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지나고 따뜻한 기운이 도는 이즈음이면 한옥 창호문을 새단장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한지 한장만으로도 칼바람 겨울 추위를 거뜬하게 막아냈던 어릴 적 창호문은 한 두군데 늘 찢어져 있었고 그 틈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통로였다. 바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침 묻힌 손으로 몰래 구멍을 넓히게 되는데 그러면 등 뒤에서 어머니의 꾸짖는 소리가 바로 들린다. "또 찢었니?" 깜짝이야. 나는 조금밖에 안 찢은 것 같은데 어머니는 정말 귀신같이 아신다. 그러시고는 옷을 기운 것처럼 이내 막아 놓으신다. 이렇게 겨우내 구멍
먼 이야기 같지만 마치 엊그제 처럼 느껴지는 50년 전 일이다. 어린시절, 그때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추웠다. 더운 잿물에 두들겨 세탁한 옥양목 조각들은 빨랫줄 위에 뻣뻣하게 얼어버린 채로 널려 있다. 걷어서 윗목에 놓으면 깨질 것 같은 빨래들은 이내 녹아든다. 눅진해지면 네 귀 맞추고 올 맞추어 탁탁 털어 네모 반듯하게 접어 놓는다. 그런 다음 지루한 빨래 밟기가 이어진다. 두어시간 정도 꼬박 서서 꾹꾹 눌러 밟아야 한다. 언니들도 둘이나 있건만 밟는 건 언제나 내차지다. 몸무게가 가벼운 나는 오래 밟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밤새 하늘이 뚫린 듯 퍼붓는 소낙비에 잠이 번쩍 깼다. 내일부터 공연인데 러버댐에 정박시켜둔 뗏목과 소품들이 떠내려갈 것 같다. 큰 일이다. 분야별 모든 감독들과 서구청 담당 공무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이런 비상이 없다. 한밤중 동시에 튀어나와 물속에 거침없이 들어가 떠내려가는 장비들과 뗏목을 부여잡았다. 나는 배우들의 옷부터 챙겼다. 물에 젖어 볼썽사납게 널브러진 옷가지를 정리하고 말리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가슴까지 차는 물속에서 뗏목잡고 물살과 씨름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수상공연 '갑천'은 공연 하루 전
대전의 중심 탄방동에 낮고 아담한 작은 숲 공원이 있다. 줄지어 다니는 자동차와 틈없는 집들, 도시소음 가득한 시내 한가운데 청정함을 선물하는 산소같은 남선공원. 어릴적 그 언저리에 살았는데 그때는 휘고 틀어진 소나무와 참나무가 많은 깊고 큰 산이라고 생각했었다. 고사리 꺽고 밤털고 산딸기 따느라 풀섶가시에 종아리 긁히며 헤집고 다녔던 추억의 동산 그 중심에는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해 죽창을 들고 가난을 호소하다 죽어간 양민들의 영혼을 달래주기 위해 세워진 기념탑이 있다. 가난이 죄였던 그들은 움직일 수 없는 동
논바닥 진흙 차가움속에서도 쉬지않고 긴장하며 스스로를 견뎌낸 외로웠던 보물. 상상의 동물들은 숲을 누비고 그 숲 다섯 악사들은 선율따라 신선되어 피리를 분다. 세상 끝 꼭대기에 살포시 앉은 봉황은 시간과 마음을 깨우는 심오한 날개짓. 이 모두를 감싸는 연꽃. 연꽃을 떠받드는 용. 봉우리 계곡사이를 휘감으며 피어나는 향내음에 내 눈은 저절로 지긋. 상상할 수 없는 상상만큼 끝없는 삼라만상이 세네 뼘 높이에 모두 담기니 작아도 웅장하다. '백제금동대향로'.죽어야 다시 태어난다 했던가. 사후세계도 삶의 연장이라 믿었던 우리 선조들
한통의 전화로 기쁜 소식이 왔다.몽골 울란바토르 한국 대사관에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도록 패션쇼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조선시대 궁중한복 현대한복, 모던한 패션까지 모두 보여달라는 쉽지 않은 요청이었다. 한복의 모든 분야에 경험이 있는 오지랖이 있지 않으면 어려운 상황이지만 늘 해왔던 터라 쉽게 대답했다. 조선시대라고 한정한 것이 아쉬워 백제복식으로 범위를 넓히자고 제안했더니 생각치 못한 발상이라며 더 반겼다.신이나서 중국과 우리의 사료, 여러 논문, 출토품들을 찾아보고 무령왕의 복식을 재현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
두 사진중에 어느 것이 왕의 장식인지 물어보면 열 중 여덟은 정답을 못맞춘다. 두 관이 비슷한 것 같지만 흐름은 다르다. 왕비관이 대칭이며 엄한 느낌이 장중하게 흐르는 반면 왕관은 부드럽게 물 흐르듯 비대칭으로 한쪽이 내려앉아있다. 이렇게 부드럽고 유려한데 왕관이라는 것이 의아하지 아니한가. 알고 봐도 조금 낯설다.백제왕관과 신라왕관도 비교해보면 유의미한 차이가 있다.신라의 왕관은 자연의 모습을 형상화한 출(한문)자형의 나뭇가지와 사슴뿔, 용의 뿔의 형상을 높고 크게해 왕의 위엄을 느끼게하는 관이지만 백제 무령왕관은 장식을 관의 양
5000년 전 단군은 무슨 옷을 입었을까.인간의 옷은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 자연생태계속에서 생명을 지키고 종족을 번식하기 위해 외부 위협으로부터 보호가 필요 했고 추위와 더위, 맹수로부터 안전을 담보받아야 했기에 군집생활을 했다. 추운 지역에서는 동물의 가죽으로 몸을 보호하기 시작했고 더운 지역에서는 질긴 풀을 이용해 태양의 뜨거움을 견뎌내야 했다. 가죽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뚫어 입고 팔과 다리의 활동성을 보장해 수렵 또는 농경생활을 유지했다.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며 가족과 사회를 만들고, 역할을 분담하
오늘은 새해 새 기분.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천을 다짐하는 첫날. 이런 날 한복이 생각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조금이라도 해보는 설렘의 날이다.우리의 일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의식주생활이다. 우리의 생각과 혀끝에서 저절로 붙어나오는 말이다. 의식주 다 중요하지만 의생활이 제일 앞에 나오는걸 보면 옷을 하는 사람으로 남몰래 슬쩍 으쓱하기도 하다. '식(食)'은 우리가 찾아다녀야 만날 수 있고 '주(主)'는 정해진 공간안에 들어가야 마주하는거지만 '의(衣)'는 언제나 우리 몸에 걸치고있어 사람의 마지막 피부처럼 붙어 있으니 식생활 주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