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청남대에서는 '건국의 대통령 이승만을 만나다'라는 특별전이 열렸었다. 이 전시회를 즈음, 그분과 관련된 희귀 사진들이 대거 전시 공개되었다. 우연히 이승만 대통령의 희귀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뜻밖의 사진 하나를 발견했다. 대통령이 창덕궁 정자에서 프란체스카 여사와 낚시질을 하는 사진이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이승만 대통령의 낚시 취미에 대해 깊이 있게 조사하다가 재미있는 가설에 도달했다.이승만 대통령의 일생은 낚시와 함께한 세월이었다. 이승만 대통령과 관련된 우스갯소리 중 그 유명한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란
네트워크가 세상을 바꾸고 있다. 개인·기업뿐만 아니라 국가·민족까지도 네트워크를 통하여 소통의 기반을 넓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네트워크는 또 다른 네트워크를 낳고, 수많은 네트워크가 모여 하나의 허브를 만들고, 서로 다른 허브들이 연결되어 더 큰 네트워크를 만든다. 이제 사람들이 국경과 국적, 시간과 공간, 언어와 문화, 심지어 이념과 종교의 벽을 넘어 작은 것 하나라도 공감하고 공유하는 개방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1+1=2로만 인식되던 것이 100도 되고 무한대(∞)도 되는 새로운 가능성의 시대, 더불어 살아가는 시대
인간이 집짓기를 시작한 이래로 그들의 희망은 안전하고 편리하며 아름다운 집짓기였을 것이다. 동물이나 곤충까지도 건축적 본능이 있는데 인간은 건축과 도시를 건설함으로써 신에 도전이라도 하듯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열망을 끊임없이 드러내곤 했다. 시간이 흘러 산업화가 진행되자 도시공간이 집적화되고 확장되면서 교통, 주거, 환경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타나게 되었지만 끊임없이 팽창하고 있다. 현재 세계적으로 도시화 추세는 50%에 이르고 장차 20년 후가 되면 약 75%에 이를 것이라 한다.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기
가끔 밤하늘에 선을 그으며 떨어지는 유성을 발견할 때가 있다. "아, 또 지도자 한 사람이 세상을 뜨는구나." 나는 혼잣말로 탄식한다. 그런 상상력은 물론 역사소설을 읽어 얻은 것도, 무협지를 통해 학습한 것도 아니다. 유년시절 어른들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그런 상상력을 갖게 했다. 여름이 되면 별식을 만들어 함께 먹으면서 식구들은 멍석이나 마루에서 많은 대화를 나누며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정겨운 분위기 속에서 어머니는 곧잘 옛 얘기를 해주셨다. 때로 그 이야기 담당이 아버지가 되거나 형님이 될 때면 이순신, 을지문덕
학창 시절 도산서원에 간 적이 있었다. 거기서 거짓을 행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자 했던 조선시대 올곧은 선비정신에 대해서 들었다. 그리고 1000원짜리 지폐의 뒷면에 그려졌던 나무 '금송'을 기억한다. 금송의 표지석에는 '이 나무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청와대 집무실 앞에 심어 아끼시던 금송으로서 도산서원의 경내를 더욱 빛내기 위해 1970년 12월 8일 손수 옮겨 심으신 것입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2011년 나는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도산서원 관련 파일을 읽다가 도산서원의 금송이 혹시 가짜가 아닌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다.
국가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꿈을 꾼다. 1776년 대서양 연안에서 출발했던 신생 미국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륙을 가로질러 태평양까지 도달하는 꿈을 꾸었고, 그로부터 70년 후 멕시코와 전쟁 끝에 지금의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5개 주를 매입함으로써 20세기 팩스 아메리카나 시대를 열었다. 또한 1963년 미국의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 King Jr) 목사가 흑백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뛰어 노는 세상을 만들자고 호소했던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 연설은 단지 구호
인정하기 싫지만 내가 벌써 환갑이 되었다. 나이가 들어 환갑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섭리이지만 자꾸 이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요즘은 다들 건강하고 오래 사니 환갑이라 하여 어디에다 명함도 못 내놓는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없음은 몸과 마음에서 나타나는 늙어감이다. 어느덧 눈도 침침해지고 다리에 힘도 없고 인지능력도 많이 떨어져 간다. 제자의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자꾸 섭섭함을 느끼는 것이다. 공자님은 '논어'에서 나이 예순에 이르자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하고, 듣는 대로 모두 이해할 수
젊은 영혼의 편력을 도시적 감수성으로 노래해서 화제가 되었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시인이 새로 펴낸 시집 '이미 뜨거운 것들'에는 '한국의 정치인'이란 작품이 있다."대학은 그들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 기업은 그들에게 후원금을 내고/ 교회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병원은 그들에게 입원실을 제공하고/ 비서들이 약속을 잡아주고/ 운전수가 문을 열어주고/ 보좌관들이 연설문을 써주고/ 말하기 곤란하면 대변인이 대신 말해주고/ 미용사가 머리를 만져주고/ 집안 청소나 설거지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고/ (도대체 이 인간들은
2010년 이후부터 나는 미국 LA로 건너간 조선왕실의 어보(御寶)의 행방을 추적 중이다. 현재 LA의 주립박물관(LACMA)에 전시 중인 이 어보는 높이 6.45㎝, 가로, 세로 각 10.1㎝로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가 있으며, 조선 11대 임금인 중종의 왕비 문정왕후의 존호인 '성열대왕대비지보(聖烈大王大妃之寶)'란 명문이 새겨져 있다. 1547년 아들인 명종이 "경복궁 근정전 섬돌 위에 나가 '성열인명대왕대비'라는 존호를 올리고 덕을 칭송하는 옥책문과 악장을 올렸다"는 실록의 기록으로 미루어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민족분산 또는 집단이주를 뜻하는 디아스포라(diaspora)는 원래 BC 6세기 유다왕국이 망하면서 바빌론으로 끌려가 포로생활을 하였던 유태인들을 가리켜 사용되었다. 역사에서 패전국민이 승전국의 노예로 전락한 예가 수없이 많을 테지만 유독 2600년 전 바빌론에서 포로로 지냈던 유태인을 지칭했던 디아스포라의 의미가 오늘날 일반적으로 다른 나라로 집단이주하여 사는 사람들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진화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빌론의 유태인들은 현지에서 동화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오히려 번성했고, 훗날 팔레스타인으로 귀환하여
한국사회에서 작가들은 이렇게 무관심 속에서 방치되어도 좋은 존재들일까? 수년 전 작가들의 수입을 조사한 결과 한국 작가들은 월평균 20만 원의 수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그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돼 있는 만큼 한국 작가들은 한마디로 수입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사실 다른 직업이 없이 순수하게 창작에만 매달려 있는 전업 작가들은 생활고에 시달리는 극빈계층에 속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조금도 관심을 끌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한쪽 구석에 있으나마나 한 존재로 방치되어 있다. 작가는 한 국가의 문화를 창
대학이 없는 한국을 생각할 수 없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은 모두 한국의 대학에서 젊은 인재를 양성한 결과이다. 자연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믿을 수 있는 것은 노동력과 창의성이며 이에 의지하여 오늘의 국가적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미래를 구상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대학은 어떠한가. 그 불편한 진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로할 용기가 있는 것인가. 여기서 필자가 경험한 한국 대학의 진실에 대해 두 가지 사실을 고백해 두고자 한다.우선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반값 등록금이다. 학생들의 등록금
한국에 오자마자 한국인에 대해 받은 첫인상은 매우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었다. 불과 30~40년 전에 전쟁과 가난에 힘들어하던 나라에서 아시아 강국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눈부신 급성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그런 결과를 얻을 수 있었겠는가? 특히 천연자원이 펑펑 쏟아져 나와 부국이 된 나라들과는 전혀 다른 경우이다. 한국의 성공은 힘든 노동이 불가피하다면 어떤 고통도 참고 견딜 수 있는 강인함에 근거한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러한가?그동안 피와 땀 그리고 눈물로 한국을 일으켜 세웠던 이전 세대와 달리 앞으
해마다 6월이 오면 제일 먼저 6·25전쟁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아득한 옛날에 일어난 전쟁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6·25전쟁은 끝나지 않은 전쟁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그 명칭도 6·25사변에서 한국전쟁으로, 그리고 6·25전쟁으로 변화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유난히 화창한 일요일이었다. 콩 볶는 소리(따발총 소리)는 요란한데 라디오에서는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라"는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총소리는 요란한데 대통령은 아무 일 없다고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무엇일까?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지처럼 무서운 것은 없는 것 같다. 무지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사고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무지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무지한 사람일수록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속성이 있다. 인정하기는커녕 자신은 유식하고 현명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을 휘저으려고 든다. 그 결과 이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힌다.무지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부류가 바로 가짜들이다. 가짜들은 가짜 물건들을 마구
지난 16일 한국 시인 20여 명과 중국 난까이대학에서 '한중 시낭송 및 세미나'가 있었다. 중국의 대학생들이 과연 한국의 시나 문학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을까 의구심을 가지고 강의장에 들어섰는데 중국 대학생들의 반응은 진지하고 무거웠다. 150여 명의 중국 학생들은 강연 내내 진지하게 듣고 있었으며 강의가 끝난 다음에 여러 학생들이 한국문학에 대해 질의했다. 저녁 시간에 진행된 시 낭송회 역시 100여 명의 학생들이 참석하여 한국 시인들의 시 낭독을 들었고 중국 시인들 역시 그들의 시를 읽었다. 이질적인 언어와 문화가 시를 통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할 수 없지만 분명 90년대 중반의 어느 날 김포공항에 도착했을 때였다. 당시 삼성의 새로운 광고 문구를 보았는데 광고판 자체가 매우 커서 시선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소리치는 듯해 보였다. 'Samsung-The best company in the world'(삼성-세계 최고의 회사). 순간 웃음이 나왔고 잠시 후 이 광고 문장은 재미로 보는 작품과 같은 것인지 아니면 진짜 광고인지 한순간 의아하게 생각해 볼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한국인들의 정서를 충분히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광고의
대한민국은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된 나라이다. 이 말을 다시 말하면 대한민국에는 국교가 없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국민은 누구나 종교를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를 믿을 자유가 있다. 그런데 과연 이렇게 헌법에 규정되었다고 하여 종교 문제가 쉽고 편안한 일일까? 전통시대에도 새로운 종교가 들어오면 기존의 종교와 부딪치면서 사단이 일어났다. 불교가 신라사회에 들어올 때도 이차돈의 순교가 있었다. 조선 후기에도 천주교에 대한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그 후에 기독교도 들어와 우리 사회는 불교, 기독교, 천주교 등으로 대분
일본 적군파, 독일의 대명사 바더 마인호프, 이탈리아의 붉은 여단은 모두 1960-70년대에 악명을 떨쳤던 좌파 테러단체들이다. 그러나 좌파 테러단체들은 70년대를 고비로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소멸되고 대신 새롭고 강력한 힘을 가진 테러가 등장하는데, 바로 이슬람 무장세력의 테러이다. 이슬람 테러의 상대는 처음에는 이스라엘이었지만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지금은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세계이고, 문명 충돌의 양상까지 띠고 있다. 이슬람 테러의 가장 충격적인 신호탄은 1972년 9월 5일에 발생한 뮌헨 올림픽 테러이다. 그날 새벽 팔
흑백 영화 '지슬'을 인상 깊게 보았다. 음울한 화면에 펼쳐지는 리얼한 장면과 그곳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사람들의 영상과 고통이 가슴 저리게 다가왔다. 아름다운 풍광도 아름답지 않고 슬프고도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누가 죄 없는 이들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가. 영화가 끝나고도 관중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접근하여 토벌대와 양민의 관계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데 일정 부분 성공했다는 느낌이 전해 왔다. 마지막 자막에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것은 '미군과 미군정 당국'이라는 문구는 영화 전체를 다시 되돌아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