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검승부 않고 돈 퍼주기 대결
'닮은꼴 정책'에 동네 공약까지
대전충청 공약도 변별력 없어
시대정신 담긴 거대 담론 실종

은현탁 논설실장
은현탁 논설실장

대선 후보 간 정책 대결을 기대했는데 퍼주기 대결이 되고 있다. 대선이 코앞인데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거대 담론은 찾아볼 수 없고 사탕발림식 공약만 쏟아지고 있다.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선심성 공약, 포퓰리즘 공약은 도를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대선판 전반에 상대 후보보다 더 많은 돈을 풀어야 이길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이 팽배하다. 우리 대선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쩐(錢)의 전쟁`에 불을 지핀 사람은 지지율 1, 2위를 다투고 있는 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다. 두 후보의 퍼주기 경쟁은 전 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다투던 지난해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후보가 15조 원에서 25조 원 규모를 들고 나오자 윤 후보는 한술 더 떠 50조 원 소상공인·자영업자 추가 손실보상으로 맞불을 놨다. 이번에는 국무회의에서 14조 원 규모로 의결한 추경안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이 후보가 35조 원을 제안하자 윤 후보는 45조 원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새해 예산안 잉크도 마르기 전에 추경을 하자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이 후보와 윤 후보의 지역별 공약은 대부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드는 SOC공약이다. 현 정권에서 비용 문제로 엄두를 못 냈던 사업들도 일단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공약을 이행하려면 지역별로 최소한 수 십조 원, 전국적으로는 수 백조 원에 이른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는 뒷전이고, 일단 내지르고 보자는 식이다.

두 후보의 베낀 듯한 닮은꼴 공약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윤 후보가 `병사 봉급 200만 원`을 SNS에 한 줄 공약으로 올렸는데 이건 이 후보가 선택적 모병제를 도입하면서 꺼냈던 공약이다. 윤 후보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나 이 후보의 여성가족부 개편 공약도 큰 틀에서는 오십보백보다. 윤 후보가 연말정산 환급분을 늘리겠다고 하자 이 후보도 곧바로 공제 확대와 간소화 방안을 들고 나왔다.

부동산 민심을 잡기 위한 공약도 숫자 놀음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많다. 이 후보는 임기 내 주택공급 목표치를 기존 250만 호에서 311만 호 61만 호를 올려 잡았다. 윤 후보의 250만 호 공약을 의식해 이 보다 더 많은 물량을 제시한 듯하다. 전문가들은 250만 호든 311만 호든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 공약도 마찬가지다.. 행정수도 완성과 철도망 구축을 포함한 SOC 인프라 확충, 특화된 지역 먹거리 집중 지원 등 여야의 지역공약은 일부 단어만 다를 뿐, 내용면에선 변별력을 찾기가 힘들다.

`재명이네 공약센터`와 `윤석열의 공약위키`를 보면 귀가 솔깃해 진다. 가상화폐 과세유예, 장병 반값 휴대폰, 청년 기본대출, 장년수당, 주 4일제까지 선심성이 아닌 게 없다. 표심을 의식하다 보니 나온 공약인데 국민 정서와는 괴리감이 있는 게 많다. 생활밀착형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것도 과연 대선 공약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대선 후보라면 국정 철학과 시대정신이 담긴 담론이나 공약을 내놓아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다. 역대 대선을 보면 2002년 행정수도 이전, 2007년 4대강 살리기, 2012년 경제민주화, 2017년 적폐 청산 등이 선거판을 관통했다. 이번 대선은 이런 거대 담론의 자리를 동네 수준의 공약들이 대신하고 있다.

이 후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윤 후보는 `59초짤`, `석열씨의 심쿵 약속`을 내걸고 있다. 이 후보는 1호 소확행 공약으로 `오토바이 소음 근절`을 제시했고 윤 후보는 `택시운전석 칸막이 설치`를 내걸었다. 하다 하다 이제는 유치원 확장, 소규모 공원 조성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20대 대선은 유례없는 비호감 대선, 별 희한한 대선으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거대 담론이 없는 밋밋한 선거, 퍼주기 일색인 사탕발림 선거, 누구의 공약인지 정책 변별력이 없는 선거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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