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대면강의가 시작되었다. 2년 다니고 졸업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나온 날이 열 번 남짓하다. 꽃피는 춘 삼월에 입학식을 하고 학과별로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축제를 하는 등 사람들이 통과의례를 치르듯 대학에서 행하는 모든 과정이 통으로 생략된 채 졸업을 하게 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2년 동안 학생들을 기다려 온 나는 설레이고 흥분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학생들도 마스크를 쓰고 중무장을 하여 얼굴을 모두 가렸으나 학교에 왔다는 기쁜 표정은 가려지지 않았다. 친구사귈 틈도 없었으니 출석을 부르면서 우리 반에 이런 친구가 있다고
야권 단일화에 관심이 높아가고 있다. 국민의 힘은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면 단일화에 힘을 쏟을 것이다. 그러나 지지율이 정체되면 단일화를 무시해버릴지도 모른다. 대통령 선거는 불과 몇 퍼센트 차이로 승부가 갈리지 않던가. 진보3:중도4:보수3으로 갈라진 정치지형에서 진보든 보수든 중도의 표를 가져오지 못하면 정권획득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합리적 유권자라는 중도4의 공간에 안철수의 지지층이 있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올라가야만 정권교체가 된다는 역설이 성립된다.선거 때마다 재집권, 정권교체가 최대의 이슈가 되지만 그것은 무엇을 새로 만
최근 여론에서 가장 큰 특징은 2030세대(정확히 보면 30세대 초·중반)와 40대가 다르다는 점이다. 또한 과거 캐스팅보터였던 40대보다 스윙보터로 캐스팅보터 역할을 하는 2030세대가 더 주목을 받고있다. 이러한 2030의 표심에 대해 민주당이 가장 당혹해한다. 과거 대부분 선거에서 2030은 40대와 함께 움직이는 동조현상(Coupling) 즉 40대가 2030을 이끌면서 세대간 대결에서 캐스팅보터 역할을 했다.그런 2030이 지난 서울·부산보궐선거에서 40대와 비동조화현상(Decoupling)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광산 김씨 외가에 홀로 의탁되어 자랐다. 광산 김씨 문중 큰 제사마다 검은 두루마기 자락을 휘날리며 참석하던 할아버지뻘 친척 중 '삼례 양반'이 기억에 남는다. 늘 사람 좋은 웃음을 웃고, 막걸리를 좋아하던 이였다. '그 어른 참 한량이었지.' 그이를 한량이라고 지목하는 말에 비난의 뜻은 없었다. 정약용은 공무에서 물러 나와 건(巾)을 젖혀 쓰고 울타리를 따라 걷고, 달 아래서 술을 마시며 시를 지었다. 산림과 과수원, 채소밭의 고요한 정취에 취해 수레바퀴의 소음을 잊었다고 했다. 뜻 맞는 벗들과 '죽란사(
오토바이를 타고 충청도 말을 하면서 전국을 여행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진행한 덕분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고향을 알린 사람이 되었나보다. 내친 김에 일일 소방관이 되어 내 고향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고향으로 향하는 새벽녘은 차창을 적실 정도의 가랑비가 내렸다. '비가 오니까 축소해서 하겠지' 라는 얄팍한 생각을 가지고 태안소방서에 도착했다. 아파트 2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빨간 소화기가 나를 반기고 넓직한 주차장에 군함처럼 늠름한 소방서가 눈에 들어온다. 소방관 옷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니 그야말로 각이 딱
우리는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 반가워하며 만나자고 한다. 그러나 만나서 무엇을 하는가? 집값이나 대장동, 이재명과 윤석열 홍준표를 이야기한다. 친구를 만나는 게 아니라 뉴스와 정치인을 만날 뿐이다. 친구를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진실은 친구를 만난 것이 아니다.나는 내가 발행하는 를 즐겨 보낸다. 그러면 "독자는 얼마나 되냐, 돈은 되냐"부터 묻는다. 편집위원 중에 유명인사라도 있으면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 한다. 글에 담긴 진실을 나누고 싶은데 사실만 알아내려고 애쓴다.언젠가 수십 년간 고위 공직에 있던 사람의 전 재산이 몇 천만 원에
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10일 최종후보를 확정하고, 국민의 힘도 8일 2차 경선을 통해 4명의 후보로 압축한다. 그런데 역대 전통보수는 스스로 대권주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대부분 과거 보수 대통령이나 후보는 외부에서 주요 경력을 쌓은 자산으로 대선 후보가 되었다. 정치경력을 논할 수 없었던 건국 초기 이후 박정희·전두환·노태우는 군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김영삼도 보수와 대척점에서 민주화 운동을 한 이후 3당 합당을 했고 '脫군부 권위주의'로 보수의 권력을 연장시켰다. 대선에 2번이나
며칠 새 가을 기운이 완연해졌다. 푸른 하늘은 명징하다. 구름은 한가롭다. 산기슭에 구절초 꽃은 하늘거리고, 물가에 무리를 이룬 어여쁜 여뀌는 가을의 전령 같다. 대기가 맑으니 가시거리가 한껏 길어진다. 서울 남산타워에서는 인천 바다가 눈앞에 있는 듯하고, 파주 통일전망대에서는 개성이 손에 잡힐 것 같다. 먼 풍경이 가까이 다가올 때 횡재를 한 듯 기분이 좋아진다. 살아서 이런 가을을 맞으니 나는 그럭저럭 운 좋은 인생을 산 셈이다.아침에는 강낭콩을 넣어 햅쌀로 지은 밥에 갈치조림을 먹었다. 갈치와 함께 얼큰하게 조린 가을무가 달다
새해 초 여러 곳에서 주는 달력을 마다하고 하루하루 떼어내는 일력을 사다가 걸었다. 내심 올해는 日新日新 又日新해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루에 한 장씩 떼어내며 새로운 날을 살아보겠다는 각오는 작심삼일이 되고 말았다. 오늘은 한꺼번에 여섯 장을 떼어냈다. 시간이 빨리 흘러서일까 달력을 떼어낼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서였을까. 어느새 달력의 두께는 아주 얇아졌다. 절기상으로도 상강을 향해 달려가니 월동 준비도 해야 하고 금세 새해가 올 것 같다. 올해가 아직도 두어 달이나 남았는데 내가 새해 타령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년이
여권의 히어로였던 윤석열이 여권의 기피 인물이 되고 야권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2년 전 내 사무실 건너 대검찰청 앞 도로는 '조국파'와 '윤석열파'로 나뉘어 아수라장이었다. 진보진영의 후광을 입은 검찰총장이 진보의 아이콘 조국을 수사하다니….윤석열이란 사람이 궁금해졌다. 나라를 위해 나선 것이라면 그에게 길거리의 지지와는 또 다른 위로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러나 현직 검찰총장이 나를 만나주겠는가.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어느 일요일 그와 찻집에 마주 앉았다. 내 궁금증에 그는 분명하게 답했다. "우리 대
1980년대 학생 운동세력이 2000년대 본격적으로 정치에 진출하여 386으로 불렸다. 386세력의 정치권 진출 과정을 보면 이들에 대한 기대도 컸기에 정치권 진입도 특혜를 받았고, 정치에 들어와서도 특별대우를 받아 원내에 쉽게 진입했다.어느 듯 세월이 흘러 386세력은 586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 대선과정에서 50대 또는 60대에 진입한 586세력이 대중적 정치 지도자나 대통령으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정치적 존재감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이들 세대는 베이비붐 세대로 세대 인구수가 역대 어느 시기보다 많기에 세대적 지원도 클 수 있
가을의 징후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매미소리는 잦아들고, 밤의 서늘한 기운을 품은 풀벌레 소리의 데시벨이 부쩍 높아졌다. 불을 켜지 않은 채 풀벌레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는데, 그것은 마치 영원의 저쪽에서 보내는 신호 같다. 몸 안의 가장 작은 뼈인 추골, 침골, 등골 등을 통해 이 소리가 전달된다. 이 청각의 기적을 타고 가을밤의 쓸쓸함과 멜랑콜리가 몰려온다. 물론 내 상태는 항우울제인 프로작을 삼켜야 할 만큼 심각하지는 않다. 19세기 초 런던 거리에는 약 4만 개의 가스등이 켜졌다. 헤드랜턴도 손전등도 없던 시절 작가 디킨스
현대인들은 출근길에 인터넷 뉴스 읽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포털사이트에서 뉴스를 주제별로 모아 놓으니 이곳에서 골라서 볼 수 있다. 오늘은 '학교도 이렇게 일찍 안 갔다'라는 인터넷 뉴스에 관심이 간다. 우리가 별다방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제법 근사한 상품이 나오는 날이란다. 커피 300잔을 130만 원을 내고 먹으면 받을 수 있는 여행 가방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 돈을 다 지불하고 커피는 한 잔만 마시고 가방을 받아 갔다는 내용이다.무엇이 숱한 사람들을 별다방에 매달리게 하는가? 그 비밀은 이야기다. 이곳에 가면 어느 지점을 가더라
선배 변호사와 함께 현장검증을 가게 되었다. "윤 변호사, 한 달에 얼마나 벌어?" 내 수입을 솔직하게 말했더니 "나보다 수입이 세 배나 많구먼!" 놀라는 것이었다. 부장판사를 지낸 그의 수입이 초짜 변호사인 나보다 훨씬 적다니… 나도 놀랐다. 경력이든 인맥이든 내놓을 것 없는 나에게 그 선배가 비결을 물었다. 판검사도 한 적 없던 내가 사무실을 열자 사람들은 브로커라도 써야 사무실 유지라도 할 거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개업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내 사무실엔 손님이 한 사람도 없었다. 법조 고위직 출신이나 브로커를 쓰는 사무
과거 민주당이 선거에 패할 때 마다 한말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미 운동장이 기울어져서 민주당으로서는 선거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는 자기변명이었다.여기서 말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정당지지율이 아니라 정치사회적 보수?중도?진보 이념성을 말한다. 따라서 민주당의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표현은 사회가 보수화되었다는 의미다. 따라서 이는 민주당으로서는 개혁도 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진보가 소수라서 선거에 졌다는, 달리 말해 패패의 탓을 국민에게 돌리는 논리였다.그러나 보수로 기울어졌던 이념의 운동장이 박근혜 정부 탄핵을 거치
스포츠는 인간의 신체가 감당하는 중력과 무게 그리고 속도의 한계를 시험한다. 운동선수들은 강건한 신체로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제 시간과 노력을 다 바친다. 그들은 근육을 단련하고 운동 기량을 가다듬느라 숱한 낮밤을 연습으로 지새운다. 운동선수에게 기량의 양질 전환은 혹독한 연습의 반복과 그 누적에서 나온다. 승리는 피와 땀과 눈물뿐만 아니라 자기희생을 감당한 자, 즉 자기를 불사른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자 그 열매다. 그런 까닭에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극의 순간은 우리를 열광으로 이끈다.지금 도쿄에서는 2020
지구상의 사람들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라면서 큰소리를 치고 살았다. 그런데 요즘 큰소리를 치기는커녕 눈에도 보이지 않은 바이러스로 인해 겪는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라는 책을 보면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전시에 사망한 사람들 중에는 전투 부상으로 죽은 사람보다 전쟁으로 발생한 세균에 희생된 사람들이 더 많았다고 했다. 세균과 바이러스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밀집된 곳을 좋아하는데 우리는 산업화 도시화를 핑계로 점점 더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으니 균들은 늘 사람들 곁에 가까이 있을 수
며칠 전 네덜란드에서 온 그를 처음 만났다. 한국에 왜 왔느냐고 물었더니 반도체에 회로를 넣는 첨단장비 업체인 유럽 본사에서 삼성에 기술 지원하러 왔다고 했다. 그 첨단장비가 없으면 삼성도 TSMC도 반도체를 못 만든다고 했다. 자기 회사는 세계 시장 점유율 백 퍼센트라서 '경쟁자가 없다'는 말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경쟁자가 없다!" 그의 말에서는 자부심이 넘쳐났다. 그러나 기술은 발전하지 않는가. 언젠가는 그 회사에도 경쟁자가 생길 것이다. 당분간 경쟁자 없는 회사에 다녀도 저렇듯 의기양양한데 그가 언제나 경쟁 없는 삶을 살 수
2013년 6월 11일 서울신문은 진학사와 함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2013년 청소년 역사인식'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9%가 6·25 전쟁을 북침으로 응답했다는 결과를 보도했다. 이전에도 남침·북침 논쟁은 있었지만 서울신문 여론조사가 마치 1차 세계대전에서 '사라예보의 총성'과 같은 트리거 역할을 했다.이 조사보도가 나가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남침·북침 역사전쟁이 정치권에서 시작된다. 이렇게 시작된 역사전쟁은 전교
무더위로 입맛을 잃는 여름철 한 끼 음식으로 콩국수만한 게 없다. 콩국수는 봄가을에도 먹을 수 있지만 여름 콩국수만큼 그 진한 풍미를 느끼기는 어렵다. 콩국수 만드는 법은 단순하다. 백태콩을 찬물에 불려 한소끔 끓인 뒤 믹서에 간 콩국물에 국수를 말고, 채 썬 오이와 볶은 통깨, 삶은 달걀 반쪽으로 갈라 고명으로 얹는다. 오이나 통깨가 없다면 열무김치를 얹어 먹어도 그 조합이 나쁘지 않다. 얼음을 띄워 차가워진 콩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나면 더위쯤은 거뜬하게 견딜 수 있다.누구도 먹지 않고 살 수는 없다. 사람은 식물같이 광합성을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