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눈동자 안의 지옥(캐서린 조 지음·김수민 옮김 / 창비·400쪽·1만 6000원)

`엄마`의 스트레스와 정신적 문제는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져 지워지는 경우가 많다. 출산 후 여성 대부분은 일시적인 우울감을 느끼는 수준을 넘어 10-20%는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우울증을 겪고, 1000명 중 1-2명은 수면장애나 망상, 극도의 정서 불안 등을 동반하는 산후정신증을 경험한다. 저자는 출산 3개월 후부터 극도의 불안과 우울을 느꼈으며,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갓난아이를 데리고 시부모의 집을 방문해 머물던 어느 날 아이의 얼굴에서 번뜩이는 악마의 눈을 봤고, 자신이 지옥에 떨어졌다고 믿게 된다. 벽이 좁아지고 숨이 막혀오며, `신`의 목소리를 듣고 아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경험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다. 저자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마침내 현실 감각을 되찾았을 때, 정신병원에 입원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이 책은 산후정신증을 겪은 저자가 정신병원에 2주간 입원하며 겪은 일, 그리고 현실을 되찾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되짚는 내용을 담았다. 저자의 기억은 가부장적인 아버지 아래서 숨죽이며 자랐던 어린 시절, 폭력적이었던 옛 연인이 남긴 트라우마, 결혼과 출산 그리고 아이를 둘러싼 주변의 지나친 관심과 조언으로 이어지며 정신병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는 솔직한 이야기가 아슬아슬하면서도 흥미롭다.

한편 한국계 미국인인 저자는 미국에서 나고 자라며 한국과 미국 양쪽의 문화를 모두 경험했다. 낯선 시각으로 마주하는 한국 문화는 우리가 금과옥조로 여겨왔던 관습들을 재고해보는 계기를 제공한다.

한국의 전래동화 속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에 의문을 품으며 낙천적인 `미국식 해피엔드`를 꿈꿨다. 하지만 한편으로 한국인이 겪어온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떠올리며 슬픔과 고통이 자신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닌지, 보고 들은 모든 것이 비극적인 운명을 암시했던 것은 아닌지 혼란스러워한다. 이런 혼란 속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나 뉴욕과 홍콩, 그리고 런던에 거주했으며, 사랑과 희생의 의미를 다시 써내려간다. 여러 문화의 경계에서 경험한 갈등, 그리고 그 갈등에서 비롯한 망상과 환각을 솔직히 털어놓는 맹렬하고 번뜩이는 이야기가 숨막히게 펼쳐진다. 박상원 기자·이태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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