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필름 같은 장면들 다시 시작됐다. 국회의원들이 육탄전 벌이고 삭발하고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동물국회`다. 국회는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공수처), 선거제 개편, 검경 수사권 조정을 패스트 트랙(신속처리 안건지정)에 태우면서 극한 대립으로 들어갔다. 20대(국회)는 처연한 전투장으로 끝날 것 같다. 세 가지 쟁점법안 중 특히 `공수처`는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이 공을 들여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저도 사법부와 법관의 독립을 철저히 보장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사법부 독립은 대통령이 아닌 헌법이 보장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말을 보면 `촛불에 의해 탄생한 민주 정권`이라도 제왕적 대통령의 고정관념과 미련을 떨쳐 내기 어렵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사에서 한국인이 극적인 삶의 변화를 맛본 경험은 1960·70년대 경제개발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1962년 시작됐다. 햇수로 보면 앞으로 4년 후 2022년 환갑 맞는다. 우연인지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는 해다. 동양에서 환갑이란 간지(干支)가 60년 만에 다시 돌아온다는 뜻, 즉 춘하추동(春夏秋冬) 같이 사이클이 한 바퀴 돌았다는 뜻이며 새 시대가 열려야 한다는 의미다.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하기 전 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85달러에서 이제 3만 달러를 넘었다. 지금 GDP규모에서 세계 12위, 무역규모는 6위를 차지한다. 1961년 국민소득이 비슷했던 아프리카 케냐는 아직 1600달러다. 경제개발 핵심전략은 관(官) 중심 계획경제, 수출주도와 빅 푸쉬(Big Push)였다. 국가주도로 개발초기에 필요 없어 보이는 인프라에 자원을 대량으로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1960년대 초 국내산업 수요만 본다면 한국에서 고속도로도 종합제철소도 전혀 필요 없었다. 지금 보면 터무니없는 무리수인 경부고속도로나 종합제철소 건설을 하지 않고 1960년대 한국 경제가 감당할 정도만 투자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한국 경제력은 지금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정부가 끌고 가는 계획경제는 IMF외환위기 이후 외견상 사라졌다. 하지만 그 유산인 강력한 중앙집권과 제왕적 대통령의 잔상은 여전하다. 그래서 한국은 입법, 사법, 행정 위에 제왕적 대통령 즉 `나라님`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이를 당연히 여기는 한국인의 상식도 큰 문제다. 한국에서 새 대통령 취임과 함께 임명하는 자리는 미국 대통령에 비해 약 3-4배에 달한다. 정당 주변에 기웃거리던 정치 룸펜들이 대선만 끝나면 국가기관 감사나 이사장으로 고액연봉에 최고급 관용차를 타고 거들먹대는 인생 역전이 있으니 정치는 늘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전근대적인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환골탈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헌이다. 1987년 개헌 이후 6명의 대통령 모두 불행했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리콜`해야 한다. 1987년 이후 모든 좌우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국가 시스템을 선진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절대 권력이 주어지면 그 전리품만 즐기려고만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권력구조 측면의 개헌은 여야가 그동안 수도 없이 논의해서 접근된 안이 있다. 총리에게 권한을 주어 대통령 권력을 좀 뺏는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헌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총리를 뽑기 위해 국회가 두 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한명을 임명하는 방식이면 된다"고 지난 3월 주장했지만 지금 여야 극한 대립에 전혀 주목을 받고 있지 못하다.

오늘의 모든 행정과 정책이 다음 정권에서 또 다른 적폐대상이 되는 `악마의 사이클`을 이젠 끝내야 한다. 유치한 3류 4류 진영논리, 극한 대립의 난장판 정치, 그 뿌리를 걷어내기 위해 과도한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은 공론화되어야 한다. 2022년에는 지금 같은 나라님이 아닌 행정부의 수반, 선진국의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강병호 배재대학교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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