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고운 가을날, 잎이 줄기에 붙어 있는 모양을 관찰하기 위해 과학책을 들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오후 늦게까지 교실에서 방과후 교육활동을 하는 아이들은 신발 신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참 좋아한다. 지난 4월의 봄날에 민들레 홀씨 불어 멀리 날리기, 제비꽃 반지 예쁘게 만들기, 네 잎 클로버 찾기를 했던 화단으로 갔다. 민들레와 은행잎은 뭉쳐나기, 개나리는 마주나기, 해바라기는 어긋나기…. 평소에 별 관심이 없던 것들이 학습 자료가 되어 수업시간에 초대되자, 아이들은 식물들 앞에서 머루알 같은 눈동자를 빛냈다. 학급 전체가 아홉 명이
강은 생명의 젖줄이다. 강은 “떠난 것들과 죽은 것들이/ 이 강가에 돌아와/ 물을 따르며/ 편안히 쉬”(김용택, ‘강가에서’)는 공간이다. 인류의 모든 문명은 강에서 태동했다. 강의 파괴는 문명의 파괴를 의미하고 생태계 파괴를 넘어 재앙을 초래한다. 인간의 개입이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 것도, 강의 본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한 치밀한 사전 조사와 준비가 필요한 것도 그래서다.민주주의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대의명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절차적 정당성이다. 얼마 전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상돈 교수(중앙대 법학과)는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기신 큰고모님, 그 시절 대부분의 여성들이 다 그랬듯이 학교는 문턱도 넘어보지 못한 채 집안일만 하다가 낯도 모르는 신랑과 연을 맺어 일찍 결혼을 하시고, 평생 농사일에 파묻혀 허리 한 번 제대로 못 펴고 살아오신 분이다.결혼 전 가까스로 셈은 익혔지만, 한글은 미처 깨우치지 못해 평생을 답답하게 지내 오셨다. 그런 분이 고모부님 돌아가신 후 환갑이 훌쩍 넘은 60중반쯤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시더니 단지 성경책 읽을 욕심에 뒤늦게 한글을 익혀 이제는 틈만 나면 성경을 보고 계신단다.큰고모님이 어쩌다 집안 큰일에
미술을 공부하는 우리 아이에게 “어떤 것이 아름다운가?” 하고 물었더니 예상 밖으로 “비싼 것”이라는 답이 나왔다.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없어 무슨 대답이 그러냐고 핀잔을 주었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일리 있는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싼 것이 괜히 비싸겠는가?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 비싼 것이지 않겠는가. 아름다움이라는 것도 가치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인일 것이니 비싼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그런데 정말로 값진 것이란 무엇일까? 가장 비싼 것을 보석이라고 한다면, 보석 중에서도 가장 비싼
“전 제가 뭘 정말 잘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며칠 전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기관에 취업 상담을 하러 찾아왔던 20대 구직자의 하소연이었다. 젊은 계층에게 일자리 취득의 기회가 다양한 분야에서 열려 있어 보이지만 기회의 크기 이상으로 갈등을 겪는 구직자를 쉽게 만나보게 된다.취업과 직장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20대 구직자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주변의 무심코 행해지는 상습적인 비교로 자존감에 상처를 받아 소극적으로 세상에 대처하는 유형이고, 두 번째는 자신의 선택보다는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들의 기대에
국가 브랜드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국가 브랜드라는 명칭과 개념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강조해왔다. 이명박 대통령 정부에서는 정부 출범 후 바로 국가브랜드위원회를 발족시킴으로써 본격화 했다. 국가 브랜드란 무엇인가? 국가 이미지와는 무엇이 다르며 국가 신인도(country risk), 국가 명성(reputation), 국가 정체성(identity) 등 유사한 개념과 무엇이 다른가? 국가 브랜드를 알려면 우선 브랜드에 대한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브랜드는 주로 특정한 상품명에 대한 반응과 평가를 바탕으로 한다. 구찌, 조지 알
한 달에 한두 건 꼭 접수되는 상담으로 시간이 오래 경과된 물품대금의 청구 건이 있다. 2002년 가을 K홈쇼핑에서 홍삼녹용액을 구매한 40대 남성의 사례이다. 전화로 권유를 받아 45만 원의 대금을 매달 5만 원씩 지로 납입하는 방식으로 물품을 구입했고, 모두 완납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7년이나 지난 올봄, 갑자기 미납금액이 있다면서 이자까지 가산된 60여만 원을 갚으라는 내용증명과 함께, 미납부 시 법원에 고발하겠다는 협박조의 전화까지 걸려왔다는 것이었다. 틀림없이 완납했으나 시간이 너무 지나 영수증이 없는
21세기는 국가의 시대가 아닌 도시의 시대이다. 성공한 몇 개 도시의 경쟁력이 곧바로 그 나라 전체의 경쟁력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세계인의 시선을 모으는 매력적인 도시 이미지는 관광객 유치 측면에서의 효과뿐만 아니라, 외국인 투자와 자국 상품의 국제 경쟁력 제고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마케팅 요소가 되고 있다. 많은 도시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도시디자인을 선택하여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직간접 효과 때문이다. 도시디자인을 통해 도시민의 삶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의 매력을
대전시는 2006년 4월부터 ‘대전천 물길 되살리기’를 추진했다. 2008년 10월 중앙데파트가 발파공법으로 철거되고 2009년 8월부터는 압쇄공법으로 홍명상가도 철거했다. 이름하여 ‘목척교 르네상스 프로젝트’다. 이는 대전천을 살려 대전 역세권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충남도청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보문산을 관광벨트로 조성해 원도심을 새로운 명소로 부각시키겠다는 취지다. 그래서 자연친화적인 수변공간으로 만드는 대전천 목척교 주변 정비 사업이 내년 3월까지 완료될 예정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4대 강 살리기 프로젝트와 궤를 같이하고 있
화가 나면 선생님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 내가 조금이라도 뭐라고 훈계를 할라치면 째려보며 씩씩거리곤 했다. 다른 선생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잘못된 행동에 충고라도 하려고 할 때면 분노로 가득한 얼굴을 보이며, 웃어른을 알아보지 못했던 그런 아이가 있었다.공부를 잘하는 것 빼고는 뭐 하나 내세우기 어려운 그런 아이였다. 자존심도 셌다. 친구들이 자기에게 조금만 싫은 소리를 해도 화를 냈으며 남을 때리고, 심지어 침까지 뱉기 일쑤였다. 무엇이든지 지고는 못 살았다. 수업 시간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어디에 둘지 몰라 했다.
올 상반기는 바야흐로 죽음의 시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탄식하고 비판하고 때로는 몸으로 저항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이전투구의 현장으로 몰아넣은 근본적인 원인이다. 구소련을 필두로 사회주의 국가가 몰락한 이후 자본주의 진영은 환호했다. 체제 경쟁에서의 승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자신감을 넘어 오만을 불러왔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호령하는 주류 이념으로 등장하고 자본에게 무한한 자유를 허용한다. 그리고 자유를 넘어선 자본의 방종은 세계 질서를 위협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원리란 오직
‘테레사 효과(Theresa Effect)’라는 용어가 있다. 테레사 수녀의 헌신적 봉사활동에서 유래한 말이다. 미국 하버드 대학 의대에서 학생들을 봉사활동에 참여시킨 후 체내 면역기능을 측정한 결과, 면역기능이 훨씬 증가했다. 또 마더 테레사의 전기를 읽게 한 다음 인체변화를 조사했더니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면역기능이 크게 향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같이 봉사활동을 하거나 봉사하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면역기능이 높아지는 걸 두고 ‘테레사 효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그런 점에서 봉사는 건강한 삶, 웰빙의 시작이다. 나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혁명 전후의 런던과 파리가 무대이지만, 오늘 이야기는 오스트리아 빈과 미국의 피츠버그, 그리고 우리 대전에 관한 것이다.빈필자는 지난달 중순 국제원자력기구(IAEA) 정기총회에 참석차 오스트리아 빈을 방문했다. 몇 차례 다녀온 곳이지만, 이번은 좀 특별한 경험이었다. 엄청나게 솟구친 호텔 숙박료 때문이었는데, 아담한 크기의 방도 하루에 70만 원이 넘었고 그것도 숙박료를 선납해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빈은 이름난 관광지인데다 IAEA, OPEC 등 국제기구가 있어서 방문객이 많은 곳이
현재 문화체육관광부는 예술인들의 복지제도를 위해 문화예술진흥법을 입법예고해 놓은 상태다. 그래서 지난 7월 14일 ‘예술인 복지제도 도입 위한 토론회’에 이어 9월 30일에는 ‘문화예술진흥법 개정(안) 공청회’를 개최해 이르면 내년 하반기부터 예술인 복지제도가 시행된다고 한다.선진국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예술인 복지제도가 전무한 상태였다. 지난해 예술인 600명을 조사한 결과 월평균 125만 원(연평균 1504만 원)의 불안정한 수입 통계가 나왔는데, 프리랜서일 경우 이러한 수입조차 없는 예술인들도 부지기수다. 또한 예술가들의 사회보
많은 것이 변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변하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계절의 변화를 많이 겪거나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일 때만 변화를 쉽게 알아챈다.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의 일이다. 친구가 퇴학을 당할 만한 사고를 냈다. 친구가 전하기를 담임선생님께서 교장 선생님께 무릎을 꿇고 부탁하셨다고 한다. “담임인 제가 지도를 잘못하여 생긴 일입니다. 저를 믿고 다시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해 주신다면 바르게 성장하도록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를 일”(김중혁, ‘매뉴얼 제너레이션’)이기에, 늘 매뉴얼을 나침반 삼아 생활하는 세대를 위하여, 매뉴얼의 홍수 속에 또 다른 매뉴얼 하나를 던져야겠다. 이것은 여러 ‘인생 사용 설명서’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실제 적용과 응용은 매뉴얼을 참고하는 이의 고유 권한이라 할 것이다.하나, 전신 성형을 하라. 안면 근육 강화는 필수. 홍조를 만드는 피부 색소를 과감하게 제거할 것. 연체동물처럼 근육을 제외한 모든 뼈를 제거할 것. 혀와 허리가 의지와 무관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자율신경을 강화할
요즘엔 기침과 재채기가 ‘공공의 적’이 되었다. 감기도 아닌데 목이 간질거려 기침이라도 한 번 하려면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고, 거리에서는 때이른 마스크를 쓴 사람을 종종 보게 된다. 바로 신종플루 때문이다. 실제로 신종플루의 치사율은 계절독감보다 조금 높은 정도로 그렇게 위험한 병은 아니지만, 우리들이 느끼는 공포는 훨씬 크다. 조류독감처럼 특정 매개체를 통해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호흡기를 통해 쉽게 전파되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터에서 적의 위치를 모르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감염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의 공포
불과 1년전 만 해도 갖가지 위기설과 제 2의 환란에 대한 두려움으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 같았던 우리 경제가 어느새 주가·부동산 등 일부 경제지표의 과열을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경쟁적으로 ‘한국경제 때리기’에 나섰던 해외언론들도 연일 한국경제에 대한 호의적인 보도를 내놓는 모습을 보면서 실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최근 국내외에서 한국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어두운 터널을 벗어났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관련 경제지표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이에 공감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경제지표의 호조에도 불구하고 향후 우
3대(代)가 멸족하려면 국무위원 또는 국무총리가 되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소위 국무위원과 국무총리 등의 국회 청문회에서는 그 후보자의 모든 것이 들추어지고 해부된다.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치부가 노출되어 개인이 쪼개지고 난도질당하게 되니 그 후손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언론 등을 통해 개각이 예상되면 항상 짓궂게 전화하는 친지들이 있다. “전화 안 왔어?” “무슨 전화?” “입각하라고….” “또 장난치는군.” “아니야. 자네 같은 친구는 꼭 한번 입각해서 일해야 하는데….” 항상 그 다음 말이 나온다. “윤 교수는
몇 년 전만 해도 ‘경력단절여성’이라고 하는 용어에 대해 그 뜻을 되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전업주부라는 단어 대신 사회적 의미를 담아 생겨난 ‘경력단절’의 의미는 여성이 졸업 후 취업하여 일을 하다 결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가정에 머물게 됨으로써 경제활동이 중단된 상황을 뜻한다. 우리들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경우이다.불과 3-4년 전만 해도 국가나 사회로부터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대상층이었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생산인구의 감소 문제가 대두되면서, 잠재적인 성장동력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고 이들의 경제활동을 촉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