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은 건축문화재를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건축문화재 연구는 오래된 건물을 실측하고 사진을 찍어 기록하고 그 특징을 조사하는 것으로, 그 대상이 되는 오래된 건물은 궁궐 등 몇몇의 건물을 빼면 주로 절에 많이 남아 있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곳이 대전이니 대전을 비롯한 충청도 지역의 중요한 건축문화재를 소개하면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나, 공주 마곡사 대웅보전 등이 있다. 하지만 건축문화재를 연구하면서 개인적으로 내가 더 좋아하게 된 것은 이런 문화재적인 가치를 많이 갖고 있는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이들 건물이 있는 절로 오르는 길이다. 이것은 내가 건축역사를 공부하고 문화재를 연구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우리나라 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절이 위치하고 있는 장소이다. 우리나라의 절은 대부분 산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것도 쉽게 갈 수 있는 산이 아니라 차를 타고 한참을 산속으로 들어가서 차에서 내리고도 또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실이지만 결코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불교가 주요 종교인 여러 나라들을 방문해 보면 몇몇의 예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절은 도심 가운데에 있거나 혹은 비교적 교통이 편리한 곳에 있어 누구라도 방문하기 쉬운 곳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절을 산사(山寺)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 산사로 오르는 길은 경건한 마음가짐을 만들어내는 건축적 장치이기도 하다. 이른 아침 안개 낀 산길을 걸으며 산사로 오르면 불자가 아니더라도, 또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더라도 뭔가 알 수 없는 엄숙함과 경외로운 마음가짐이 된다. 봄에는 눈처럼 내리는 벚꽃 잎을 맞고, 여름에는 높이 솟은 나무사이로 지나는 시원한 바람을 맞는다. 가을이면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나뭇잎을 보며 어릴 적 소년의 감성에 젖고, 겨울이면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으며 세상의 온갖 힘들었던 일을 잊고 나 스스로와 만난다.* 이렇게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 샌가 길가에 하나둘 쌓여 있는 돌탑들을 만나게 된다. 그럴 때마다 잠시 멈추어 누군가의 소망이 쌓여진 돌탑에 나의 소망하나를 조심히 얹어 돌탑을 완성해 본다.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행위는 가장 기본적인 종교행위이자 건축행위이다. 성경에 보면 대홍수 이후 다시 땅을 밟은 노아는 돌을 쌓아 단을 만들고 하나님께 제사를 지냈으며, 부처님의 열반 후 그 사리를 모아 스투파(탑)를 만들었는데 그 역시 돌을 둥그렇게 쌓아올린 것이다. 그 외의 많은 나라에서도 이렇게 돌을 쌓는 것을 발전시켜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 마야나 잉카제국의 신전들을 만들어 내었다. 따라서 우리가 산사를 오르며 만나는 작은 돌탑은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며, 그 위에 나의 소망을 담은 돌을 하나 올려놓는 것은 가장 오래된 건축물을 세우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생활할 때 여행으로 미시건 호수를 둘러보게 되었다. 그때 나는 위스콘신의 케이브 포인트 카운티 공원의 호숫가에서 우리나라 산사를 오르는 길에서나 볼 수 있었던 돌탑들을 보고 매우 놀랐다. 그 곳에서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소망을 담아 호숫가 전체를 돌탑으로 채우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동양과 서양이 다르지 않다. 나도 그곳에 나의 소망하나를 올려두고 왔다.

한욱 건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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