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알고 있는 자는 결코 말이 많지 않다. 생각하는 바가 적은 사람일수록 말을 많이 한다. 많은 지식을 아는 자는 굳이 입에 담을 일이 없다. 어쩌다 한두 가지 정보를 접하는 사람일수록 그 정보를 말하고 싶은 욕망을 저버리지 못한다. 인간은 말하고 싶은 욕망에 찬 동물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말은 서로의 감정을 나누며 정을 쌓는 대화여야 한다. 마치 투쟁이나 하듯 상대를 제압하는 데에 목적을 둔 말이 너무도 많음에 걱정스럽다. 이런 말들은 언제나 적을 만들고, 종내에는 자신도 그 말의 힘에 휘말려 망신을 당하게 마련이다. 말하고 싶은 욕망을 의지력으로 다스릴 수 있는 사람만이 현명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그의 실천하는 삶을 바라보면서 경의를 표하지 상대를 제압하는 말을 한다 하여 그에게 존경심을 표하진 않는다.
존 아베브리의 말처럼 "말을 하는 것은 혀가 아니고 두뇌의 운동이어야 한다" 세 치 혀가 말을 뱉었다고 하여 그것은 혀의 잘못이 아니다. 말하기 전에 깊이 헤아려 보고 입 밖에 낼 것을 결정하는 머리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 이 과정을 무시하고 세 치 혀에 힘을 실어 마구 떠들어대면 댈수록 자신의 허점만 보이게 된다.
한국 정치를 살펴보자. 국회의원이라면 국회의원답게 처신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을 듣다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보여 투표장에 갔던 일을 후회하게 만들기도 한다. 자신의 체신도 저버리고 시정잡배들이나 입에 담는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다든가, 상대와 투쟁이라도 하려는 듯 옴짝 달싹도 못하게 하려는 말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으니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이렇게 체신을 지키지 못하는 정치가라면 국민을 욕되게 하지 말고 스스로 시정잡배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 도리이다. 국민을 설득하기보다는 상대를 제압하려는 식의 말을 즐기는 정치가라면 자신의 직분을 내려놓고 코미디언이 될 일이다. 인간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이다. 그 혜택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고 상대를 힘들게 한다면 기본적으로 말할 권리가 없는 사람이다. 신이 준 선물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람답게 활용할 때에 진정 밝은 사회는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모든 사람들이 이 말을 부드럽게 아름답게 슬기롭게 사용하여 건강한 웃음이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강도묵 대전·충남경영자총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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