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기대감으로 한 해의 출발선에 발을 디딘 후 어느 새 시간은 4월의 봄으로 우리를 이끈다. 겨울을 끝낸 자연은 인고의 시간을 정리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세상에 자태를 뽐내기 시작했다. 임상의 봄도 어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때이기도 하다.겨울을 넘어 봄으로 찾아드는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는가?계절의 변화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소통과 공감을 위해 필요한 뇌의 매우 좋은 감성 에너지원이라 한다. 자연스레 찾아온 봄을 시작으로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보자.소통(疏通)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또는 서로 통해 오해가 없
응급중환자실에서 신규 간호사의 삶이 시작됐다. 쉬지 않고 응급실에서 중환자를 받고, 전동을 보내고, 급성기 중환자를 보는 이곳에서 처음엔 정신을 제대로 차리기도 쉽지 않았다. 아무 것도 모르는 채 물품 위치부터 차근차근 외워가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동기와 공유하면서 공부했다. 같은 부서에 단 둘이 입사한 동기와는 서로간의 버팀목이 됐다. 이후 트레이닝 기간 동안 동기와 나는 스스로가 너무 멍청하다며 깎아내리면서도, 서로에겐 잘하고 있다며 응원하는 걸 잊지 않았다. 한번은 교대 근무자에게 인계를 주는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해 기가
우리는 병원, 가정, 지역사회 곳곳에서 아픈 이들을 돌본다.간호의 내재적 가치는 '돌봄'이다. 간호가 돌봄이라고 해서 거창한 무언가는 아니다. 돌봄은 어머니가 아기를 돌보는 것,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 힘없고 약한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가장 사소하고 인간적인 반응 그리고 행동이다. 간호는 가장 인간적이고 아주 작은 보살핌에서 시작해 인간의 생활과 함께 존재하는 행위다.행위의 주체인 간호사. 우리들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자.높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함께 간호 현장은 더욱 치열해졌다. 그러나 과중한 간호업
밤이 깊은 겨울, 아직은 찬바람이 가득한 이 계절에도 임상의 하루는 이른 시간부터 찾아온다. 아침 해가 서서히 올라 햇살이 병원 창문을 두드릴 때면, 밤 동안 그날의 치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의 하루가 시작된다. 밤사이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며 예정된 치료를 위해 함께 하는 의료진들은 어느 드라마에서 본 듯한 부지런한 발걸음과 다짐으로 하루를 시작한다.그렇게 남긴 발자국과 누군가에게 전한 수많은 언어, 그리고 냉정과 열정의 감정은 시간과 함께 하루를 써 내려간다.그렇게 하루가 시작되듯 새로운 한 해를 맞이했다. 지금쯤이면 많은 이들은 한
"부모님께 효도할게요. 간호사님 제발, 한 번만 살려주세요."아직도 병동 간호사 생활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환자가 있다. 그 환자는 부모님과 연을 끊고 홀로 나와 생활하던 30대 남자였다. 술을 매일 마시던 그는 거동도 하지 못할 정도로 몸이 망가져 병원에 오게 됐고, 접촉주의 환자로 보호자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 연을 끊고 지낸 부모님이 병원으로 오시게 됐다. 입원 기간 도중 환자와 부모님은 사이가 좋지 않아 항상 큰소리가 나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간병을 못하겠다며 집에 돌아가시곤 했다.당시 간호사들
2014년 3월 필자는 부서 배정하던 날의 기쁨을 잊지 못한다. 응급실 간호사로 일하는 것을 너무 소망했는데 운 좋게 원하는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게 됐다. 첫 근무를 하던 날 여기저기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잔뜩 긴장한 채 정신 없이 하루가 지나갔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며 그렇게 2주간의 근무를 마치고 교육전담 간호사가 정해졌다. 당시 3년차였던 교육전담 간호사를 그림자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하면서 기본으로 익혀야 하는 세트 준비부터 비품약 공부, 의료장비의 사용법을 알아가고
필자는 1993년 대전성모병원 근무를 시작해 개원 54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30주년 장기근속상을 받았다. 대한간호협회 창립 100주년의 뜻 깊은 해로 이 또한 감회가 남다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데 3번이나 변했을 시기에 맞이한 감격과 변화다.대흥로 64번 길은 대전성모병원과 맞닿아 있던 성모여고 시절부터 한눈에 담겼던 풍경과 오르막길이 익숙하던 곳이다. 학교를 오르내리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병원과의 인연이 시작됐나 보다. 지금은 병원 출퇴근 길에 여고 시절의 내 모습을 추억해 본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내 인생을 이야기할
어느덧 시간은 바람과 함께 흘러, 봄날의 연둣빛 새잎이 마지막 잎새로 남는 계절이 다가왔다. 차가운 바람과 추위에 새삼 계절의 흐름을 깨닫게 하는 겨울이다.지난 몇 개월의 여정을 돌아보며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의 끝자락엔 다시금 시간의 빠른 흐름에 감탄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잠시 지난날들을 생각해 본다.시간의 흐름이란 자연의 순리에 나를 맡기며, 우리는 그 안에서 무엇을 사유하고 또 그 무엇을 찾았을까?지나온 1년의 여정 속에는 우리를 한 단계 성장하게 했을 성장통도 있었을 것이고,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과 설렘, 그리고 스
작고 네모난 병실 안에 다양한 아픔을 가진 환자들이 줄지어 누워 있다. 누구 하나 사연 없는 이가 없고, 어떤 이의 아픔도 가볍지 않다. 작은 침대 하나에 몸을 의지하면서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싸우는 그들과 만나기 위해 의료진들을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간호사가 약을 투약하는 시간은 유일한 말벗이 생기는 즐거운 시간, 의사가 상처 소독을 해 주는 시간은 아프다고 아이처럼 떼를 써도 눈총 받지 않는 시간, 주치의가 회진하는 시간은 나의 하루를 풀어낼 수 있는 시간.' 병원 안에서 만남을 통해 환자들은 다른 시간을 경험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근무하다 메이요 클리닉에서 공식적인 연수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맞았다.메이요 클리닉 연수의 첫날은 긴 비행시간과 14시간의 시차를 잊을 만큼 기분 좋은 설렘으로 가득한 하루였다. 고풍스러운 멋과 역사를 간직한 메이요 클리닉은 병원 이상의 가치를 지닌 듯 느껴졌다.코로나를 겪은 모든 의료기관이 그러했듯 랭킹 1위에 빛나는 메이요 클리닉의 감염예방 담당 부서와 직접 환자를 응대하는 모든 부서의 노고가 깊이 공감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도 환자를 위해 의료진이 환자에게 어떤 방법으로 다가가야 할 것인
우리는 환자의 가장 가까이서 숨 쉰다. 환자 낯빛의 변화, 일그러진 표정, 변화하는 숫자 하나에 가슴이 요동쳤다가 안도하며 긴 숨을 몰아 내쉰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업무를 하다 보면 흐트러진 머리칼과 창백해진 우리의 얼굴은 돌아볼 겨를이 없고 식사 시간은 그 의미가 모호해진 지 오래다. 우리의 이런 근무 환경은 오늘 내일의 일이 아니다. 어느덧 당연한 일상인 듯 자연스러워졌다.간호사의 근무 환경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대유행을 경험하면서 더욱 대두됐다. 우리나라 국민은 간호사의 희생과 그들의 사명감에 박수를 보냈지만, 재난 상황을
9월에 들어서면서 학생들은 새롭게 2학기를 시작했다. 매해 이때 쯤이면 간호사를 꿈꾸는 간호학과 학생들은 일정 기간을 두고 교과과정의 일부로 실습을 위해 병원을 찾아온다. 삼삼오오 한 조의 구성으로 실습은 시작하는 학생들은 예의가 바르고 단정한 모습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탑재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고자 하는 의지로 실습을 시작한다.실습 기간은 그동안 배운 간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임상의 간호 술기를 습득하는 기간이다.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속에서 긴장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간호사들을 눈과 몸으로 쫓으며 따라 배운다. 꿈을 향해 '쌩쌩
필자는 손이 참 못생겼다. 항상 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손등에 핏줄도 도드라지고, 손톱은 항상 짧게 잘려있다. 한겨울이 되면 손 소독제의 알코올과 잦은 손 씻기로 인해 항상 까슬까슬 허옇게 일어나곤 했다. 앰플 조각에 베인 상처, 볼펜 잉크가 묻어 물든 검은 손가락은 훈장과도 같이 함께했다.어느 날 치매에 걸린 80대 할머니 환자분이 입원했다. 독거노인이던 할머니는 추운 겨울에 잘 먹지도 못하고 혼자 추위를 견디느라 저혈당 쇼크가 온 상태였다. 입원하자마자 바짝 마른 몸에 환자복을 입히고 정맥주사를 잡기 위해 손을 보았다. 관절마
필자는 중환자실(ICU) 간호사로 10년 넘게 중환자 간호를 했고 올 3월 병원 행정 간호사로 발령받아 행정 간호사로서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함께한 중환자실은 필자에게 애증의 장소이자 추억이고 소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그런 이유 때문인지 중환자실과 관련돼 보도되는 여러 가지 이슈들에 관심이 많다.그중 최근 화제가 된 소아 중환자실(PICU) 간호사의 아기를 향한 목소리가 잊히지 않는다. 생후 13개월 만에 간 이식 수술을 받고 작은 몸에 생명 유지를 위한 여러 기구와 관을 삽입하고 팔다리를 꼬물
연둣빛 신록의 계절은 발걸음을 재촉해 어느덧 짙은 녹음을 선사하는 7월 속으로 들어섰다. 멀리 보이는 산과 가까이 보이는 나무들의 초록빛 향연에 잠시 눈길이 닿으면 어느새 그 청명함에 마음을 빼앗긴다.이른 봄의 찬바람 속에서 일찍 겨울잠을 깬 어린잎에 보내던 응원의 메시지는 아마도 지금의 무성히 자란 초록 잎을 보기 위해서였을까? 그 나무의 새싹 시절을 떠올리며 우리 간호사들의 성장도 그렇게 응원해 본다.멋진 한 아름의 커다란 나무도 처음은 여린 새싹부터 시작되었다. 비바람을 이겨내고 태양 빛을 양분 삼아 지나온 시간 속에서 단단히
5년차 간호사인 필자는 얼마 남지 않는 고귀한 삶을 돌보는 이곳, 대전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루의 일상은 시시각각 변하는 환자 상태를 보살핌과 동시에 환우분과 가족들에게 용서와 화해,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뜻 깊고 후회하지 않을 시간을 만들어 주며 최대한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삶의 마지막 여정을 함께한다.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를 생각하면 죽음만 기다리는 곳으로 잘못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기 암 환자가 삶을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증상 조절뿐만 아니
신규 간호사 시절부터 지금까지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을 하면서 부인과 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중 암 환자들은 항암약물치료를 시행하기 때문에 3주 간격으로 입원치료를 받아 먼 친척보다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항암치료로 극도로 예민해져 있어 오랜 시간 입원 동안 가까워질 수 없는 환자도 있었지만, 가족같이 가까운 사이처럼 지내는 환자도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어 만날 수는 없는 분들이지만 기억에 남는 환자들이 있다.필자보다 어린 환자였는데 키도 크고 귀여운 얼굴을 가졌다. 청소년 시기 난소암 진단을 받았음에도 불구
따뜻함과 포근함, 그리고 싱그러움까지 품은 계절의 여왕 5월이 돌아왔다. 5월은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의미심장한 날들로 채워져 유독 거리 곳곳은 꽃들로 화사하고 모든 것들이 빛나는 달이다.나는 잠시 내가 몸담은 병원 안으로 시선을 돌려본다. 5월. 이 밝음이 한창일 때에 낯선 장소, 낯선 사람들 속에서 몸을 누이고 있는 어느 고령 환자의 야윈 뒷모습이 유독 눈에 밟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후로 병원 내 감염관리의 중요성은 더욱 공고해졌다. 또 다른 감염원의 차단을 위해 외출과 외박, 면회가 금지되면서 나를 비
장기이식코디네이터로 근무하고 있는 필자는 장기이식의 숭고한 나눔의 가치와 인식이 더 확장됐으면 하는 염원의 마음을 전하고자 한다.지난달 대전성모병원에서는 뇌사 환자의 장기기증으로 인한 장기이식수술 3건이 진행됐다. 장기이식과 관련된 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필자 또한 주위 사람들의 장기기증과 장기 이식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다. 가까이 있는 가족과 지인들도 뇌사와 식물인간이 어떻게 다른지, 이식 후 내 몸은 어떻게 되는지 많이들 궁금해한다. 과거 언론에서 '장기를 기증한 유가족에게 직접 시신을 옮기라고 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된
인생의 1/3이 넘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그들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게 되면서 함께 웃기도 울기도 했던 시간이었다.간호사로 일을 시작하면서 환자에게 제일 좋은 간호란 뛰어난 스킬과 간호지식을 바탕으로 환자의 변화를 빨리 포착하여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치유되도록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동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주어진 8시간의 근무시간 내에 빠른 속도로 일을 다 해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1분 1초라도 빨리 움직여야 했고, 자연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