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자 여야 정치권 전선이 지방선거 제도 개편으로 이동하고 있다. 1991년에 도입·시행된 이른바 '91년 체제' 인 지방자치를 어떻게 손질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자 6월 지방선거와 맞물린 시간 싸움이다. 아직은 탐색전 국면이다. 새누리당이 나름의 개혁안을 내밀면서 확전 양상을 띠게 됐다. 자초한 현상이다. 이런 여야 맞대결 구도에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가 가세함에 따라 논리전, 여론전이 가열되고 있다. 앞으로 협상과 타협의 여지는 있다. 하지만, 전망은 어둡다. 그러므로 지방선거 개혁안은 싹수가 절반 정도는 노랗다 할 수 있다.

지방선거 개혁이 말은 멋지지만 손을 대기 시작하면 간단치 않은 과제다. 당초 여야가 재작년 대선 때 공약한 대로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실천에 옮겼다면 사정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문제는 말이 앞섰다는 점이다. 시·군·구청장이나 기초의회 의원에 대해 정당이 공천에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법을 바꾸겠다고 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주로 새누리당 쪽이 위헌 가능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시하는 상황이다. 반면에 민주당은 압박의 강도를 늦추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여기에 새정추가 여성할당제 등을 얹어 호응하는 분위기다.

정리하면 민주당과 새정추는 지방선거 핵심 의제인 기초선거 공천 폐지 문제에 대해 공동전선을 펴고 있고, 이에 대항한 새누리당은 특별·광역시의 구의회 폐지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새누리당은 이 밖에 광역단체장 2연임 축소를 비롯해 몇 가지 더 제시했지만 주력 무기는 구의회 폐지로 볼 수 있다. 사안을 대하는 정치 세력들의 생각과 관점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먼저 기초선거 정당 공천 폐지 문제다. 결론적으로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렇다고 신성 불가침의 영역은 아닐 것이다. 이 문제가 구태 정치의 표본으로 떠오른 배경과 사정은 익히 아는 바다. 그래서 없애기로 공약한 것인데, 법제화된다면 지역구 국회의원은 힘이 많이 빠질 것이다. 사실상 기초단체장, 기초의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까닭에 눈에 안 보이지만 부정과 폐해가 없었다 할 수 없다. 그 고리를 끊어내는 방법이 있다면 끊어내야 한다. 단, 정당공천제가 배제된 데 따른 힘의 진공상태에서 예상되는 여러 부작용으로 인한 기회비용이 공천제 유지보다 더 크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초선거 정당공천제가 폐지되면 제도권 정당들이 합법적으로 기초 선거 단위에 개입할 통로가 차단됨을 뜻한다. 지방자치 권력 지형의 변화를 추동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폐지냐 존치냐를 놓고 선명한 평가와 판단을 내리는 일은 사실 매우 까다롭다. 그럼에도, 시대적 요구가 있고 현역 기초단체장, 기초의원들의 다수 견해가 실재하고 있는 현실이라면 이대로가 좋다는 논리는 설 자리가 좁아지게 된다. 협상의 출구를 열어둬야 하는 이유다.

이에 반해 구의회 폐지 문제는 성격과 차원이 다르다. 대도시 자치구의회를 해체시키게 되면 선출직 기초단체장만 남는다. 이들 단체장이 행사하는 행정권력을 감시·견제하는 기능이 무력화되는 상황이 오는데, 그 공백을 광역의회나 해당 구 출신 복수의 광역의원들이 제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치구 직제에 감사부서가 있긴 하지만 구청장의 인사권에 예속돼 있기 때문에 실효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 그 직을 개방형으로 운용한대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구의회 폐지 문제는 구청장을 선출직제로 두는 한, 기형적인 자치모델로 일그러지게 될 것이다.

지방선거 개혁안 바구니에 쟁점 사안을 많이 담는 것도 좋지만 뿌리 하나를 건드리면 얽혀있는 다른 뿌리가 나온다. 또 그 뿌리는 땅 위의 줄기를 비틀게 된다. 노후한 건물을 리모델링하려다 재건축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낳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방선거 개혁안 논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행정체계, 행정 계층 구조 재편이 선행되면 모를까 현 상태에서 옷이 착 달라붙는 느낌의 특출한 묘안이 나올 것 같지 않다. 부산 떨어야 별무소득이고, 원포인트 개혁안에 집중해도 될까 말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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