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이 없었다면 승부조작은 없었을 것이다. '1회초 2점을 내주면 2,000만 원을 주겠다.' 모든 사달은 유혹에서 시작되었다.그렇다. 문제의 근원은 돈을 주겠다며 승부조작을 제안한 스폰서 놈이었다. 스폰서만 잡으면 된다. 그런데, 스폰서(프로스포츠에서 지원을 미끼로 불법적 일을 연결하는 브로커)의 유혹은 단지 개인적 욕망에서 만들어졌을까? 그럴리 없다. 상업화된 스포츠 경기에 거액의 판돈이 걸리지 않았다면 유혹은 생기지도 않았다.모든 프로스포츠에서 승부조작 사건이 발생하며 선수 개인의 윤리의식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모든 것이
길은 소통이다. 모든 생명은 소통하여 존재한다. 우린 소통 즉 통(通)함으로 이루어진 유기물들이다. 통한다는 것은 유-무형간의 에너지가 전도(이)되어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이 교환은 너와 나 둘만이 아닌, 우리와 나 그리고 우주와 나와 연결된 것이다(一卽多 多卽一). 이 연결 고리가 잘못 통하면 고통(苦痛), 통하지 못하면 불통(不通), 먹통(freeze)이 된다. 오죽하면 정도 통해야 정분(情分)이 쌓이고, 눈도 맞아야 뜨거워진다.카리스마(Charisma, 신이 부여한 능력)로 소통을 좌지우지 했던 시대에서 이제는 맨투맨의 원탁
나는 두 살때부터 50년하고도 반을 넘게 대전에 살고 있는 토박이다. 초·중·고·대학은 물론 군 생활 외엔 대전을 떠난 적이 없다. 대전의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온 탓인지 대전에 대한 애정은 흘러온 세월만큼이나 몸에 벤 듯하다. 흔히 대전은 살기 편한 도시라고들 한다. 사통팔달로 뚫려 전국이 일일생활권이며, 물가도 싼 편이고, 타지인들도 잘 품어 주는 넉넉한 인정도 있었다. 반면에 대전은 뭔가 특색이 없는 노잼도시라고도 한다.지난 약 반세기를 대전에서 살면서 이슈가 됐던 큰 행사가 뭐가 있었는지 생각해 봤다. 먼저, 1978년도 대
"남녀 월드컵 상금 격차가 너무 크다. FIFA는 여자선수를 존중하지 않는다." 2019프랑스여자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미국팀 주장 메간 라피노의 말이다. '공정 보상' 논란의 신호탄이 되었다. 실제로, 2018러시아월드컵(남자) 총상금은 4,700억 원이었고, 2019여자월드컵 총상금은 354억 원이었다. 약 13배 차이. 중계권료 때문이었다. 미국 여자축구대표팀은 더 억울했었을 것이다. 미국 남자팀이 2014브라질월드컵 16강에서 탈락하고도 상금 64억 원을 받은 반면, 여자팀은 2015캐나다여자월드컵 우승으로 20억 원만 받았으
오랜만에 외출하는 친구, 한껏 차려입고 멋 부린 티가 역력하다. 택시기사가 행선지를 묻자 둘은 부산스런 수다를 흠칫 멈춘다. 눈빛교환 끝에 터지는 서슴없는 외침, "전설의 고향!!" 기사는 룸미러 속으로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아~ 예술의전당요" 소나타는 주체 못할 웃음을 싣고 1991년 서초동으로 향한다.30년 전 세간에 회자됐던 이야기로'전설의 고향'과 '예술의전당'은 단어배열의 유사성만 있을 뿐 공감각적 개연성은 전혀 없다. 먼저 전설의 고향은 흑백TV때부터 컬러로 천지개벽한 후까지 12년간 무더운 여름밤 정기적으로 오싹한 청
미래 1 : '개같이 벌어 정승 같이 쓴다'. 사막같이 건조한 시대에도 가끔 굿 뉴스가 뜬다. 치과의사이자 영화배우인 신영균씨도 500억 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2010)했다. 억만장자였지만 돈에 대해서는 '조금만 더!'를 외치던 카네기(Andrew Carnegie)도 당시 일본 국가예산의 3배인 3억 달러를 사회에 환원, 2500여개 공공 도서관 건립, 스코틀랜드에서 이주한 곳이 피츠버그에 카네기멜론대학(CMU) 설립, 맨해튼에 카네기홀을 건립하고 기부했다. CMU를 생각하니 췌장암으로 죽어가던 랜디포시 교수가 세상을 향해 "절
대전문화재단은 해마다 대전원로예술인구술채록사업을 해오고 있다. 지난 2014년에 시작한 이 사업은 대전에서 30년 이상 활동한 70세 이상의 문화예술가들을 대상으로 약 30명의 원로들을 선정해 생애사를 채록해 왔다.올해도 5명의 원로예술인들이 선정됐다 이 채록사업은 훗날 대전예술사연구의 기초사료로 활용되며 대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요즘 대전문화예술계에 한밭문화제 부활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한밭문화제는 지난 1983년부터 2006년까지 대전의 대규모 문화축제로 진행됐었다. 하지만 당시 특색 없는
#1988년 서울올림픽1988년 9월 21일. 온 나라가 들썩였다. 올림픽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4kg에서 대한민국 최초로 금메달을 딴 김영남 선수 중계 때문이다. 이 소식에 과일을 깎다 말고 어머니는 소파 뒤로 뛰어나가 함께 관람 중이던 아버지와 형을 얼싸안으셨다. 북받치는 감정은 충분히 이해하나, 어머니, 과도는 놓고 뛰시지요. 올림픽은, 아니, 올림픽에서의 '금메달'은 충분히 민족적으로 자극적이었다. 그 자극은 '애국심'으로 채워진 방송 해설로 증폭했다. 해설은 일관됐다. "국가를 위해 더 버텨라, 금메달이 눈앞에 있다!"#2
방명록에 글을 써보면 기대만큼 흡족하지 않을 때가 많다. 일상 속 혼례식장·전시회장·출판기념회에서 이름이나 축원 몇 자 적는 상황은 별 부담이 없다. 하지만 국가행사·국제행사·현충원참배 등 대외적 공식자리는 매우 각별하다. 더욱이 국민의례까지 엄수되는 공간은 한결 조심스러워진다. 단순한 메모나 일기(日記)가 아닌 타인 앞에서 글쓰기란 예상보다 녹록치 않다.그만큼 언어학습은 어렵고도 중요하다. 국어교육과정 중 듣기·말하기·읽기·쓰기는 가장 기본적인 영역이다. 어느 분야가 일부 부족할 경우 대략 의사소통은 되겠지만 온전한 어문을 구사하
웃게도 울게도 만드는 생물인 돈. 쩐의 과거,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 보았다.과거 1 : '돈만 있으면 처녀 불알도 산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는 말이겠지만 아차하면 노예가 되는 것이 돈(金錢)이다.돈의 원조는 조개(貝, 패)로 좋은 일인 축하(祝賀), 임금(賃金), 재산(財産), 가격(價格), 자본(資本), 무역(貿易), 귀중(貴中), 보화(寶貨)에 그리고 회뢰(賄賂, 뇌물), 부채(負債), 도적(盜賊), 패가(敗家), 부패(腐敗)와 같이 나쁘게 쓴 '패'들도 있다.S교회를 세운 목사의 장모가 71년 전
2019년 대전시가 시 출범 70주년, 광역시 승격 30주년을 맞아 국내관광활성화와 선도도시로의 도약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대전방문의 해'행사를 가졌다. 릴레이시민홍보단도 구성해 전국을 돌며 대대적인 홍보를 했다. 서울 출장 길에 서울역 플랫폼에서 홍보물을 직접 마주하니 무척 반가웠다. 그런 간절함 때문인지 주말에 중앙시장에 가보면 외지인들을 평소보다 많이 볼 수 있었다. 매주 주말 저녁시간대 중앙시장 수변광장과 은행동 스카이로드 일원은 다양한 문화공연과 차로를 막고 펼치는 먹거리 장터로 연일 많은 인파로 시끌벅적했다. 오랜만에
"흑인을 차별하는 국가를 위해 올림픽에 나가야 할 이유가 뭔가?" 해리스 교수는 흑인 선수들에게 묻는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0년대의 미국. 본인도 흑인이라 차별을 많이 당했던 해리스 교수는 흑인 선수들에게 말한다. '올림픽, 보이콧하라!' 피부색으로 차별하는 국가를 대표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이후 그는 1968년 멕시코올림픽 보이콧을 치밀하게 기획하기 시작했다. 물론 성사되진 않았지만.성사되진 않았으나, 해리스의 문제의식에 동의한 선수가 있었다. 육상 200m 대표선수인 토미 스미스와 존 카를로스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퍼
얼마전 아내와 아들과 함께 간단히 외식을 하고 대전 시내를 걷다가 갑자기 핸드폰이 없던 시절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올해 대학생이 된 아들은 물론 우리의 대화를 전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와이프와 연애하던 시절 약속에 늦는 아내를 하염없이 한 시간 가량 기다렸던 기억을 떠올렸다. 요즈음 같으면 바로 전화를 걸거나 카톡을 하면 되지만 어디에 있을 지 모를 사람에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 수도 없어 계속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당시엔 사람들끼리 연락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삐삐라
예술 중 특히 무용은 모방을 기본으로 한다. 스승의 춤을 관찰하고 따라하면서 스승의 춤을 모방한다. 무수한 모방의 반복과정을 통해 제자는 스승을 똑같이 흉내내는 복제의 수준을 점차 벗어나 자기만의 예술로 발전하게 된다. 모방을 넘어서 자기 것이 되면, 비로소 나의 예술을 할 수 있다. 플라톤은 예술 창작을 위한 모방을 미메시스(mimēsis)라 불렀다. 기본적인 현의 운지법조차 모르는데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곡을 창의적으로 해석해 연주할 수 없으며, 색 혼합의 초보적인 효과도 알지 못하고서 전람회에 내걸 유화를 그릴 수는 없다. 자
2007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불멸의 화가 반고흐전이 열렸다. 그때 아이들은 초등학생으로 현장체험 학습을 이유로 기차를 타고 상경했다. 관람객은 초만원이었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전시를 감상하기 만만치 않았다.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데리고 전시장을 반쯤 돌았을 때 벽 전면에 걸린 큰 그림 하나가 갑자기 눈에 훅 들어왔다. 그 그림은 고흐가 세인트폴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그린 그림이었다.고갱과 논쟁 끝에 자신의 귀를 잘랐고 아르를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끝에 마을에서 쫓겨나 수십킬로 떨어진 생-레미의 세인트 폴 정신병원에 수용되는데 해당
독일의 철학자 헤겔(1770-1831)이 말한 대로 역사는 실로 정반합의 산물인가? 지난 시간에 말했던 인상주의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하나의 움직임이 있었다. 장소는 독일이었다. 유럽에서 가장 냉철하고 이성적인 사람들 하면 독일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다. 실제 독일 사람들의 성품은 매우 진중하고 이성적이며 감정을 잘 노출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가 되기 쉽지 않지만 한번 되면 매우 속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독일의 지하철 승강장엔 게이트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마음만 먹으면 무임 승차가 가능한데, 가끔 역무원이
민선7기 충남도정이 불과 1년을 남겨두고 있다. 이쯤에서 지난 3년을 돌아보며 성과와 한계를 평가하고, 새로운 4년의 준비를 시작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다. 문화예술부문을 돌아보며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먼저, 충남이 전국 유일의 '문화체육부지사'를 둔 것은 도지사의 문화예술중흥 의지가 돋보인다. 그에 따라 지난 해 문화부 현직 고위 관료를 부지사로 영입하고 '문화비전2030'을 수립, 문화예술중흥 10개년 계획을 마련한 점과 장관까지 초청해 도민의 문화권리를 선언한 '문화비전선포식'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고 중흥의 기폭제였다.
공연과 다름없는 마지막 리허설이 중요한 이유는 최종 점검이기 때문이다. 만약 준비가 덜 된 채로 리허설이 진행되면, 이후 공연 전까지 시간에 쭞길 수 밖에 없다. 행여 문제를 해결 못 할 상황이 닥치기라도 하면, 불안감은 점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공포로 전체 출연자에게 전이된다. 불안은 본능으로 발전해 실수의 예감으로 확장되고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는다. 삼류가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끝까지 디테일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혼자만 잘해서 되는 예술이 아니기에 공연이나 연습 때, 모든 출연진과 스텝들의 분위기를 세심하게 신경써야
오월은 가정의 달이지만 코로나19라는 엄중한 상황으로 가족끼리 변변한 식사 한번 못했다. 코로나 이후 가족 중 장기입원 환자도 생겼으나 병문안도 공식적으로 힘들어졌고 홀로 계신 아버님과의 만남도 뜸 해졌다. 심지어는 가족 제사와 명절 제사도 간소화했고 필수인원만 참석하고 거의 모이지 않았다.물론 집안의 어른이신 아버님의 강력한 방침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진 코로나 조치였지만 우리 집안의 경우 일반 가정보다 더 예민하고 기민한 대처였고 잠시도 느슨함을 허용치 않은 집안 분위기도 거든 결과였다.처음엔 이런 상황들이 어색하고 당황스러
지난 시간에는 유럽 사회를 풍미했던 낭만주의를 대치할 만한 새로운 예술 사상으로 신고전주의에 대해 알아봤다. 낭만주의의 지나친 감정과 광기의 추구에 염증을 느낀 일군의 예술가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르네상스의 균형과 조화미를 다시 추구하려고 했다. 바로 신고전주의였다. 그러나 이를 탐탁하지 않게 여긴 예술가들이 왜 없었겠는가? 일단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싫었고 샌님처럼 조화와 절제를 추구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그들은 대신 외부의 자극에 관심을 가진다. 신고전주의가 낭만주의의 지나친 개성 추구가 불만이었다면, 이들은 낭만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