용호상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선수는 스타일이 너무나도 달라 평가가 엇갈린다. 리오넬 메시가 적은 활동량으로 본인의 에너지를 선택과 집중하는 스타일이라면 호날두는 폭발적 활동량을 바탕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그렇다면, 이 두 명의 선수가 같은 회사에서 회사원으로 근무했다면 그들의 운명은 어찌 됐을까? 현실에서는 호날두가 백전백승했을 것이다. 특히, 창의성과 혁신을 그 평가 잣대로 했다면 호날두의 절대적 압승이 전망된다.

와튼 스쿨의 애덤 그랜트(Adam M. Grant) 교수는 그의 저서 `오리지널스`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람들이 실제는 스나이퍼가 아니라 람보에 가깝다고 한다. 정교하게 과녁을 겨누는 것보다, `다다다다` 마구 난사하는 것이 더 창의적이라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아는가? 햄릿, 리어왕, 그리고…

다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이러한 희대의 걸작을 남긴 셰익스피어는 과연 몇 권의 작품을 남겼을까? 그가 쓴 희곡만 37편, 소네트는 154편에 이른다. 어떠한가? 생각보다 지나치게 많지 않은가?

음악계는 어떨까? 우리가 즐겨듣는 베토벤, 모차르트, 바흐의 작품은 기껏해야 15곡 내외다. 그렇다면 그들이 작곡한 곡은 얼마나 될까? 모차르트는 35세에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작곡한 작품 수가 600여 곡에 이른다. 베토벤은 650곡 이상 작곡했으며, 심지어 바흐의 작품은 1000곡에 이른다.

발명왕 에디슨 역시 1098개의 특허를 받았지만 진정 탁월한 발명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또한, 피카소는 드로잉 1만 2000점, 도자기 2800점, 유화 1800점, 조각 1200점을 남겼지만, 찬사를 받은 작품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다다익선(多多益善)

일손이 많을수록, 옵션이 많을수록 더 좋다는 의미의 다다익선은 단순히 양적인 많음을 칭송하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 씽킹에서는 양적인 많음이 질적 창의성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창의적인 생각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단 내는 아이디어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기보다는 기존에 냈던 아이디어에 집착해 그 아이디어가 완벽해질 때까지 수정하는 것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창의적인 사람은 일단 아이디어를 많이 낸다. 다작이 혁신을 이끄는 이유는 어떤 아이디어가 혁신적일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해답이 되는 것이다. 즉, 아이디어의 질은 아이디어의 양으로 측정된다.

곱씹어 보면 다다익선만으로 뭔가 부족한 듯싶다. `다다다다익선`이라는 자세로 지금 마주하고 있는 문제를 다뤄보자. 아이디어는 예쁘게 `빚는` 것이 아니라, 그다지 예쁘지 않게 `뱉는`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는가? 그냥 뱉어내자.

그렇게 혁신과 창의의 싹은 움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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