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독도 땅을 처음 밟아보는 행운을 누렸다. 동국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울릉도독도해양연구기지가 참여하는 독도 연구팀의 학술답사 일정에 따라가게 된 것이다. 독도평화호를 타고 가는 동안 가슴은 내내 설레었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는 일본 수로부의 해도 '조선동안'(1893)을 최근에 발굴한 교수와 그 연구팀을 실은 배는 울릉도에서 두 시간을 달려 독도에 도착했다. 마침내 내 발이 국토의 최동단에 닿았다. 가슴이 다시 설레었다. 이게 뭘까. 특별한 경험에 대한 희열감일까. 치열한 영토 갈등 현장에 대한 체험감일까. 아니면 무
시월로 접어들기 무섭게 올해도 어김없이 휴대폰 화면에 익숙한 문자가 떴다. '부족하지만 정성껏 준비한 00초등학교 동문체육잔치를 선후배 동문님들과 함께하고자 합니다. 오랜 불경기와 침체된 사회 분위기, 또 어떤 이유로 마음이 무거우시다면 오셔서 고향과 동문의 정을 함께 나누며 힘을 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하다가, 푸른 하늘을 쳐다보다가, 올해는 유난히 붉은 매일 저녁의 노을을 훔쳐보다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만지작거리다가 다시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문자가 바로 초등학교 동문회에서 온 소식이다. 오래전에 졸업한 학교로 놀러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배운 유행가는 '물레방아 도는데'였다. 물론 유행가에 앞서 웬만한 동요는 취학 전에 이미 끝냈다. 그때 배운 동요가 아직도 선명하다. 과꽃이 어떤 꽃인지도 모르면서 올해도 과꽃이 피었고 과꽃을 좋아한 누나는 꽃이 피면 아예 꽃밭에서 살았다며 목청껏 외쳤던 기억이 새록하다. 그뿐인가. 과꽃을 보면 누나 얼굴이 떠오르고 시집간 뒤 영영 소식이 없는 누나가 가을이면 더 생각난다는 구절에 어린 마음에도 숙연했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동요는 딱 그뿐이다. 초등 시절, 당시 폭풍 같은 인기 속에 등장한 나훈아의 '물레방아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 지구적 전염병'으로 선언할 정도로 개인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의 회원국들은 비만이 국가 경제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비만 치료와 예방에 힘쓰고 있다. 다행히 OECD 국민의료비 통계(OECD Health Data 2014)에 따르면 우리나라 과체중·비만 인구 비율은 31.8%로 이웃한 일본(23.7%)과 함께 최하위권에 속하고 있다.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12년간(20
최부(崔溥·1454-1504)는 조선의 관리였다. 스물여덟에 과거에 급제하고 3년 뒤 성균관 정6품이 되어 서거정과 함께 민족의 역사서인 '동국통감'을 편찬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 뒤 새로운 직책을 명받아 1487년 9월 제주도로 떠난다. 추쇄경차관. 정확한 인구 조사가 임무다. 그러던 중 이듬해 정월 부친상을 당해 거친 바다에 배를 띄워 고향인 나주로 향한다. 일원 42명과 함께 배에 오른 이 항해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배는 풍랑을 만나 정처 없이 표류한 끝에 남중국 태주부 임해현 우두산 아래 당도한다.거기서부터
추석이 지났다. 다행히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고 날씨도 괜찮았다. 고향집은 여전했으나 부모님의 등은 조금 더 굽어져 있었다. 누렁이는 앞다리를 들어 반겨주었고 살이 오른 흰 토끼들은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빨간 눈으로 토끼장 밖의 웅성거림에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지난봄 병아리였던 닭들은 어느새 중닭으로 자랐고 수탉은 자기가 거느린 암탉들을 건드릴까 봐 부리부리한 눈으로 철망 앞에서 시위를 했다. 갓 낳은 따스한 달걀 하나를 손에 쥐어보고 싶었지만 수탉의 위세에 욕심을 접었다. 고향집에 오면 마치 순례를 하듯 하나하나 돌아보는 습
7년간의 미국 유학생활 동안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많지 않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주립대학이 대부분 소도시에 위치한 데다 주민들의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대학도시라 외국인들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이다. 그런 내가 가장 놀란 것은 여름방학을 맞아 미국 남부를 여행하던 중 일어났다. 미시시피 어느 시골에서 자동차에 가솔린을 넣은 뒤 화장실을 찾은 나는 깜짝 놀라게 된다. 화이트(white)라고 쓰인 화장실이 전면에 있고, 컬러(colors)라고 적힌 화장실은 주유소 건물 뒤편에 있었다. 뒤편 화장실은 불결하기 그지없었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의 덕을 보고 있다. 연구하는 사람이 시를 쓰고 글을 쓴다고 하니 아내에게 누가 그랬다고 한다. "그 사람은 하라는 연구는 안 하고 시만 쓰고 있냐"고. 그럴 때는 이렇게 대답하라고 했다. "이순신 장군은 할 일이 없어서 전쟁 통에 일기 쓰고 시를 썼냐"고. 사실 삶이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우리 조상들은 글을 썼다. 어렵고 힘들수록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남기었는데 우리 시대에 와서 그렇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난중일기가 있기에 그 절박한 상황에서 나라사랑과 백성사랑의 '忠'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영화, '명량
최근 정부는 경제활성화 대책으로 관광, 의료, 교육 등 서비스업 진흥을 위한 규제 완화 및 지원 방침을 발표했다. 한편에서는 서민경제와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대책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의 안전과 건강, 환경훼손을 담보로 하는 규제 완화에 대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이처럼 여론이 나누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지속가능한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을 되새겨 보고자 한다. 이 용어는 1987년 발표된 유엔(UN)보고서 '우리들의 미래(Our Common Fut
안녕, 엘론?어느덧 가을의 문턱에 왔네요. 동아시아 농경문화권에서는 1년을 24절기로 나누고 이 무렵을 '처서'라 부릅니다. 처서가 되면 왕성한 여름기운이 수그러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차분한 마음으로 책도 많이 읽곤 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부르기도 한답니다.엘론, 당신은 24절기 내내 바쁘죠? 당신 이름자 앞에 붙는 수식어는 화려해서 셰익스피어 식으로 말하면 '밤의 뺨에 걸려 있는 보석'처럼 현란하고 아름답죠. 21세기형 슈퍼 히어로, 혁신의 아이콘, 제2의 스티브 잡스, 영화 '아이언 맨' 주인공의 실제 모
지난 봄날 나는 강원도의 어느 산골에 자리한 문인집필실에 입주해 있었다. 그곳에서 다른 작가들과 함께 글을 쓰고 산책을 하고 술을 마시며 봄날을 건너가던 중이었다. 때늦은 눈이 내리고 비가 내리고 마침내 봄을 알리는 목련이 하나둘 피었다. 어느 날 비가 눈으로 변해 아직 활짝 피어나지도 못한 목련이 얼어버렸고 그 참담한 모습을 목격한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들은 아침부터 술잔을 기울여야만 했다. 그 얼마 후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학생들과 일반인들을 태운 한 척의 배가 맹골수도(孟骨水道)에서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게 잔인한
학창 시절, 국사 수업에서 가장 알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는 의병에 관한 기록이었다. 임진왜란 의병 기록은 지도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소상히 배웠다. 그뿐인가, 크고 작은 시험에 자랑스러운 의병의 역사는 꼭 출제되었고 행주치마 유래까지 곁들인 역사 선생님의 자부심이 가득한 수업을 들으며 뿌듯해했다. 그런데, 커서 어른이 된 뒤 가진 의문은 병자호란 때에는 어찌하여 자랑스러운 의병의 역사가 없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병자호란 당시의 의병의 활약사는 배운 기억이 많지 않다. 아니 나의 경우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 같은 의문은 책을 읽
요즘 도심 인근의 산과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아마도 건강한 삶, 웰빙(well-being)에 대한 욕구와 가치가 높아졌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또한 최근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캠핑 문화의 확산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쾌적한 공기를 마시면서 가족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쌓였던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기 위함이 아닐까 한다.최근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 도립공원을 대학원생들과 함께 가서 방문객들에게 태백산이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질병 치유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그리고 태백산의 건강증진 가치를 위해서 얼마를 기부할 수
시대가 거듭될수록 각 분야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며 분야 간 또는 장르 간 융합과 통섭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과학·산업 분야뿐 아니라 건축, 미술, 디자인, 패션 등과 같은 모든 예술 분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종이접기다. 접기는 평면의 입체화를 통해 형태와 구조를 형성하는 기법으로 오늘날 많은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일반적으로 접기라고 하면 어린이들이 놀이로 하는 색종이 접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종이접기는 전문 종이접기 애호가들에 의해 창의적인 방법들이 개발됨에 따라 전혀 새로운 개념으
장마철에 접어들어도 마른장마가 지속되더니 어느새 국지성 호우가 물폭탄을 쏟아 붓는다. 모자라도 걱정, 넘쳐도 걱정이라더니 여름 한 철 강수량이 꼭 그렇다. 예측 가능하다면 퍽이나 좋을까. 장마철엔 비가 오래도록 많이 내려야 제격이다. 산과 들이 충분히 젖고, 저수지가 만수위에 올라 넉넉해져야 안심이다. 농부는 논에 물꼬를 터주고 시청 공무원들은 지난해에 넘쳤던 도심 하수구를 새로 정비한다. 그러는 사이 천산만야의 풀과 나무들은 무럭무럭 자란다. 절기도 질서가 있어야 제격인 법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삶의 축축한 비애를
집에 총을 든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나를 찾았고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끌려갔다. 트럭 안에는 민간인 복장을 한, 나처럼 끌려온 사람들이 침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나는 헌병에게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붙잡아 가는 거냐고 물었다. 헌병은 귀찮은 듯 서류를 뒤적이더니, 군 시절 서류를 위조해 석 달이나 빨리 전역을 한 게 발각이 됐으므로 다시 군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서류란 대학 1, 2학년 때 받는 군사교육 이수증명서를 말하는 것인데 이러저런 이유로 그 수업에 F를 맞으면 3개월 혜택을 받을 수 없
2차 세계대전 전, 무대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한 고급 레스트랑이다. 종업원 여자가 있다. 팜므 파탈 형이다. 주인 남자 A가 그녀를 사랑했다. 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남자 B도 그녀를 사랑했다. 여자는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했다. 남자 A는 남자 B와 사랑에 빠진 여자에게 말한다.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같이 사랑해도 좋다는 의미다. "놓치기보다는 반만이라고 갖는 것이 낫겠다"는 대사는 한동안 회자된다. 얼마 뒤 또 한 남자 C가 등장한다. 여행 온 독일인이다. 여자에게 구애했으나 거절당하자 검푸른 다뉴브 강에 투
지난 몇 년 간 이상기온 현상으로 유럽을 비롯한 가까운 일본 등 많은 국가에서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간 기록적인 폭염으로 전력공급이 중단되는 블랙아웃(blackout) 사태의 발생을 우려하고 있다. 올해도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작년에 비해 한 달 정도 빠른 5월 말에 전국적으로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폭염특보는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 사람들이 받는 열적 스트레스를 지수화한 열지수와 최고기온을 사용하여 국민 건강 등에 미치는 영향 정도에 따라 주의보와 경보로 나누어 발표된다. 폭염주의보는 일 최고
세상 일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불과 두 달 전 세월호 침몰이라는 큰 사고가 있었고, 그런 엄청난 사고를 낸 해운사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이미 다른 나라로 밀항했는지 어쨌는지 땅속으로 꺼지거나 땅 위로 증발하듯 자취를 감추었다. 아직 사고가 다 수습되기 전인 짧은 시간 동안 지방 자치행정의 수장과 지방의원들을 뽑는 선거가 있었지만 그 일은 벌써 수년 전의 일처럼 멀어진 느낌이다.세월호 사건에 대한 책임으로 현직 총리가 시한부 사퇴를 하고 그 뒤를 이어받을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이런저런 결격 사유로 낙마했다. 두 번의 총리 낙마 역
6·4 지방선거도 끝이 났다. 이어 7·30 재보궐 선거가 예정되어 있다. 정가는 지금 그 결과를 두고 셈이 한창이다. 지역, 세대, 이념 등 여러 각도에서 득표 결과를 분석하고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당내의 계파는 계파별로 이해득실을 저울질하고 있다. 선거 과정에서 행했던 여러 전략 및 선택에 대하여 효과도 분석하고, 공과도 따진다.아무래도 이번 지방선거에서 관심을 끌었던 일은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과의, 선거를 두 달여 앞둔 시점에서의 합당이었을 것이다. 과연 합당효과는 있었을까. 있었다면 득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