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정확하게 처리하는 지혜를 얻으려 한다. 모두가 지혜로워지고 싶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드물다. 어떻게 해야 지혜로울 수 있을까.

먼저 사물에 대한 앎(知)이 있어야 한다. 알려면 배워야 한다. 배움은 두 가지 방향에서 일어난다. 하나는 가르치는 사람을 통해 배울 수 있다. 학교 교육과 평생교육은 먼저 알고 있는 사람을 통해 배움이 일어난다. 가르침이 없어도 배움이 가능하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배울 수 있다. 외부에서 주어지면 교육이고, 스스로 배워 쌓으면 교양이다.

두 번째는 생각(思)해야 한다. 사색할 수 있어야 한다. 곰곰이 생각지 않으면 오류를 알 수 없다. 일이나 상황을 파악할 때 생각 없이 한다면 로봇과 다르지 않다.

<논어> 위정편은 `배우기만 하고 스스로 사색하지 않으면 학문이 체계가 없고(學而不思則罔), 사색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오류나 독단에 빠질 위험이 있다(思而不學則殆)`고 한다.

세 번째는 식(識)이다. 명확히 안다는 것은 글로 쓸 줄 아는 것이다. 학생이 교사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거나, 부하가 상사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명확히 안다고 할 수 없다. 기획안이나 보고서는 제대로 써야 한다. 보고 받는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식(識)하다고 할 수 있다.

네 번째는 견(見)이다. 의견을 갖는다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나 문제에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하면 지혜롭다고 할 수 없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아이히만은 `학살은 옳지 않다`라는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인류의 과오인 홀로코스트에서 견(見)을 내놓은 것이 중요함을 배운다.

知思識見을 거쳐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解) 지혜다. 지혜는 인류사의 중심축이 되는 축의 시대(B.C. 900~B.C. 200)부터 가지려 했다.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 보는 시야를 넓히고 지평을 새롭게 열어주어야 고전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목숨 값이 다른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의 문제를 의식하고 답을 고전에서 찾아보자. 지혜를 구하는 일은 사회 구성원 모두의 몫이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는 알렉시스 토크빌의 통찰을 기억하자.

<독서로 말하라> 저자. 북칼럼니스트 노충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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