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고에 우리는 재즈가 매우 다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었던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1718년 프랑스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그 후 잠시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기도 하지만 100년 간 프랑스 문화권에 있었다. 다행히도 프랑스인들은 흑인들에게 관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예나 지금이나 흑인들에게 가혹한 자들은 앵글로 색슨(Anglo-Saxon)족이다. 넓게 보면 게르만족의 한 분파인 그들은 어쩌면 로마가 세상을 지배하던 당시 극성을 부리던 야만족의 후예들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영국, 미국, 호주, 캐
좀비가 창궐하고 있다. 감염된 자들이 거리를 누비며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전염시킨다. 여럿이 모이면 위험하다. 흩어지고 숨어서 자발적으로 고립되어야 살아남는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이웃이, 동료가, 심지어 식구들까지 누구라도 전파자가 된다. 물론 이는 스크린 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현실도 그리 다르지 않다. 좀비는 장르서사 속 상상의 괴물이지만, 관객들은 그 모습에서 시대를 읽는다. 코로나19 사태로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극장가에서 그나마 많은 관객과 만난 작품이 조일형 감독의 와 연상호 감독의 라는 사실도 같은
2011년 3월 캘리포니아주의 롱 비치에서 열린 테드(TED)에서 아밋 수드(Amit Sood)는 '웹에서 박물관들의 박물관을 만들다'라는 제목으로 '구글 아트 앤 컬처(Google Arts and Culture)를 소개하는 강연을 펼쳤다. 전 세계 미술관과 박물관 소장품을 언제 어디서나 별도의 비용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는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구상이다. 뉴욕현대미술관과 런던의 테이트미술관 등 9개국 17개의 유명 미술관이 참여했던 이 프로젝트는 현재 2000개 이상의 전 세계 문화예술기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고 시각예
지루한 장마철이다. 그나마 마스크 속에 가려져 더욱 답답하기만 한 일상이다. 새벽 창을 열고 깊은숨을 들이켜본다. 아직은 큰비 오기 전이라 그런지 먼지잼에 젖어 드는 바깥 풍경이 고즈넉하게만 느껴진다. 물기 머금은 바람에 실려 오는 살아있음의 생생한 냄새들이 눈물겹다. 촉촉이 적셔진 이파리들이 품어내는 초록의 냄새, 멀리 희부연 도로 위를 달리는 운전자들의 활력의 냄새, 길 건너 주택가 초록빛 옥상에 펼쳐진 야외놀이 텐트에서 흘러나오는 일가족의 다정한 냄새,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소박한 냄새들이 곳곳에 있어서 그래도 숨 쉴만
재즈(Jazz)음악은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음악가들에 의해 창조되고 연주되며 열렬한 그 지지자들에 의해 감상되고 소비되는 음악일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대중음악의 아버지가 되는 음악이다. 20세기 초 미국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는 이 음악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실내악"이라고 했던 도올 김용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그 영향력과 예술적 가치는 이루 말 할 수 없다. 지난해 연재하였던 황성곤의 음악산책 1에서는 현존하는 여러 가지 음악형태를 살펴보았고 또 과연 음악이란 무엇인지 쉽게 풀어보
우리는 끝내 만나지 못했다. 두 주일씩 미뤄지던 대면강의는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고, 한 학기 전체가 원격강의로 대체되었다. 모두에게 낯선 시간이었다. 선생들은 지금껏 사용했던 강의노트를 덮고 서둘러 동영상 제작방법을 배웠다. 행정직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 일정을 변경했다. 학생들은 불안을 감내하며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의 수업에 참여했다. 급히 만든 영상으로 인터넷강의에 익숙한 세대를 만족시키리라 기대할 수 없었다. 애써 수정한 계획이 뒤집히는 일이 거듭되었다. 누구도 방향을 제시할 수 없으니 그저 견딜 수밖에 없었다.
1913년부터 1930년까지 17년 동안 영국 시단의 대표로 왕실에서 임명하는 '계관 시인'이었던 로버트 브리지스(Robert Bridges·1844-1930)는 6월을 노래하는 시를 썼다.유월이 오면 나는온종일 향긋한 건초더미 속에내 사랑과 함께 앉아산들바람 부는 하늘에흰 구름 얹어놓은눈부신 궁전을 바라보련다.그녀는 노래를 부르고나는 노래를 지어주고아름다운 시를 온종일 부르리라.남몰래 내 사랑과 건초더미 속에 누워있을 때인생은 즐거우리라.(로버트 브리지스 시 '유월이 오면')어느덧 6월이 오는 듯하더니 코로나19로 우왕좌왕하는 사
방송의 오락프로그램 대다수가 트로트 가수 7인의 출연이다. 본 방송은 못 봤지만 이후로도 계속되는 그들의 출연을 보면서 그들의 인기와 트로트의 가사, 선율이 주는 공감이 얼마나 큰지 이해가 됐다. 그러던 중 김연자씨의 아모르 파티 속뜻이 이 시대의 좋은 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아모르파티(amor-사랑, fati-운명)는 독일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자기운명에 대한 사랑, 즉 '운명애'란 뜻이다.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가치전환해 자신의 삶을 긍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자칫 허무주의
아파트 단지를 벚꽃이 가득 메우더니 이번에는 영산홍이 만개했다. 자연은 순리를 따라 흘러가는데 인간은 스스로 만든 지옥에 갇혔다.자유롭게 외국 어디든 맘껏 여행 다니며 보고 싶은 연주도 실컷 보던 평범한 일상이 정지되고 사라졌다. 코로나19는 사회 곳곳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겠지만 내가 몸담은 공연예술계에도 직접적으로 큰 변화를 주고 있다.예술은 우리 인간에게 크나큰 선물을 안겨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정신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주며 인간이 지닌 고귀하고 숭고한 삶의 가치를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희망을
0.000127 관음(觀音.미세떨림)이 미국의 폭풍이 됐다기상학자 로렌스가 기온, 풍속, 습도, 등 12가지 방정식으로 얻은 기상변수 값이 0.506127이었다. 로렌스는 0.506만 취하고 0.000127은 버렸다. 호기심이 생겼다. 버린 값이 시간이 지나면 어떤 변화를 가져오나 시뮬레이션을 해보았다. 왠걸? 한 달 후 폭풍이 되더라는 것이다."북경의 한 마리 나비 날개짓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도착하면 폭풍으로 변한다." '나비효과'다. 작은 변수도 긴 시간에 증폭되면 예측 할 수 없는 엄청난 결과가 나타난다는 이론 나비효과.
이제 신록의 5월도 마지막주다. 코로나19로 인한 지난 4달로 인해 멍들고 할퀴어진 삶이 주위에 탄식으로 남아있다. 특히 삶이 연주이고 연주가 인생인, 연주를 주업으로 하는 예술가들이 굳게 닫힌 연주장 때문에 한숨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재능 많은 인간 문화재급의 예술가들, 지난 주부터 조금씩 꿈틀거리며 울림이 시작되고있으나 마스크를 쓴 적은 관객 앞에서 열창을 하는 깊이 있는 예술가들을 객석에서 보노라면 잘 차려진 뜨거운 음식이 너무 많이 남아서 아까워 미칠 지경의 광경이었다.온라인 음악회, 티비 속의 미스터 트롯, 팬텀싱어,
사회? "빽이지""빽이지" 가랑비 속을 걸어가며 딸과 어머니가 주고받는 말이다. 파문이 일었다. 멈췄던 사회가 풀렸다. 수많은 점들(인파)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사회? 곰곰 생각하며 걷는데 늦둥이 막내딸인 듯한 소녀와 나이보다 늙어 보이는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이다. 적당한 거리두기(?)로 따라가며 엿들으니 딸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땄는데 취직이 안 된다"고 한숨을 쉬고 어머니는 "빽이 있어야지" 공기 반을 품어 말을 받는다. '빽' 어쩌다 빽이 사회의 주류가 됐는가. 금수저 아빠찬스가 다 빽이다. 직원 몇 백 명을 뽑는데 '
긴 쉼표가 있었다.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한 첫 주말을 우리는 보냈다. 오랜만에 아담과 드라이브를 했다. 나는 차창 너머로 보이는 진달래, 철쭉과 진홍빛 박태기 꽃들을 보고 감탄하고, 그는 앞의 신형 승용차를 보고 감탄을 하는 동상이몽 속에서 일과 여행을 겸했다.10만 원의 씀씀이도 제각각이고 24시간의 하루, 80년의 인생을 사는 방법도 제각각이다. 아름다운 4월, 목련꽃과 벚꽃을 비롯해 많은 꽃들이 피고 졌던 4월이다. 사진을 아무리 잘 찍어도 늘 느끼는 것은 실제로 보는 감동을 담을 수는 없다는 것. 그래서 다들 직접 실황의
"사회적"이란 떼 지어 산다는 의미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사회적'과 '거리두기'는 의미가 충돌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어법에 맞지 않는다. "사회와 거리두기"로 해야 어법에 맞는다. 흔히 잘 못 쓰는 말 중에 '사과 한다'를 '유감'이라고 한다. 일본식 어법이다. 사과 한다면서 '내가 뭘 잘못 했는데...'하는 것이다. 좀스럽게 문법 따지자는 것은 아니고 왜 삼라만상은 '사회적'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모든 생명들은 끼리끼리 모여 살까? 시냇물의 버들치부터 고래 떼까지, 참새부터 독수리까지, 산짐승 들짐승으로부터
지난달 칼럼을 쓰면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한 어려움을 봄의 전령으로부터 전해오는 봄꽃을 바라보며 희망을 가지고 이겨 내자고 하였다.그때만 해도 3월 중순정도면 초등학교 1학년 입학을 하는 어린새싹들이 하나둘 열을 맞추어 햇병아리처럼 종종 걸음을 하며 평생 처음 들어와 보는 학교 강당에서 입학식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또한 우리 공연 예술계도 활발하게 봄 기지개를 켜면서 다양하고 풍성한 연주와 공연들을 준비하여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억눌렸던 문화적 갈증을 풀어 주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코로나
산과 바다를 이따금씩 찾아 나선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과의 거리까지 멀게 살고 싶지 않기에 그렇다. 전시회든 수공예든 음악회든 시간나는 대로 나는 사람의 감성이 빚어내는 모든 범위를 좋아한다.코로나로 뒤덮힌 뉴스 속에서도 지난 2월 8일 대전 소울브릿지 초청 바리톤 박흥우의 겨울나그네24곡 전곡이 연주됐다. 예상대로 적은 인원의 사람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숙연하게 연주회에 몰입됐고 이제 60의 나이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과 너무나 자연스런 자태로 진지한 삶 자체를 노래하기 시작했다.겨울의 끝에서 바리톤의 겨울나그네를 듣
빛이 들지 않는 음지의 썩은 나무토막에 종균을 넣고 버섯을 기른다. 신과 귀신이란 종균은 음지에선 사기로 변한다. 종교는 어둠에서 빛을 피워내는 생명사랑 발전소다. 신은 밝음이다. 그래서 신명(神明) 났다고 한다. 마음이 밝아야 선악을 가리고 사랑과 자비를 품는다. 신은 빛의 아우라인데 신을 어둠으로 끌고들어가 불안 공포분위기를 조성해 놓고 구원해주겠다고 사기치고 있다.불교든 기독교든 빛이다. 그런데 요즘 종교는 영화 기생충의 바퀴벌레처럼 빛을 보면 숨는다. 음지에 서식하는 종균 바이러스가 됐다. 정상적인 종교도 3대 의무중 하나인
전 세계가 몸살을 않고 있다. 현대의 문명이 얼마나 발달하였는가. 사람이 운전하지 않고 편하게 영화나 책을 보며 목적지 까지 편안하게 데려다주는 최첨단 자율 자동차를 말하고, 지구 밖을 떠나 화성에 인간이 살아갈 꿈을 꾸며, 우주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서비스가 제공되는 최첨단의 시대를 살고 있다.그러나 아주 연약한 미생물인 바이러스에 전 인류가 긴장을 하고 전전긍긍을 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이러한 암울하고 힘든 시기에 음악을 하며, 예술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우리들이 힘들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한 가닥 위로와 희망의 소식을 전해
삶에 지치고 어려울 때 더 현실적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아예 안드로메다로의 상상력을 총 동원해 오페라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은 처방이 된다. 사람의 인생은 신기하게도 '대로의 법칙'이 답이 될 때가 종종 있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꿈꾸는 대로. 끊임없이 비우고 채우고 또 비우고 채우는 마음과 생각의 그릇은 때때로 우리로 하여금 마술 같은 인생을 경험케한다.오페라는 역사적이거나 주인공의 고난, 사랑의 배신과 사랑에 올인하는 인생사를 주로 극적인 비극이나 코믹하게 그려내는 음악과 극과 춤과 무대가 있는 종합예술형태다. 민족
김정은의 '백두산 백마퍼포먼스'는 2020년 신년사 사이버게임인가? 백마의 갈기를 날리며 달리는 "백두혈통(?)". 눈, 백마, 백두산. 4중 백이다. 이 생뚱맞은 퍼포먼스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일까?신년사가 백마퍼포먼스라니?. 고도의 은유 메시지다. 한 달 먼저 내놓은 신년사. 한 달 후에는 각주 한마디 단다. 간명하다. 장황하게 설명하면 은유의 스펙트럼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시차를 두고 서서히 영화는 전개되고 있다. 6년 만에 고모 김경희가 등장하고 40년 해외에 있던 삼촌 김평일이 돌아왔다. 평론가들은 감금이라고 헛다리를 짚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