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지나고 따뜻한 기운이 도는 이즈음이면 한옥 창호문을 새단장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한지 한장만으로도 칼바람 겨울 추위를 거뜬하게 막아냈던 어릴 적 창호문은 한 두군데 늘 찢어져 있었고 그 틈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통로였다. 바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침 묻힌 손으로 몰래 구멍을 넓히게 되는데 그러면 등 뒤에서 어머니의 꾸짖는 소리가 바로 들린다. "또 찢었니?" 깜짝이야. 나는 조금밖에 안 찢은 것 같은데 어머니는 정말 귀신같이 아신다.

그러시고는 옷을 기운 것처럼 이내 막아 놓으신다. 이렇게 겨우내 구멍 나고 손때 묻은 창호문은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헌 한지를 걷어내고 묽은 풀칠로 다시 붙히는 작업을 한다.

솜씨가 좋으셨던 어머니는 눌러 말린 꽃들을 예쁘게 붙이며 디자인 리모델링까지 하신다. 이런 한옥 창호문은 어렸지만 나에게는 부드럽고도 비칠 듯 은은한 느낌과 함께 매력 있는 체크무늬로 보였다. 한복을 하면서는 늘 옷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은 충동이 일었었다.

그러던 차 파리에서 전시계획이 잡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 많은 생각 끝에 어린 시절 느낌을 살려 입을 수도 있고 벽에 장식도 할 수 있게 디자인해 그들의 차갑고 무거운 대리석 위에 창호문 같은 포근한 우리 옷을 얹었다.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현지 외국인들에게 문창살 체크무늬를 설명하니 감탄사를 연발한다. 영국의 명품 버버리의 체크보다도 의미 있고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찢어진 문틈사이로 세상을 바라보고 알아갔던 것처럼 우리의 생활 속 작은 독특함만으로도 충분히 우리 문화를 담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한복 한류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며 혼자 마냥 즐거웠다. 아직은 이따금 느껴지는 따뜻함이 기분 좋은 차가운 날씨이다. 완연한 봄을 알리는 경칩이 지나면 문을 활짝 열고 봄 마중을 해야겠다. 권진순 한복디자이너

<저작권자ⓒ대전일보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