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3년간 우리 국민은 소위 '서방 선진국민'들의 무너진 도덕성과 저급한 문화의 한계를 또렷이 목도하며, 그간 뼛속까지 스며들었던 문화사대주의의 긴 잠에서 깨는 일대 각성이 이루어졌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필자는 최근 미국에서 큰 인기인 '태권도장'에서 다양한 인종의 부모님들이, 자신의 어린 자녀가 큰 절을 올리자 감격하여 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가슴 뭉클했던 기억을 잊지 못한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모습과 지켜야 할 기본적인 가치는 피부색과 지역을 넘어 보편적인 것임을 새삼 확인하면서 큰 깨달음과 벅찬 희망을 얻게 된
지난 4월부터 이응노미술관에서 시작된 '이응노와 박승무 70년 만의 해후'라는 제목의 전시가 세간에 화제다. 고암 이응노와 심향 박승무가 홍성과 옥천이라는 충청지역의 화가로서만 인식되었지 두 작가가 어떤 관계였는지 잘 몰랐던 만큼, 시민들과 전문가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두 예술가의 생애에 걸쳐 각자의 작업이 어떤 스타일로 전개되었는지 보여주는 한편, 두 거장의 아름다운 우정 관계를 잘 조명하고 있다. 박승무가 11살 손위의 나이였지만 이응노를 존중하였고, 이응노 또한 자신이 차린 간판점인 개척사를 전주에서 운영할
일본 요코하마에서 한일문화 국제교류 행사를 마치고 음악 친구들과 이번 프로젝트를 축하하기 위해 테이블에 모였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담소를 나누기 시작할 즈음, '동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머리는 어지럽고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제118회 상록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 준비를 위해 만나서 의논하고 통화 역시 자주 했었다.나의 친구이자 존경하는 음악인이었던 지휘자 동형춘 교수님의 장례식 참석을 위해 일본 일정을 취소하고 앞당겨 귀국했다. 늦은 밤 장
왜란과 호란의 양란을 겪으며 완전히 피폐해진 조선의 근대화가 시대적 과제였던 시절, 조선의 사회경제 개혁을 통해 부국안민을 염원했던 실학이 태동하였는데, 그 대표적 인물이 토지개혁을 주창한 중농주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과 개혁개방을 통한 상공업부국론을 주장한 중상주의 실학자 연암 박지원이다.조선후기 송시열과 그의 제자들은 주자학을 절대화하며, 그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수 있는 모든 사상과 철학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도륙을 하는 끔찍한 공포정치를 자행했다. 조선 지식인들의 학문과 사상의 자유가 완전히 박탈당한 채 집권 노론세력의 일당독재가
최근 필자는 대청호환경미술축제의 일환으로 펼쳐지는 야외조각전시인 '물의 시간, 마흔세 개의 봄'을 대청호미술관과 공동으로 기획했다. 대청호가 바라보이는 문의면 문화재단지와 호수의 수변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의 제목을 '물의 시간'으로 구상한 것은 올해 대청호의 나이를 떠올리면서 나온 것이다. 43번째의 봄을 맞는 대청호는 국내 세 번째로 큰 담수호로 충북 청주시와 대전시에 식수 및 생활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조성된 인공호수이다. 안타깝게도, 대청호라는 국가의 사업 때문에 그 자리에 살던 주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이주해야 했고, 남은 유적
누구든 살다 보면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다르게 새로운 것이 두려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지만, 사람들은 그 시작 앞에서 다짐과 계획을 세우게 된다.대전시립청소년합창단은 지난 3월 새로운 예술감독 취임 후 첫 정기연주회를 준비하고 있다. 길지 않은 준비 기간과 단원수급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순수한 클래식에서 기본을 찾아보려는 다짐과 무대 위에 주인공이 단원임을 강조하며 다년간의 소년소녀합창단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자리에 서는 고석우 예술감독의 취임연주이기도 하다. 타 시도의 소년소녀합창단과는 다
배는 좌우의 노를 한 방향으로 맞춰야 나간다. 허나 노를 맞춰도 사람들이 한쪽에 몰리면 기울어 물이 차는 법. 이에 놀라 반대편으로 몰려가다가는 뒤집어지고 만다. 천지만물과 인간사 모두 균형이 깨져 중심을 잃으면 병이 나고 죽는 자연의 이치다.해서 선장은 '중심을 지키는' 북극성을 보며 항해하고, '생명을 책임지는 엄숙한 마음'으로, '균형잡기'에 최선을 다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고, 술 취한 사공을 만나면 빠져 죽기 십상이니 말이다.지금 한국호는 태풍전야다. 미중 패권전쟁이 정점을 향해 가면서 안보와 경제 모두 칼날
아시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 중 하나인 광주비엔날레가 올해 열네 번째 생일을 맞았다.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숙경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79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해 본전시를 비롯 광주 전역의 5개 공간에서 4월 7일부터 7월 9일까지 94일간 펼쳐진다. 전시 제목은 도덕경에 나오는 유약어수(柔弱於水)에서 차용한 것으로, "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의미다. 필자는 몇 가지 작품들을 리뷰하면서 이번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전시
얼마 전 도로에 걸린 현수막에 시선이 멈췄다. '30년 전 그날의 추억을 수집합니다' 대전시립박물관에서 올해로 30주년을 맞는 '93년 대전엑스포' 관련 자료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필자 역시 93년 한빛탑 앞에서 찍은 사진이 앨범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기에 옅은 미소와 함께 추억이 소환됐다. 1993년을 기억해보면 선진국에서만 개최하던 엑스포가 대한민국 그것도 대전직할시에서, 88올림픽 이후 최대의 국제행사가 열린다는 사실만으로 떠들썩했었다. 대덕연구단지 일대에서 치러졌던 '93엑스포'는 전국의 관광버스가 대전을 향하게 했고, 그
매일 저녁 6시 5분 전부터 알람까지 맞춰 놓고 준비했는데도, 순식간에 '매진'이 떠 버리곤 했다. 도대체 이게 뭐길래. SNS에서 핫하다고 힙하다고 해서 간만에 문화 산책 좀 다녀와 볼까 우아하게 시작한 마음은, 해내고야 말겠다는 집념과 오기로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바나나를 벽에 붙인(코미디언, 2019)"이라고 말하는 순간, '아 바나나~~' 하고 어디선가 들어봤을 바로 그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였다. 왜 이렇게 난리들 인지, '어디 한 번 보고야 말겠어' 포기하지 않는, 성실한 집념은 마침내 예약 성공의 결과를 안겨
금년은 '판소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20주년'이 되는 해다. 한국가무악의 뿌리와 줄기를 세웠던 충남에는 의미가 남다르다. 해서 재단은 오는 31일 내포혁신플랫폼에서 포럼을 열어 '국악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충남의 역할'을 모색하고, 문화부의 '국립국악원 충남분원 설립'을 강력히 촉구하는 선언식을 가질 예정이다.지난 4년간 충남은 국악중흥의 중심에 서고자 '공주시 유치운동'을 가열차게 벌였다. 세종시도 동참했고 충남문화재단도 함께 했다. 유감스럽게도 문화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작년 말 여당 실세라는 강릉지역 국회
세계적으로 인공지능에 관한 창작 논의가 뜨겁다. 아마도 챗GPT가 등장하면서 몇 해 전 이슈가 됐던 AI창작이 새롭게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 같다. 한국의 카카오브레인이 개발한 AI 아티스트 '칼로'가 그린 포춘코리아 표지 그림은 한눈에 봐도 예사롭지 않은 솜씨다. 이 그림은 수 많은 문서들 즉 지식과 다채로운 이미지들이 가득한 두뇌를 가진, 무엇인가를 몽상하는 표정의 사람 얼굴을 그린 것인데, 1920년대 다다이스트들의 낯설고 파격적인 그림들을 떠올리게 한다.알파고의 충격 이후로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 연구가 활발해졌고 인공지능
무언가 본격적인 시작과 생동감이 넘치는 3월이다. 꽃샘추위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봄이 찾아왔음이 확실한 시기이다. 지난 3여 년의 시간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를 착용해온 우리는 반쯤 가리진 얼굴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졌다. 답답하던 초기와는 다르게 익숙해졌고, 화장 없이 외출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찾아내기도 했다.기약 없던 마스크 해제도 현실로 다가와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는 이 시점에 당황스러운 일들이 생기고도 한다. 마스크 착용 후 알게 된 지인들의 이미지를 그 모습 그대로를 인식하고 기억하고 있어 오히려 마스크를 벗은 모습을 알아보
문화자본은 예술 활동이나 문화상품의 특성을 자본으로서 인식하는 개념으로, 이런 문화를 상품으로서 생산하기 위해 최근 지역의 지속가능한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역의 개성있는 문화자본을 토대로 지역의 특징을 살리면서 경제를 활성화하는 '살기 좋은 문화도시'를 가꾸는 프로젝트는 대전 뿐만 아니라 전국의 도시의 목표일 것이다.대전의 대표적인 문화자본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대전의 오월드, 성심당, 뿌리공원, 엑스포과학공원, 한밭수목원, 계족산황톳길 등 상징적인 명소를 대답할 수
속담에 '길 닦아 놓으니 뭐가 먼저 지나더라'는 얘기가 있다.'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챙긴다'는 말도 있다.요즘 그 말을 되뇌이며 충남 문화예술의 쓰린 현실을 곱씹고 있다.충청인으로서, 문화예술계 책임 있는 한 사람으로서, 상처난 자존심에 너무 슬프고 또 화가 난다.수년간 충남도민의 뜨거운 정성을 모아 추진했던 '국립국악원 공주 분원 유치'가 좌절될 위기다. 엉뚱하게도 지난 연말 강릉시가 힘좋은 지역 국회의원(권성동 의원) 덕으로 국비를 배정받아 강릉 분원 설립용역을 추진하고, 최근 국립국악원장이 강릉을 방문, 시장과 함
최근 서구의 미술계에서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식민주의의 청산에 관한 것이다. 그 논쟁의 중심에 베를린의 새로운 문화공간인 훔볼트 포룸이 있다. 2020년 12월 16일 온라인 개관식을 가진 이 박물관은 훔볼트 포룸 재단과 4개 기관인 독일 프로이센 문화유산재단,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 베를린 시립박물관, 베를린 컬처프로젝트가 파트너십을 체결해 21세기 독일 최장기 문화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독일 최대의 이 박물관은 베를린 국립민속박물관과 동아시아박물관을 이전해왔을 뿐 아니라, 훔볼트대학의 유서 깊은 소장품들까지 들여왔다. 이는 독일
BTS의 소속사로 알려진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는 사건은 단순한 연예 기획사 합병을 넘어 경영권, 주가 향방, 외신들의 보도까지 즐비하며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연예 매니지먼트,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잘 나가는 연예인을 영입하여 관리하는 단순한 업무에서 가능성 있는 연예인을 발굴, 육성하고 그들을 기반으로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대형기획사들은 K-pop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대중음악과 한국식 아이돌 문화 전반을 사업화하여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매니저의 역할도 단순히 연예인의 일정을 따
"그는 사려가 깊고 중후하며 예의가 바르고 덕망이 넘쳤다. 고통과 유배와 신변위협을 겪으면서도 관대한 성품으로 모든 정적을 누르고 사람들의 인기를 모았다. 부자이면서도 생활 모습은 검소하고 태도 또한 소탈했다. 당대에 그처럼 정치에 통달한 이는 드물었으니, 그는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할 수 있었다"군주론으로 알려진 르네상스 시대의 대표 이탈리아 정치이론가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바라본 코시모 메디치에 대한 평가이다.피렌체의 메디치 가문은 14세기 초부터 직물 교역을 통해 부를 쌓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평민의 권
'충남문화예술중흥'이라는 공든 탑을 쌓아 '하나 되는 충청'의 길을 열고, 충청도가 '국토의 중심에서 문화의 중심으로' 새롭게 서는 꿈을 꾸면서, 그 발판이라도 마련해 보고자 나름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3년이 흘렀다. 오늘에서 돌아보며 내일을 생각하니 충남의 현실에 대해 참으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신년벽두 충청권 4개 시도의 문화예술정책과 시도지사들의 메시지를 검색해 보았다. 먼저, 바다가 없는 충북은 '레이크파크 르네상스'라는 깃발을 들고, 호수와 강을 배경으로 '문화예술의 옷'을 입혀 충북도약을 이루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제
얼마 전 한국예술위원회가 주관하는 국제교류플랫폼사업과 관련해 유럽에 다녀왔다. 필자는 '생태예술 및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전시와 교육을 한 경험이 있는 예술기관들과 학교 관계자들을 만나고자 했다. 주로 영국과 독일의 기관과 교육자에 한해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영국 맨체스터대학의 교수인 데이비드 할리(David Haley)는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그는 생태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매우 남다른 삶의 행보를 보여준 작가였다. 1990년대 생태(eco)라는 말이 생소한 그 시절, 할리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맨체스터국립대학에서 석사과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